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죽어야 내 자식이 산다’는 설정이 요즘 드라마 트렌드인가 보다. 얼마 전 종영한 <신의 선물-14일>이 그랬고, 어제 첫 방송을 알린 KBS 새 월화드라마 <빅맨>이 그렇다. 지독한 이기주의이기도 한, 그렇다고 아예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끔찍한 자식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빅맨> 역시 출발했다.

<빅맨>에서는 자식 사랑이 보다 노골적이고 위험하게 표출된다. 이는 결국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범죄를 낳고 만다. 제 자식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테다. 그러나 <빅맨>은 그것이 지나쳐 편협함으로 치달을 경우 타인의 아픔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 사회악을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강동석(최다니엘 분)은 현성그룹 후계자다. 그는 어마어마한 재력을 지닌 부모에게서 났고 귀하디귀하게 자랐다. 자신이 사장 자리에 있는 회사에서 FB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소미라(이다희 분)는 여자친구다. 곧 그녀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프로포즈를 할 참이다. 부와 명예, 젊음과 사랑하는 연인까지 강동석은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소유한 자다.

그런 그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심각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빠른 시간 안에 심장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그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하게 된다. 그의 부모이자 현성그룹의 총수들인 강성욱(엄효섭 분)과 최윤정(차화연 분)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대로 아들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며, 이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릴 수도 없다.

최윤정은 의사에게 어떻게든 살려내라며 다그친다. 그녀는 의사에게 강동석이 누구인지 모르냐고, 그는 현성그룹 후계자라고 소리를 지른다. 거의 겁박 수준이다. ‘현성그룹 후계자’ 이 사회적 위치는 병원 모든 의사가 힘을 모아 그를 살려내야 하는 이유가 됐다. 다른 이의 목숨을 희생시켜서라도, 멀쩡한 이의 심장을 도려내서라도 말이다.

심장 이식 수술 대기자 명단이 수십 명인 것을 확인하자 강성욱과 최윤정은 아들을 살려낼 다른 방법을 모색한다. 가난하고 궁색한, 사회적 신분이 낮은, 변변치 못한 삶을 살아 실종이 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 강동석에게 심장을 줄 수 있는 이를 찾아내라며 수하에게 지시를 내린다.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가겠다는 것이다. 강성욱 회장의 비서실장인 도상호(한상진 분)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섭게 지시를 따른다. 그는 리스트를 검색하다 심장 이식 수술 성공률 95%를 보이는 김지혁(강지환 분)을 발견하게 된다. 도상호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김지혁의 뒤통수를 가격하게 하고 혼수상태에 빠뜨리게 해 급기야 뇌사상태 판정을 받게 만든다.

여기에 놀라운 음모가 숨겨져 있다. 아무리 재벌이라도 심장 기증자를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 하여 강성욱과 최윤정은 김지혁을 강지혁으로 탈바꿈시키고 그를 숨겨왔던 아들로 둔갑시키고 말았다. 그들은 거짓 눈물로 뇌사판정에 동의하는 쇼를 벌인 거짓 부모가 됐다. 오로지 자신들의 아들이자 현성그룹 후계자인 강동석을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빅맨>이 타겟으로 삼고 있는 것은 강성욱과 최윤정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아니다. 그들의 이기심이 흉악한 범죄로 전이되도록 기반을 닦아준 돈, 그리고 권력에 대한 정면승부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나약하고 무능하며 평범한 부류에 속해 있었다면 이러한 끔찍한 범죄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다. 엄청난 재력이, 비윤리적인 힘이, 무자비한 권력이 뒷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은밀한 범죄다.

<빅맨>은 김지혁이 뇌사상태에서 깨어나 본의 아니게 강지혁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채워질 예정이다. 강성욱과 최윤정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김지혁은 팔자에도 없는 재벌 아들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거기에 강동석의 연인이었던 소미라가 김지혁과 가까워진다고 하니 참 오묘하고도 독특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김지혁의 역할은 단순히 왕자가 된 거지의 삶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뇌사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어떻게 김지혁이 아닌 강지혁으로 살아가게 된 것일까를 파헤치게 되면서, 돈으로 목숨을 사려 했던 권력과 맞서 싸우는 파이터로서의 행보를 그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제발 그러기를 희망한다. 드라마에서만이라도 돈과 권력에 의지해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의 세상이 무너졌으면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도 깊은 실의에 빠졌다. 돈 없고 힘없는 자들의 희생이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말았다. 그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빅맨>의 김지혁은 절대로 주저앉지 말기를,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약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돈이면 다 된다는, 권력을 휘두르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정리가 될 거라고 믿는 이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려주기를 소원한다. 속 시원한 드라마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설사 그것이 단지 가상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다 보면 혹시라도 가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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