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설이 파다하다. 물가, 금리, 환율은 뛰고 외국인투자자가 밀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제불안에 정치불안이 겹친 가운데 9월 위기설마저 설득력 있게 유포되는 상황이다. 11년 전에 집단도산, 대량실업, 자산폭락, 물가-환율-금리폭등을 목도한 국민들은 기겁하나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 싸우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지난 7월말 2,475억2,000만달러로서 수치상 세계6위다. 하나 작년말에 비해 146억8,000만달러가 줄었다. 10대 보유국 중에 유일하게 감소한 것이다. 7월 한 달에만 106억8,000만달러나 해외로 빠졌다는 점이 심각하다. IMF 사태가 떠진 1997년 11월 61억달러가 감소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이다. 환율방어를 한다며 시장에 개입한 탓이다.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다. 외환자산 운용수익 등을 포함하면 매각규모가 210억달러로 추정된다.

▲ 매일경제 8월28일 A3면
문제는 외채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지난 3월말 대외채권은 4,274달러이나 대외채무는 4,125억달러이다. 차액이 149억달러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대외채무 중에서 1년내에 갚아야할 유동채무가 2,155억달러나 된다. 단순히 7월말 외환보유고와 비교하면 차이는 고작 320억달러이다. 여기에 정부가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기업의 해외채무가 화약고처럼 도사리고 있다.

보유외환을 유사시 즉각 동원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양대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구제금융 투입이 임박했다고 외신이 전한다. 두 업체의 채권을 한국은행만도 370억달러나 보유한 모양이다. 한국은행은 전액이 선순위채권이라 원리금 회수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외환보유고의 15%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믿고 싶지만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외환관리에 차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9월중 만기가 도래하는 외국인 보유채권만도 6조3,000억원이나 된다. 여기에 주식매각을 포함하면 달러수요는 더욱 늘어난다.

지난 6월 수출증가에 힘입어 경상수지가 7개월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올 들어 6월까지 누적적자가 53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그런데 세계경제가 개선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1997년에는 미국경제가 호황이었다. 이번에는 신용경색이 미국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다. 올림픽 이후 중국의 경기냉각이 점쳐지고 있다. 두 나라에 대한 수출비중이 40%나 되어 동반불황이 우려된다. 베트남의 경제위기도 적신호를 울린다. 자본투자도 많지만 외환위기는 돌림병처럼 번진다는 점이 두렵다. 1997년에도 태국통화의 가치폭락이 IMF 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다.

다행히 기업부채비율이 당시에 비해 1/4로 낮아져 집단도산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시장신뢰를 잃은 정부정책이 걱정이다. 경제를 살린다며 고환율정책을 견지해 달러를 소진한 따위가 그것이다. 사태의 중대성·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1997년에도 사태가 예견되었지만, 경제체질이 튼실하다고 떠벌리다 직격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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