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이 아내에게 할 말을 다하고 살면 둘 중 하나다. 상남자이거나 아니면 아내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서 할 말은 다하고 살겠다는 남자이거나. 보통의 남자라면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할 말 다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여권이 신장된 시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허락되는 참정권이 허용된 지가 백 년이 넘지 않다 보니, 여성의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거나 여성이 남성에게 권리를 요구하는 시대 역시 역사가 짧을 수밖에 없다.

<봄날은 간다>은 캔디처럼 ‘참고 참고 또 참고’의 인내를 보여주는 김자옥 버전 ‘인내 끝판왕’ 명자에 대한 이야기다. 명자의 남편 동탁은 요즘으로 치면 나쁜 남자다. 새색시와 혼례를 치른 것까지는 별 탈이 없었는데, 도시에서 배우로 성공하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첫날밤을 마치고는 새벽에 줄행랑을 치는 나쁜 남편이다. 도시에서 배우로 성공하겠다는 동탁의 포부는 동탁 당사자에게는 꿈와 희망으로 포장되지만, 남겨진 아내인 명자에게는 무책임한 남편의 꿈 때문에 희생되는 인물로 전락하도록 만든다. 명자는 우리 세대 어머니의 인내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동탁의 자아 찾기라는 남성 이데올로기에 희생되는 여성의 수난을 보여준다.

▲ 뮤지컬 ‘봄날은 간다’ⓒ박정환
명자는 남편에게만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같은 여성에게도 희생을 강요당한다. 시어머니는 홀로 버려진 며느리를 가엾게 생각하기보다는 며느리 때문에 아들이 집을 뛰쳐나갔다고 생각하고는 며느리를 학대하기 바쁘다. 입에 풀칠이라도 할까 해서 요정에서 식당 일을 하는 명자에게 술시중을 요청하는 요정 마담 역시 명자를 소모하기 바쁘다. 시어머니와 요정 마담이라는 여성은 명자에게 억압을 강요하는 나쁜 여자가 된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릴 때 수레 밑에 있던 사람은 사례 위로 올라오면서 운명이 트는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이한다. 반대로 수레의 위에서 온갖 호사와 영광을 누리던 이가 포르투나의 손길이 스칠 때에는 반대로 잘 나가는 운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할지도 모른다. 승승장구하던 부귀영화가 골짜기로 떨어지는 걸 경험할 테니 말이다.

포르투나의 세계관은 승자와 패자에게 ‘이때도 지나가리라’라는 것을 보여준다.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서 잘 나가는 인생에게는 잘 나가는 기회가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리라는 걸, 반대로 늘그막에 신음하는 인생에게도 쨍 하고 해 뜰 날이 돌아오기에 늘그막의 인생 역시 지나가는 순간이라는 걸 상기하게 만들어주는 게 포르투나의 세계관이다.

▲ 뮤지컬 ‘봄날은 간다’ⓒ박정환
하지만 <봄날은 간다>에서만큼은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명자에게 인생의 수레바퀴 위로 올라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신혼 첫날밤 도망간 남편을 대신하여 다른 인생의 복을 포르투나가 명자에게 허락할 법하지만 운명의 수레바퀴에 올라갈 듯하면 다시 내려오고 내려오기를 반복하게끔 만든다. 명자가 운명의 수레바퀴 정상에 올라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참고 참고 또 참아야만 하는 명자의 운명의 수레바퀴 잔혹사는, 아무 잘못 없는 한 여인이 평생을 신음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남성 이데올로기 탓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남성이 여성에게 남성 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잘못 덧씌울 때 그 폐해가 어떤 여성에게는 평생 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게 <봄날은 간다>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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