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목이 빠지게 기다렸던 영화가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온리 갓 포기브스>는 2011년에 개봉하여 제 혼을 앗아갔던 <드라이브>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연출한 신작입니다. <온리 갓 포기브스>는 작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했다는 소식을 듣고 쭉 기다렸는데 거의 1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개봉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온리 갓 포기브스>는 보기 전에 약간의 줄거리를 보고 가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주인공인 줄리엔은 방콕에서 형과 함께 무에타이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뒤로는 마약을 판매하던 중에 갑작스레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비보를 접한 두 형제의 어머니이자 마약사업의 실질적인 보스가 방콕으로 오고, 줄리엔에게 형을 죽인 자를 찾아서 복수하라고 명합니다. 이윽고 줄리엔은 그 배후에 전직 경찰로 현재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자경단으로 활동하는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아들이 복수를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어머니는 암살을 기도합니다.

한껏 고무된 채로 본 <온리 갓 포기브스>는 <드라이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고전적이고 탐미적이었습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과거 일본이나 중국, 홍콩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그것과 흡사합니다. 복수를 주요 테마 중 하나로 했다는 것에서도 그렇지만 전형적인 복수극은 아닙니다. 이것이 <온리 갓 포기브스>의 흥행과 평가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드라이브>에 비해 훨씬 뚜렷하게 형식과 이미지의 실험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도 필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합니다. 이에 반비례하면서 <온리 갓 포기브스>는 대사로의 전개를 극히 지양하고 있습니다. <드라이브>에서 이미 니콜라스 윈딩 레픈과 작업했던 라이언 고슬링의 줄리엔은 이번에도 아주 과묵한 캐릭터입니다.

<온리 갓 포기브스>는 대사를 극히 아끼면서 전체 내러티브를 오롯이 이미지로 전달하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미지로 관객을 짓누르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촬영과 조명, 미장센은 단연 돋보입니다.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적과 청의 대비, 트랙킹 샷, <샤이닝>을 연상케 하는 복도, 극단적인 음영, 시점 샷, 영화의 기괴한 분위기를 담은 구도 등은 <온리 갓 포기브스>의 전부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연출은 <온리 갓 포기브스>를 <드라이브>보다 더 느린 호흡과 복합적이면서도 현란한 이미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흥미롭습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대사는 물론이고 인물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일반적인 연출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그가 <드라이브>에 이어 또 한번 존경의 뜻을 밝힌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향이 완연한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이미지의 나열로 <온리 갓 포기브스>를 종교적, 동화적, 신화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지 않은 대사와 이미지의 결합은 각 캐릭터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일 눈길을 끄는 건 줄리엔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을 것이 틀림없는 그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변주를 안고 있는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줄리엔의 팔은 <온리 갓 포기브스>에서 성기를 대체하는 신체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차례 그의 시점에서 주먹을 쥐는 두 팔을 내려다보고, 의자에 앉아 여자의 자위를 볼 때 팔을 묶으며, 손으로 여자의 성기를 탐하는 등에서 그와 같은 은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줄리엔이 맞닥뜨리는 남자는 곧 아버지의 현신인 셈입니다. 그가 몇 번 타인에게 가하는 행위는 결말에 이르러 더더욱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이 외에도 성기=팔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는 많으나 스포일러니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온리 갓 포기브스>는 같은 장면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거나 중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니 유심히 보시면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온리 갓 포기브스>를 액션영화로 간주하고 보면 낭패를 볼 확률이 상당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영화를 보면서 노곤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일단 호흡이 굉장히 느립니다. "전형적인 복수극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듯이 자극적인 연출을 자제하고 액션다운 액션도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설사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전작인 <드라이브>를 재미있게 보셨더라도 <온리 갓 포기브스>에는 호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봤지만 이미지 과잉이라는 면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적지 않습니다. '예술영화 관객을 위한 마이클 베이'라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자칫하면 스타일에 갇히는 감독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하게 됐습니다. 반대로 보면 그만큼 영상미 하나는 역시 기가 막힙니다. 만약 <온리 갓 포기브스>가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과도기라고 한다면 <드라이브>를 본 직후처럼 또 차기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합니다. 다음에는 이미지의 남용을 줄이면서 서사와의 연계에 더욱 공을 들인 영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덧 1) 태국을 너댓 번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현지의 실상을 보면서 암담했던 저의 감정을 어쩌면 니콜라스 윈딩 레픈도 동일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서양인들에게는 환락과 유혹의 나라로 태국 이상이 없습니다. <온리 갓 포기브스>는 그것으로 인한 폐해를 꼬집으면서 심판을 가하는 영화기도 합니다. 정작 서양인들이 그걸 깨달을지는 모르겠지만...

덧 2) 혹시 몰라서 <온리 갓 포기브스>의 내용을 이해할 있도록 아주 간단한 팁을 드리자면, 자경단인 남자를 영화의 제목이 지칭하는 '신(God)'으로 받아들이세요. 지극히 평범한 옷을 입었는데도 등에서 칼을 뽑는 장면 같은 것도 그를 신으로 묘사했다는 걸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결말까지 가면 줄리엔은 결국 그로부터 XX를 받고 싶어했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