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이고 욕망에 충실한 변호사가 하루아침에 정의의 투사로 변신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물론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처럼 어떤 ‘특별한’ 계기가 주어진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의 경우다. ‘희박하다’는 형용사는 아마도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의 변호사가 서민과 소수를 위해 변론을 펼치는 모습은 무언가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그가 과거 자본의 편에 서서 악랄한 짓까지 서슴지 않았던 자라면, 그 극적효과는 배가된다. 빈번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MBC <개과천선>이 ‘굳이’ 기억상실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석주 변호사는 왜 속물변호사가 되었나?

‘명본좌’ 김명민이 주연으로 나선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 4회만에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그간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 활약하며 속물근성을 제대로 보여준 김석주(김명민 분) 변호사가 기억상실을 계기로 변화의 조짐을 보인 것이다.

지난 1~2를 통해 보인 김석주 변호사는 오로지 돈과 출세만을 쫓는 냉철한 에이스 변호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상식이나 도덕 따윈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법도 중요해보이진 않았다. 그에게 최고 가치는 오로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고급 클라이언트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기업 측 변호사로 나섰고, 성폭력 가해자의 변론을 맡기도 했다. 돈으로 증인을 매수하고, 역사에 눈감을 만큼 파렴치한이었다.

그런데, 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억을 잃고 나서부터다. 한번도 누군가를 챙겨본 적 없던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병원 환자들을 위해 무료 법률 상담을 진행하는가 하면, 이지윤(박민영 분)을 위해 옷을 벗어주기도 한다. 냉정했던 그에게서 조금씩 온기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속물 변호사는 아니었다는 듯 말이다.

그렇다면 김석주 변호사는 원래 따뜻한 사람이었던 것일까? 불의에 눈 감지 못하는 선량한 변호사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질문을 다시 던져야 되겠다. ‘그는 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일까?’가 아닌, 김석주 변호사는 왜 ‘속물 변호사가 된 것일까’로 말이다.

드라마는 이제 김석주 변호사가 속물 변호사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함과 동시에 그의 본격적인 ‘자아찾기’가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김석주 변호사는 머지않아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과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바람과는 달리 그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는 삶을 살아온 만큼, 앞으로 달라질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너무도 많은 얼룩을 그리며 살아왔다. 남은 것은 그 좋은 머리로 이제는 그 얼룩들을 지우는 일이 될 테다. 일본 기업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징용자들의 입장에서 변론을 맡게 될 테고, 단순히 자본 논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법정에 서게 될 것이다. 어쩌면,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쳤던 <변호인> 속 송우석의 외침보다 더 큰 감동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로펌이 배경이 되는 만큼 법과 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지만, 결국엔 그것들 역시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이 드라마가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정의는 살아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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