<트랜센던스>는 감독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자로 참여해 더 화제가 됐던 영화입니다. 그만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북미에서는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냉담한 반응만 얻었습니다. 사실 이런 영화를 보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대체 어떻기에 이리 혹평인 걸까?"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트랜센던스>는 '괴작'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트랜센던스>를 두고 "감독으로 데뷔하는 월리 피스터에게 완벽한 영화"라고 했던 저의가 의심스럽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반대로 저는 심히 우려가 된다는 말을 몇 번 했습니다. 예고편을 통해서 봤던 <트랜센던스>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이란 게 SF 장르에서 오래도록 선보였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걸 표현하지 못한다면 이런 영화의 실패는 명약관화입니다. 아울러 제아무리 단골 소재라고 해도 초짜 감독이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것에 손을 뻗었다는 것도 불안을 초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트랜센던스>는 거창한 포부를 내세운 제목에 전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가 설파하고 있는 것은 결국 "고도로 발달하는 과학이 인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라"입니다. 여기서 <트랜센던스>가 타겟으로 삼고 있는 '과학'은 다시 특정한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인공지능이고 다른 하나는 나노 기술입니다. 근래 과학과 인간 문명에게 있어 뜨거운 화두인 후자에 비춰 보면, <트랜센던스>는 이미 약 30년 전에 에릭 드렉슬러가 주장했던 기설을 각본의 서술에 밀접하게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극 중에서 윌에 의해 탄생한 인간의 혈액을 통해 노출되는 나노 입자는 에릭 드렉슬러가 나노 기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던 '회색 점액질'의 이미지 구현이었습니다.

주제와 소재의 선정에서 <트랜센던스>가 추구하는 바는 응당 필요합니다. 이것은 과거부터 자본과 물질에 탐닉할수록 서양철학이 탐구했던 '인간성의 상실'이 현대에 이르러 과학에 의해 작동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감독인 월리 피스터가 그걸 도무지 감당하질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트랜센던스>를 두고 '괴작'이라고 지칭한 건 그의 의도를 좀처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제 눈에는 월리 피스터가 틀림없는 과학혐오주의자로 보였습니다. 연출이 얼마나 형편없었던지 나중엔 <트랜센던스>가 날을 세운 대상이 과학인지 인간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구태여 회상으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를 배치한 것도 가뜩이나 어설픈 연출을 더 악화시키고 있었습니다.

<트랜센던스>는 과학을 상징하는 윌을 악으로 상정하는 과정에서부터 개연성, 설득력, 공감이 모조리 결여됐으며 이야기에 필요한 디테일은 엉망입니다. 도입부부터 무턱대고 윌에게 총구를 겨누는 'RIFT'를 필두로 정작 악행이란 악행을 죄다 저지르고 있는 쪽은 인간입니다. 모건 프리먼과 킬리안 머피가 연기한 캐릭터는 필요성조차 회의적이고, 설상가상 거의 무작정 윌의 아내인 에블린에게 당장 도망치라는 말을 던집니다. 윌이 인간에게 행하고 있는 것을 본 그들이 무슨 예언자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고 있으니 관객에게는 왜 그를 악당으로 취급하는 것인지 크게 와 닿질 않습니다.

에블린은 단연코 <트랜센던스> 최악의 캐릭터입니다. 제아무리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지만 에블린에게는 일관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소위 수준급의 과학자라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갈대를 넘어서 이건 뭐 숫제 황사 먼지처럼 산들바람에도 천릿길을 갈 만큼 가볍습니다. 물론 케이트 마라가 연기한 브리와 더불어 <트랜센던스>에서 드라마의 양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건 알겠으나, 월리 피스터는 그것에만 목을 맨 채 에블린을 시시각각 제멋대로 다루고 있습니다. 연출이 이런 마당에 조니 뎁이 연기한 윌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전 <트랜센던스>에서 윌의 역할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를 악으로 규정할 근거는 희박한데 다들 열을 올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트랜센던스>의 빈약한 이야기에 대해서까지 언급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딱 하나만 얘기하면, 브리는 위험을 선지자처럼 내다보고 상대의 동료마저 포섭한 주제에 윌이 2년 동안 어디서 뭘 하는지 알면서도 가만히 내버려둡니다. 그 와중에 변심한 동료 왈, "지금은 때가 아니다. 대중들이 들고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말은 결말까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가 기다리자고 했던 대중의 움직임은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테러까지 일삼을 정도로 맹목적이었던 과격단체가 윌이 완전체가 될 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결말은 더 황당합니다. 온순한 윌의 태도를 보면 당최 지구를 암흑기로 돌아가게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프롤로그가 있는 관계로 딱히 스포일러는 아닙니다) 심지어 이제 와서 얼렁뚱땅 과학의 순기능에 대해서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읊는 걸 들으면 헛웃음이 터집니다.

월리 피스터는 줄곧 어설픈 연출을 일삼았으면서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걸 두려워한다, 감정은 논리적이지 않다"와 같은 상투적인 대사만 나열하면서 <트랜센던스>의 주제를 부연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 판국에 영화에서 메시지를 읽어내고 풀이한다는 것은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에 다름 아닐 정도로 허무맹랑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가감 없이 표현하면 둘 모두 실패한 <트랜센던스>는 "이런 걸 두고 개똥철학이라고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기계와 인간의 차이를 '자각능력의 증명'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정작 자각이 필요했던 건 월리 피스터였습니다.

★★☆

덧) 조니 뎁부터 레베카 홀, 케이트 마라, 모건 프리먼, 킬리안 머피에 폴 베타니까지, 배우들이 참 아까운 영화입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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