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이 아내에게 할 말을 다하고 살면 둘 중 하나다. 상남자이거나 아니면 아내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서 할 말은 다하고 살겠다는 남자이거나. 보통의 남자라면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할 말 다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여권이 신장된 시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허락되는 참정권이 허용된 지가 백 년이 넘지 않다 보니, 여성의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거나 여성이 남성에게 권리를 요구하는 시대 역시 역사가 짧을 수밖에 없다.
<봄날은 간다>은 캔디처럼 ‘참고 참고 또 참고’의 인내를 보여주는 김자옥 버전 ‘인내 끝판왕’ 명자에 대한 이야기다. 명자의 남편 동탁은 요즘으로 치면 나쁜 남자다. 새색시와 혼례를 치른 것까지는 별 탈이 없었는데, 도시에서 배우로 성공하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첫날밤을 마치고는 새벽에 줄행랑을 치는 나쁜 남편이다. 도시에서 배우로 성공하겠다는 동탁의 포부는 동탁 당사자에게는 꿈와 희망으로 포장되지만, 남겨진 아내인 명자에게는 무책임한 남편의 꿈 때문에 희생되는 인물로 전락하도록 만든다. 명자는 우리 세대 어머니의 인내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동탁의 자아 찾기라는 남성 이데올로기에 희생되는 여성의 수난을 보여준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릴 때 수레 밑에 있던 사람은 사례 위로 올라오면서 운명이 트는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이한다. 반대로 수레의 위에서 온갖 호사와 영광을 누리던 이가 포르투나의 손길이 스칠 때에는 반대로 잘 나가는 운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할지도 모른다. 승승장구하던 부귀영화가 골짜기로 떨어지는 걸 경험할 테니 말이다.
포르투나의 세계관은 승자와 패자에게 ‘이때도 지나가리라’라는 것을 보여준다.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서 잘 나가는 인생에게는 잘 나가는 기회가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리라는 걸, 반대로 늘그막에 신음하는 인생에게도 쨍 하고 해 뜰 날이 돌아오기에 늘그막의 인생 역시 지나가는 순간이라는 걸 상기하게 만들어주는 게 포르투나의 세계관이다.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참고 참고 또 참아야만 하는 명자의 운명의 수레바퀴 잔혹사는, 아무 잘못 없는 한 여인이 평생을 신음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남성 이데올로기 탓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남성이 여성에게 남성 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잘못 덧씌울 때 그 폐해가 어떤 여성에게는 평생 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게 <봄날은 간다>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