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호텔킹>의 PD가 전격 교체됐다. 지난 12일 MBC는 ‘일신상의 이유’로 김대진 PD가 하차하고 애쉬번(최병길) PD가 그 뒤를 이어 연출을 맡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대진 PD는 한 언론매체를 통해 조은정 작가와의 불화를 언급하며 작가의 요구로 인해 강제적으로 하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호텔킹>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PD 교체건이 방송계의 이슈로 떠올랐다. 작가의 요구로 PD가 교체되다니. 방송국 소속 PD들이 들고 일어날 만했고, 기어이 그들은 긴급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PD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드라마계에서 힘자랑을 벌인 쪽은 작가였다. 만약 조은정 작가의 영향력 행사로 인해 김대진 PD가 손을 떼게 된 것이라면 이는 작가와 PD의 불화로 보기 이전에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몰아낸 씁쓸한 사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 설사 서로간의 뜻이 맞지 않았고, 그 어떤 갈등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다른 PD들도 위기감을 느낀 듯하다. 이 일을 아무 말 없이 넘겼다가는 나중에 또 누군가가 이와 똑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 테다. 긴급회의를 통해 부당한 사유에 대해 논의 중일 것이고 PD들의 자립과 존재감 고취를 위한 방안에 대해 상의 중일 것이다. PD들에게 꽤나 진지하고 신중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드라마계의 지난 행적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이번 <호텔킹> 사건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작가의 요구로 인해 PD가 바뀌는 일은 거의 전무후무하다. 이와 반대로 PD의 요구로 인해 작가가 바뀐 적은 종종 있어왔다. 그때마다 작가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없이 하차해야 했다. 뉴스가 되고 기사가 나가긴 했지만 작가들로부터 그 어떤 주장이나 항변도 들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대물>이 그랬다. 갑작스럽게 작가가 교체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작가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하고 아쉬워했던 이들은 시청자들이었고 일부 시청자들은 작가 교체에 수긍할 수 없다며 인터넷을 통해 성토하기도 했다. 외압설이 제기됐었고 권력행사라는 말이 돌았다. 작품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졌고, <대물>은 결국 최종회까지 수많은 구설수에 오른 드라마가 됐다.

얼마 전 종영한 <감격시대>도 중간에 작가가 교체된 바 있다. 신인 작가를 기용했지만 대작을 끌고 가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하여 기성 작가로 긴급 교체했다. 이야기는 별 무리 없이 진행되긴 했지만, 작가를 교체했다고 해서 훨씬 뛰어난 작품이 탄생되진 않았다. 이 역시 제작진의 영향력이 깊이 개입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호텔킹>의 작가와 PD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작가가 PD 교체를 원했고, PD는 영문도 모른 채 하차를 당했다는 내용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작가의 횡포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태로만 보고 PD들의 긴급회의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 작가가 교체되는 것은 으레 당연한 일이고, PD가 교체되는 것은 방송국이 들고 일어나야 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인가. 드라마의 3대 요소인 극본, 배우, 연출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치 않은 것이 없다. 이들 중 어느 것에 우선을 둘 수 없으며, 경중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무게는 동일하다.

PD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호텔킹>의 PD 교체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슈화하려는 조짐이 보이지만, 이것이 대중에게 제대로 어필될 수 있으려면 그간 수없이 작가를 교체했던 일들에 대한 자문과 반성이 먼저 수반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내게 돌아오는 위기는 크고, 남에게 가하는 위기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은 자칫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행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PD와 작가라는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힘을 지니고 있고 누가 그 힘을 남용하려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드라마를 제작함에 있어서 누구의 입김이 더 세고 강한가를 겨루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체만이 능사는 아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감이 있어도 끝까지 화합하는 마음가짐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마스터키이지 않을까. PD와 작가 모두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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