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소속 선박사인 청해진해운의 소유주가 누구인지가 관심을 끌었다. 17일 오후부터 언론들은 청해진해운의 전신이 세모해운이며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아들들이란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병언 일가’의 재산 현황, 회사 운영방법의 불법성, 종교단체 구원파 교주로서의 유병언, ‘오대양 사건’과의 연루 의혹 등에 대한 보도가 봇물 터지듯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간지로만 한정해도 17일 이후 나온 기사가 700건이 넘는다. 같은 시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주요 6개 신문사로 한정해봐도 나온 기사가 400여건에 달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를 추려봐도 세월호의 비극의 주요한 원인이 청해진해운이란 기업의 파행적 운영에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파행운영의 책임이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회장 일가에 있다는 주장도 기각되기 어렵다. 종교단체의 신도 착취, 수천억원대 빚을 졌던 기업의 오너가 법정관리 등을 통해 빚을 탕감 받고 그룹을 재건한 방식, 비정규직 위주의 회사 운영 등은 한국 사회의 모순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는 지극히 한국적인 어떤 파행의 모습, 그렇기에 지극히 한국적인 어떤 표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에 있어 유병언 일가의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적어도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들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는 것보다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측면이 있다. 적어도 현재의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며, 마땅히 작동했어야 했을 규제나 검증이 이제야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회사를 수사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검찰수사관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중 열쇠업체 직원이 검찰 수사관과 함께 유 전 회장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본질에서 벗어난 ‘희생양 제의’?
그러나 그렇더라도 ‘유병언 일가’ 보도 홍수에서 비판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유씨 일가 몇몇에 대한 분노에 의한 사후적 처벌이 구조개혁이나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는 못할 거라는 부분이 있다. <동아일보> 26일자 사설 <세월호 배후 ‘유병언 비리’ 당국은 왜 지금껏 눈감았나>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한다. <동아일보> 사설은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추적하고 있는 혐의만 해도 횡령, 배임, 탈세, 해외 재산 도피, 부동산실명거래법 위반, 계열사 불법 지원, 뇌물 공여, 정치자금법 위반 등 10여 가지나 된다”라고 상황을 설명한 후, “캐면 캘수록 점입가경인 ‘유병언 왕국’에서 불거진 의혹들을 보면 지난 20년간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원은 뭘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생긴다”라고 관계당국을 비판했다.
또 <동아일보> 사설은 “검찰은 유 씨 일가를 수사하는 목적으로 ‘손해배상 소송 지원’을 들었다. 그러나 설령 세월호 참사가 없었고 피해자들이 손배 소송을 내지 않는다 해도 이 정도의 비리를 저지른 유 씨 일가가 어떻게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 국세청, 금융위의 눈을 피할 수 있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동아일보> 사설은 “정관계에 바람막이가 있어 이들의 불법과 비리를 눈감아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면서 “검찰은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유 씨 일가의 비리부터 정관계 비호세력까지 샅샅이 밝혀내야 할 것이다”라고 주문했다. <한겨레> 역시 25일 저녁 인터넷판에 올린 <유병언, 25년 전에도 감히 못 건드린 ‘성역’>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유 씨 일가의 비리 의혹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경우 유병언 일가에 대한 분노는 이준석 선장 및 몇몇 승무원에 대한 분노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희생양 제의’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사회문제 해결 및 재발방지를 위해서 행해지는 일이 아닌 ‘산 사람’들의 죄책감을 희석시키기 위한 몸부림이 된다.
하지만 사고의 이면을 파고들려는 노력이 도덕적으로 파탄난 몇몇 개인에 대한 분노로 전이되어서는 몇몇 우연적 요소의 조합으로 도저히 국민정서상 용납할 수 없는 전개의 사고를 만들어낸 그 특정 개인들만 재단당할 뿐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들은 그대로 남게 된다. 이는 설령 정부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 이 사태의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 등 몇몇 정권의 핵심인사로 몰아간다 해도 마찬가지다.
정부 당국이 책임있는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 사건이 드러내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은 몇몇 정치적 인물을 매장시키고 권력교체를 단행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 개인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는 별개로, 그런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인식해야 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하겠다.
▲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세월호 선사 특별수사팀이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주)다판다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경영자료 등이 담긴 압수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검찰은 이날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을 포함한 청해진해운 관계사와 관련 종교단체 사무실 등 10여 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정부 책임'을 가리는 역할하는 보도라는 관점
또 ‘유병언 일가’에 대한 보도 홍수는 이번 사건을 구성하는 두 개의 요소 중 한 부분에 대한 ‘물타기’란 시선도 있다. 특히 네티즌들은 검찰의 신속한 수사가 정권의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물타기’가 아닌가 의심한다. 세월호 사건의 구성요소는 ‘부도덕한 기업과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체제’일뿐 아니라 ‘국민 안전에 관심이 없고 그런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급급하는 국가기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도 난망할 정도로 총체적 부실을 선전한 국가가 ‘벌거벗지 않았다’고 우기는 상황인데, 시민들로 하여금 그 국가의 처참한 나신을 가리기 위한 좋은 이목거리로 ‘유병언 일가’가 기능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순간순간을 모면하는 포퓰리스트의 면모만을 보여주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세월호 선장과 몇몇 승무원들에 대해 “사실상 살인”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개인들의 도덕적 파탄을 강조하면서 체제의 무능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인데, ‘유병언 일가’로의 시선의 이동은 좀 더 구조적인 문제로 진입하기는 했으되 정부 대응 및 진상규명 조사에 대한 책임을 흐리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진보언론 내부에서는 ‘유병언 일가’에 대한 보도의 집중 경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진보언론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이쪽(유병언 일가 관련) 보도가 너무 많으면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고 전한다.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키워드로 삼아 기사를 쏟아내는 인터넷 언론 환경의 폐해라는, 이미 너무 자주 지적된 ‘정답이 아닌 정답’ 비평도 있다. 한 진보언론 기자는 “현실적으로는 유씨 일가에 관해 쓰면서도 가십성 보도가 아닌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는 정도가 타협책이다”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까지 여러 매체들이 보도한 바, 유씨 일가가 운영해온 회사들의 선박들이 그동안에도 부실관리 되었다는 부분, 운영해온 회사들이 구원파라는 특정 정교의 성원으로 채워져 있으며 그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부분 등은 분명히 지적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보도 이후에도 ‘구원파’가 가십적인 관심을 끌면서 ‘구원파 연예인’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떠오르는 식의 변질이 일어나기도 한다. 환경 제약 속에서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려운 고민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 28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 일가 소유의 페이퍼컴퍼니 '붉은머리오목눈이' 사무실이 있는 주택 앞에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수사관들의 차량이 서 있다. (연합뉴스)
‘검찰발 보도’,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일선 기자들은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 현실은 피하기 어렵다고 반응하기도 한다. ‘유병언 일가’에 대한 보도는 대체로 그들이 운영한 회사들의 과거 전력과 검찰 수사 내용 및 현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검찰의 발표가 언론 보도를 부추기는 점이 있다. 한 언론사 기자는 “현장에서도 (유씨 일가에 대한 과도한 보도가 정부 책임을 덮는다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검찰 쪽에서) 스트레이트가 자꾸 나오니까 기자들 입장으로는 안 따라갈 수도 없다”라고 해명했다.
검찰이 수사 내용을 흘리면서 정국을 주도하는 예의 악습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언론사 기자는 “검찰이 대중의 정의감에 편승하여 보도거리들을 양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의 ‘희생양 제의’를 치르는데 검찰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정권에 ‘숨돌릴 구멍’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시선이다.
그러나 ‘검찰발 보도’에 대해선 반대의 견해도 있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원칙처럼 되어 있는데 동의하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그 기자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천명하면 권력기관에 대해 수사할 때 기자들이 기사 안 쓴다고 비판하는 것도 대단히 우스워진다”라면서 “(어떤 사건은 공표하고 어떤 사건은 공표하지 않는) 검찰의 일관성 부족을 지적할 수야 있겠지만, 야당 의원들이 ‘검찰이 국정원을 수사하는데 왜 이렇게 기사가 안 나오냐’, ‘기자 다 죽었다’라고 호통치면서 어떤 때는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 왔으며 우리는 앞으로도 그 여파를 계속해서 보게 될 확률이 높다. 세월호 소속 선박회사의 실소유주 일가의 비행이 주도적으로 대두되는 것도 그 여파 국면의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혹은 이와 상관없이 이후로도 여러 가지 현상들이 뒤따라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의식과 분노가 뒤범벅된 사람들의 관심사를 즉자적으로 지나치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부인하고 싶은 그 세상이 지속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유씨 일가 보도 홍수 속에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성찰해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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