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보도 과정에서 홍가혜의 허위 인터뷰를 보도한 MBN 뉴스특보의 오보는, 발 빠른 보도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민간인을 인터뷰하다가 빚어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오보가 비단 MBN만의 일일까.

3년 전에 찍은 태풍 사진을 2012년 볼라벤 태풍 사진으로 보도했다가 망신살을 탄 조선일보의 기사나, 철도 노조 파업으로 서울대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는 중앙일보의 오보 모두 속보 경쟁에서 정확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내보낸 불상사 아니던가.

<슬기로운 해법>은 조중동을 타깃으로 보수 언론에 길들여진 언론계의 행태를 꼬집는 영화다. 중립적인 언론이란 있을 수 없다. 매체마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프레임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유교주의와 권위주의를 민주주의의 모토로 규정하고 이를 독자에게 프레임으로 제공하는 언론사가 조중동임을 <슬기로운 해법>은 꼬집는다.

새는 한 날개로만 날 수 없다. 다른 한쪽 날개가 있어야만 날 수 있다. <슬기로운 해법>은 조중동이 보고 싶어 하는 사건만 뉴스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쌍용차 사태나 혹은 YTN 언론인 해고처럼 굵직한 사안임에도 조중동의 프레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도화되지 않은 뉴스가 얼마든지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보수 언론이 모든 사건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게 아니라 다루고 싶은 사건만 다룰 때 균형 감각을 잃은 뉴스가 될 수 있음을 영화가 꼬집는 것이다.

<슬기로운 해법>은 보수 언론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정치 지도자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펜대를 통해 난도질할 수 있음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빌어 표현한다. 언론에게 공정한 감시자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참여정부의 부도덕성을 강조하는 이는 다름 아닌 조중동이라는 이름의 보수 언론이었다.

사법 재판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조중동이 합세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여론 재판을 형성하는 건, 조중동의 목소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라면 제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펜대의 파괴력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든지 난도질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언론이 견제의 기능을 넘어서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반대 진영에게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포털 시장의 3/4 이상을 차지하는 네이버처럼 조중동의 점유율이 3/4에 육박하는 지금의 언론 시장에서 균형의 추를 맞추기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부단히도 어려운 작업으로 보일 법하다. 이러한 언론 프레임의 편식을 넘어서기 위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방적인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 매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있을 때 우리나라 언론의 제대로 된 두 날개, 슬기로운 해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영화는 제안하고 있다.

이는 다소 맥이 빠질 수도 있는 결론이지만, 대안 언론의 중요성을 머리로만 아는 것보다는 실천으로 옮기는 게 얼마만큼이나 중요한가를 되새기게 만들어주는 게 <슬기로운 해법>의 미덕이다. 만인이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을 만들기 위해 개인이 언론의 소비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언론을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균형 있는 밸런스를 맞추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때 슬기로운 해법이 가능해 보인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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