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왕자 강동석(최다니엘 분)이 돌아왔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강동석은 가짜 왕자로 앉아 있던 김지혁(강지환 분)을 처음으로 대면했다. 거기엔 소미라(이다희 분)도 있었다. 반지를 끼워주며 프로포즈를 하려고 했던 그녀. 지금은 김지혁의 곁에 서서 그의 비서 역할을 수행 중이다.

KBS2 월화드라마 <빅맨>은 강동석의 등장으로 인해 긴장과 갈등의 밀도가 보다 촘촘해졌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자리를 꿰차고 있던 김지혁이 강동석 입장에서는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부모에 의해 조작된 형제 관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대내외적으로 그를 형이라 불러야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불편하다.

시장통 사람들의 손을 거쳐 자란 고아 김지혁과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천한 환경에서 이것저것 집어 먹으며 자란 낯선 남자와 한 식탁에서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자신의 심장 수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호적상 형으로 둔갑해버린 그이지만, 강동석은 이런 상황을 계속 내버려 둘 수만은 없다. 돈이면 뭐든 해결된다. 강동석은 큼직한 돈가방으로 김지혁을 쫓아낼 생각이다.

김지혁은 강동석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자신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 여동생이 있고,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부잣집 아들이 된 것도 좋지만, 그것은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미련할 정도로 강동석과 그의 가족을 반가워하고 있고, 아낌없이 마음을 주며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강동석은 김지혁을 불러내 돈가방을 들이민다. 오만원권 지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어있는 돈가방을 말이다. 있던 데로 돌아가라는 조건이다. 가족이라는 인연을 끊자는 제안이다. 어차피 중요했던 건 돈이 아니었냐고, 원한다면 두 배, 세 배를 더 줄 수도 있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보편적인 개념이라 여기면서.

김지혁이 버럭 화를 낸 것은 예상했던 바다. ‘돈? 있으면 좋지. 하지만 없어도 괜찮아. 왜? 난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이딴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나한테 중요한 건 바로 너야! 그리고 내 가족! 니 마음 충분히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자신의 진심이 돈과 맞바꿔지는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김지혁은 강동석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다. 그만큼 그에겐 강동석이 소중했고 가족이라 여겼던 거다.

그럼에도 강동석은 김지혁의 진심을 보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 마음을 볼 수가 없다. 돈이면 뭐든 해결되는 세상 속에서 살아왔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입에 돈만 물리면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넙죽 절하게 될 것이라고 배워왔으니까. 감동적이라고 말하면서 김지혁을 부둥켜안았지만, 강동석의 머릿속에는 김지혁을 내몰 또 다른 계획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다. 바로 여주인공 소미라다. 그녀는 강동석의 비밀스런 연인이자 곧 그와 결혼을 하게 될 피앙세다. 그리고 강동석 집안의 모든 일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 여자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 김지혁이 강지혁으로 탈바꿈하게 된 건지,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강동석 집안의 음모는 무엇인지, 회장은 비서실장 도상호(한상진 분)에게 무엇을 은밀하게 지시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며 범죄라는 것 또한 알고 있으면서도 소미라는 침묵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아직 강동석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며, 곧 강동석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자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김지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자꾸만 흔들리고 있다.

소미라는 김지혁이 살던 시장통의 분위기가 좋다. 허름한 고깃집에서 소주병에 숟가락을 꼽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고, 아주머니 아저씨들 틈에 끼어 서민들의 세상살이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다. 강동석의 부재로 인해 김지혁의 수행비서가 되긴 했지만, 그와 함께 일하는 순간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 그녀에겐 신선한 설렘이자 행복이다.

사실 소미라 역시 서민이다. 거대한 현성그룹의 FB 팀장으로 일할 뿐, 그녀가 현성그룹의 며느리가 된 것도 사모님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물질로 풍요로운 세상에 이제 막 접어들려 하는 시점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소미라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순간에 발걸음을 주춤하고 있는 듯하다. 진짜 재벌이 눈앞에 있지만 마음은 가짜 재벌에게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드라마 –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 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의 행복은 돈 많은 남자와의 사랑, 연애, 결혼 등으로 귀결된다. 재벌남, 본부장, 후계자 등의 신분을 지닌 남자주인공은 복잡하고 처절하며 가슴 아픈 과정을 거쳐 여주인공과 인연을 맺게 되고 물질적인 안정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훈훈한 만족감을 전해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결말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른다.

그런 면에서 소미라는 기존 여주인공과는 다르다. 그녀는 가짜 재벌에게 눈이 가고 있다. 가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자였던 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로 살지만 사실은 고아에 빈털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익히 봐왔던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김지혁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그들은 가난한 연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빅맨>은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에 물질적 부유함을 빼놓을 수는 없지 않겠냐는 기본적인 가치관에 반기를 드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소미라가 강동석이 아닌 김지혁을 선택하게 된다면 말이다. 기존 드라마의 여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갈 듯한 소미라다. ‘물질만능주의’에 굴복하지 않을 그녀의 행보. <빅맨>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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