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헌, 원빈, 장동건, 소지섭, 조인성, 강동원, 정우성. 이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조각 같은 미남배우들이다. 사람들마다 미남의 평가 기준이 다르겠지만, 이들에게 잘생긴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 반기를 들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상대 배우들, 혹은 주변 사람들을 오징어로 만들어 버린다는 외모의 소유자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또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작품 외적으로는 좀처럼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빈이나 강동원 같은 배우들은 작품으로도 만나볼 기회가 적은 편이다. 신비주의를 애써 고집하는 것 같진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베일에 가려져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미남배우의 이미지로 고착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 대중과 완전히 담을 쌓고 지내는 것만은 아니다. 이들 중 몇몇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꾀한 바 있다. 소지섭과 조인성은 <무한도전>의 초대에 응해 무도 멤버들과 유쾌한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정우성은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사생활을 비롯 당시 이슈가 됐던 스캔들의 진상까지 모조리 폭로하기도 했다.

이제 송승헌 차례가 됐다. 그는 최근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8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 9일 방송된 JTBC의 <마녀사냥>에 연이어 초대된 것이다. 그것도 19금 토크의 컨셉을 띈 아슬아슬한 프로그램과 서로 물고 뜯는 토크로 자칫하면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는 프로그램에 말이다. 힘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독하디 독한 예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들인데 송승헌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겁 없이 뛰어들고 말았다.

<라디오스타>에 초대된 송승헌은 예상대로 재미없는 게스트에 불과했다. 같이 작품을 한 김대우 감독과 배우 조여정, 온주완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서주기도 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진 못했다. 물론 낯선 이들과의 조합보다는 나았을 테다. 그러나 어색한 미소와 예능에 적합하지 않은 말주변은 데뷔했을 당시와 비교했을 때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김구라를 비롯한 김국진, 윤종신, 규현은 이내 송승헌을 살살 다루기에 이르렀다. 겸연쩍은 미소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연신 내보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짓궂은 농담과 에피소드는 자연스럽게 나머지 게스트들의 몫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송승헌의 입에서 걸쭉한 입담이 터져 나오는 것이 상상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그렇다 해도 상당히 어색할 것이 분명했다.

송승헌은 <마녀사냥>에서 더욱 진땀을 빼야만 했다. 19금 토크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며 그것을 특화된 장점으로 여기는 프로그램이니 위험스런 질문공세는 당연한 절차이며 수다의 수위가 높은 것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뒤늦은 예능 나들이에 송승헌은 제대로 곤혹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만나 절친이 된 신동엽이 MC로 있었기에 그나마 조금은 자리가 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베드신을 찍을 때 중요부위를 어떻게 가리냐, 테이프가 떨어져 나가는 사고를 당한 적은 없었느냐는 등의 질문과 대답은 송승헌이 TV 카메라 앞에서 너스레를 떨며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대답도 했고 짐작 또한 한 것이었을 테지만, 그것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 송승헌은 예능에는 젬병이다. 농담 따먹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 넉살이 좋은 편도 아니다. 말을 조리 있게 하거나 감칠맛 나게 말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가 예능프로그램에, 그것도 독한 예능에 출연한 이유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인간중독>를 홍보하기 위함이 가장 클 테다.

하지만 이것이 의무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제작사나 관계자들의 바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송승헌이 강제적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앉아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 거란 얘기다. 송승헌이 홍보해야 했던 영화나 드라마가 어디 <인간중독> 하나뿐이었던가. 그동안 많은 작품을 하고도 예능 나들이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변화는 타의적이 아닌 자의적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송승헌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배우로서 우리나라를 넘어 한류 혹은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성공하는 것이 배우로서 성공한 삶인가. 대박영화를 만들어내야 행복인가. 거기에 기준을 뒀다면 난 아직 멀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 함께하는 삶 자체가 행복인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내일을 모르고 살아가지 않나.’

어찌 보면 흔하고 익히 알고 있는 말들이다. 사람들 모두가 때때로 생각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으로만 되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그대로 적용하고 실천하며, 그것이 결국 말 못하는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보여주어야겠다는 다짐으로까지 이어지게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때 연예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부를 한 자가 송승헌이다. 그는 기부 전 트위터로 참담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하면서 고통을 함께하고 싶어 했다. 자기중심에서 다른 사람 중심으로, 자아적 삶에서 이타적 삶으로 방향을 바꾼 그의 선회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말도 못하면서 독한 예능에 자진해서 출연한 이유. 그저 <인간중독>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행복의 기준이 바뀐 것에 기인한 하나의 흐뭇한 징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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