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2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노총은 서울 정동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세계노동절 124주년을 맞아 <한국 언론의 ‘노동’ 보도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의 발제는 ‘한국 언론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 ‘노동 관련 보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등 두 가지였다. 또한, △철도민영화 및 파업 보도 △삼성 및 비정규직 보도에 대한 사례발표도 있었다.

<미디어스>는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이날 토론회 내용을 2부로 나누어 자세히 싣는다. 1부에서는 정호희 민주노총 선전홍보실장의 <한국 언론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와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의 <‘노동’ 관련 보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발제를, 2부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노동 보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사례발표 두 개를 엮어 담는다.

파업 파괴 조장, 노조를 ‘불법집단’으로 묘사하는 언론

지난해 12월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민영화 반대를 외쳤던 철도노조의 파업이었다. 언론은 자사 지면 혹은 뉴스 리포트를 통해 ‘철도노조 파업’을 다뤘지만, 마치 ‘보도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은 △시민 불편, 화물 대란 등의 ‘피해’ 강조 보도 △정부의 강경 입장 부각 △사실 검증 없이 정부 자료 기사화 △철도노조=기득권 세력, 파업=불법 프레임 활용 등을 주로 담은 ‘전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은 “장기간의 파업이었고 파업 역량도 크다 보니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문제가 되는 기사도 많았지만 <경향신문>, <한겨레>와 인터넷 매체들이 철도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준 것도 사실이다. 몇 년 동안이나 ‘철도 민영화 반대투쟁’을 해왔는데 지난해 1달 동안, 몇 년치보다 더 많은 기사가 나왔기 때문에 기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다수 언론이 선보인 ‘정형화된 보도’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성곤 홍보팀장은 언론의 <공기업 파업 대응 기사 매뉴얼>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공기업 노조 파업 → 정부 대변인의 ‘불법 파업’ 발언 → 시민 불편, 재계에 미치는 영향 부각→ 귀족노조, 철밥통 등 공기업의 문제점 부각 / 외부세력 개입 문제제기 → 탄압의 정당화

백성곤 홍보팀장은 언론이 이 같은 매뉴얼에 충실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언론은 사실 확인 없이 정부 제공 자료를 그대로 뿌리면서 정부와 거의 ‘공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12월 26일 보도된 <동아일보>의 <하루 승객 15명인 역에 역무원 17명> 기사를 꼽았다.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검증 없이 기사화한 것이었다. 국토부는 자신들이 자료를 제공해 쓰여진 이 기사를 SNS로 퍼날랐고, 타 언론사는 해당 기사를 인용보도했으며, 종편은 대담을 통해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파업이 끝난 후 <노컷뉴스>는 해당 기사가 왜곡보도였다는 점을 밝혀냈다.

▲ 철도노조 측이나 쌍용역에 확인 취재도 하지 않고 작성된 동아일보의 2013년 12월 26일 기사

<노컷뉴스>는 지난 1월 28일 <‘하루승객은 15명, 역무원은 17명’ 쌍용역 기사의 진실>에서 <동아일보>의 기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1400만원(2010년 기준)이라던 연 수입은 96억 1500만원이었다. <동아일보>가 제일 문제 삼았던 ‘역 근무자’는 17명이 맞았고 2014년에는 15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3조 2교대제를 해 하루 투입 인원이 5명뿐이라는 점은 기사에서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노컷뉴스>는 로컬관제원, 역장 등의 인터뷰를 인용, “최소한 쌍용역에 전화해 한 번만 확인했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사는 안 나갔을 텐데”라는 쌍용역 근무자들의 반응을 담았다. 또한 <동아일보> 기사의 소스를 제공한 국토부가 “당시 철도파업 중이라 급하게 자료가 만들어지고 제공돼 누가 제공됐는지 알 수 없다”고 석연찮은 해명을 내놨다는 점도 짚었다. 국토부는 자료 출처는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12월 공식 트위터에 해당 기사를 여러 차례 리트윗해 확산시켰다.

백성곤 홍보팀장은 “작년 파업은 합법-불법 관련 다툼이 있는 상황이었지만, 언론에서는 무조건 노동자 파업에 대해 시작부터 ‘불법’ 타이틀을 걸고 갔다. 특히 종편은 대담 형식을 빌어 정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거나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채널이 민주노총 침탈을 생중계하던 날 오히려 모금 숫자가 5배로 늘어났다. 시민들의 언론 불신이 크다는 현재 상황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조 행사엔 ‘조용’, 이건희 일가 기사는 수백 건으로 ‘화답’하는 언론

홍명교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육선전위원은 ‘삼성 노조’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중심으로 사례를 설명했다.

“한국언론의 ‘기이함’을 말씀드리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저는 이걸 보며 용비어천가가 따로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 달 전 네이버 검색어에 호텔신라와 이부진이 올랐다. 제가 확인했을 때 1분에 2개, 내용도 별 것 없는 어뷰징 기사들이 제목만 조금씩 바뀌어 수백 건 떴다. 그 전날 저희가 여러 가지 증거를 갖고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탄압 정황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30여 명의 기자가 왔지만 기사는 2~3개밖에 안 났다. 그래서 축 처져 있었는데 (이부진 기사가) 그렇게 많이 뜨는 걸 보고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택시기사가 홧김에 호텔신라 로비를 들이받았지만, 변상금액을 물지 않기로 했다. 이거야말로 이부진 사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니겠느냐며 ‘훌륭한 미담’으로 보도했다. 사실 본인 돈으로 한 것도 아니고 회삿돈으로 변제해 준 건데 하루에만 기사가 몇 백개씩 올라오더라. 마치 대단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것처럼 앵무새 같이 반복보도하는 언론을 보며 이게 ‘삼성의 무서움인가?’ 했다”

홍명교 위원은 삼성이 하는 말만 ‘받아쓰는’ 악의적 기사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부산일보>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황제노조라는 삼성 측의 의견광고가 실렸는데, 많은 언론이 지회 측에 확인도 하지 않고 ‘광고가 난 사실’만을 가지고 기사를 쏟아냈다는 것이다. 또 뉴스통신사 뉴스1의 한 기자는 아무런 취재도 없이 ‘지회가 연봉 5000만원을 요구했다’는 기사를 냈으나 실제로는 3500만원이었으며, 지회가 한 달에 100만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홍명교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육선전위원이 삼성 관련 언론보도 사례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뉴스1은 지난 3월 30일, <시위할 땐 술판 벌이고 불내도 괜찮다?>라는 기사로 악의적 보도를 한 바 있다.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지회의 1박 2일 노숙투쟁에 대해 ‘술판시위를 벌였다’, ‘쓰레기더미를 잔뜩 남기고 갔다’, ‘지나가는 행인을 희롱하기도 했다’고 묘사한 기사였다.

홍명교 교선위원은 “트집잡는 보도가 나올 것 같아서 아예 담배꽁초 하나도 남겨놓지 말고 가자고 해서 완전히 깨끗하게 치웠다. 혹시 어떤 문제가 생길까봐 밤사이 불침번을 세워서 돌았다. (문제 발생 시 제지해 줄) 경찰도 주변에 있었고. 그런 식으로 진행했는데 여지없이 기사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홍명교 교선위원은 “기사를 쓴 최모 기자는 (29일 아침 상황을 보도했지만) 집회 때(27일)만 오고, 28~29일에는 없었다. 집회 때도 저희를 취재하거나 인터뷰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따지니 그 기자는 자기 잘못을 변명하지 않았다. 사진은 삼성 직원이 보내준 거라고 말했다”며 “필요할 때 ‘이런 내용으로 써 달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을 잘 키워내는 게 삼성과 삼성전자 홍보실의 힘인 것 같다”고 밝혔다.

▲ 2014년 3월 30일 뉴스1의 '시위할 땐 술판 벌이고 불내도 괜찮다?' 기사.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1일 현재에도 기사는 그대로 게시돼 있다.

홍명교 교선위원은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에서조차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의견광고를 실을 수 없던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안에서 기자들이 (삼성 보도를 하기 위해) 많이 싸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정치에도, 법에도 기댈 데가 없어 언론을 통해 자기 문제가 더 알려지길 바라며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삼성에 의해 편집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광고국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건 (언론사 행태를 합리화시키는) 알리바이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와 3억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전자신문>을 두고 “이 시대의 가장 용기 있는 신문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 진실을 보도한다는 태도로 싸우고 있다. 광고 다 끊겼을 텐데도 싸우는 모습을 보며, 다른 언론사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패배하지 않고 넘어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지회에서도 지지 성명 발표나 <전자신문> 구독을 고려하고 있다. 큰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라고 전했다.

홍명교 교선위원은 또한 언론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조차 빼앗긴 대다수 노동자들에 대한 탐사보도 △언론계 전체의 미디어 비평 강화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노조원들의 공부 환경을 조성하고 독려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등 언론노조 차원의 노력 등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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