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이 있다. 비록 전체 인기 순위로 놓고 보면 그다지 높지 않지만 매주 새로운 내용이 공개될 때마다 SNS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며 찬사를 듣고 대체 다음 내용이 어떻게 나올지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주인공을 소재로 팬들이 만든 2차 창작물까지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 어떤 작품이 그런 밀도 높은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바로 <공룡 둘리를 위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100℃> 등 나오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았던 만화가 최규석의 신작이자 첫 웹툰인 <송곳>이다. (▷ 작품 보기) 지난 3월 말 1부가 끝났고, 바로 이어서 현재 2부가 연재되고 있다. 작품은 약 3시즌(작가는 한 시즌이 5 ~ 6부 단위로 짜여질 것 같다고 언급했다) 분량으로 연재될 예정이다.

▲ ⓒ 최규석
<송곳>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노동이다. 두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외국계 대기업에서 젊은 나이에 과장 직함을 달았지만 서서히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아예 직업이 노동상담소 소장이다. 작중에 묘사되는 한국 사회와 노동의 현실도 매우 강도 높게 그려진다. 물론 몇 년 전부터 세간의 ‘일상툰은 네이버 웹툰, 이야기를 보려면 다음 웹툰’이라는 생각과 달리 <살인자ㅇ난감>과 같이 서사적으로는 물론 주제도 성인 이상의 독자를 상정한 작품들을 네이버는 계속 기획해왔고 <송곳> 또한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네이버 웹툰 안에서 작품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기는 결국 10대가 주로 찾는 네이버 웹툰의 특성상 벌어지는 한계일 것이다. 누군가는 다음 웹툰에서 <위대한 캣츠비>, <이끼>, <미생> 같이 20대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인기를 얻었으니 <송곳>도 다음에서 연재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높은 인지도를 낳았을 것이라면서 아쉬워하기도 한다. 왜 최규석 작가는 네이버를 연재처로 택했을까. <대학내일> 등과 가진 인터뷰에서 작가 자신도 다음 웹툰에서 연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0대들이 이 작품을 같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것을 택했다고 여러 번 답한 바 있다. 그 말대로다. <송곳>은 노동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지만 마치 최규석의 지난 작품들이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세세한 묘사로 독자들이 쉽게 몰입하여 볼 수 있던 것처럼 이번 작품 또한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과 같이 노동을, 그리고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송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회사의 모티브는 지금은 홈플러스가 된 한국까르푸-이랜드 홈에버에서 벌어졌던 파업 사건이다. 한국까르푸는 본사가 위치한 프랑스에서는 노동 조건을 준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지만 다른 외국계 회사들이 그러하듯 한국 지사의 노동자들에게는 강압적인 태도를 강요해왔었다. 그 결과 2003년 6월 전면 파업이 벌어졌고 이후로도 비정규직 노조 가입 문제 등으로 여러 번 회사는 노조에 압박을 가해왔고 노조는 다시 그 압박에 파업과 투쟁으로 응수했다. 한국까르푸가 다른 한국계 마트에 밀려 이랜드에 한국 지사를 매각한 후에도 노동자에 대한 압박은 지속되었다. 아니, 더 강화되었다. 이랜드는 당시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 전환을 의무로 한 비정규직보호법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처럼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하기로 했었다. 노조는 이에 반발했고 결국 500일 간의 장기 투쟁 끝에 비정규직 해고는 철회되었다. 비록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간부 몇 명이 해고되고 노조원들에게 54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해배상금이 부과되는 일이 있었지만 결국 노조는 비정규직 조합원을 지킬 수 있었다. 이후 이랜드가 삼성테스코에 매장을 모두 매각해 홈플러스가 되었지만 여전히 노조는 굳건하게 버티고 있으며 이후 작년 구 홈에버 매장 이외의 홈플러스 매장에서도(한국까르푸-홈에버였던 홈플러스 매장은 홈플러스테스코라는 자회사를 통해 따로 관리하고 있으며, 구 홈에버 노조도 그 자회사를 기반으로 현재 움직이고 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최초로 파업을 결의하는 등 그 영향은 현재 진행 중이다.

<송곳>의 1부는 이렇게 숨 쉴 틈 없이 흘러온 한국까르푸-이랜드 홈에버 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김경욱 전 위원장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이수인’을 중심으로 그려내는 이야기이다. 실제 김 전 위원장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현장 노동자도 아니며 외국계 기업에서 간부로 활동하다 노동조합에 투신했던 것처럼 이수인의 캐릭터도 이와 비슷하다. 따라서 작품은 왜 이수인이 이러한 ‘스펙’을 뒤로 한 채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를 서서히 따라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과거를 따라간 결과 독자는 너무 흔하게 퍼져있어 쉽게 알기 어려운 하나의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비록 회사와 직장이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촌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육군사관학교 내에서도 각종 비리를 목격해 진상을 밝히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오는 것은 찬사가 아니라 불합리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노동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의 하나인 것처럼, 노동의 문제는 노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곧 사회 전반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이수인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합리에 의심을 던졌지만 제기할 때마다 가해진 압박으로 인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문제는 이수인의 현재 직장인 외국계 할인마트에서도 반복된다. 프랑스 출신의 점장은 경영 개선을 이유로 직원들의 해고를 지시하고 이수인은 이에 반발하여 노조에 가입하는 등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지만 다시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노조는 사람도 적거니와 별다른 힘이 없고, 노조에 가입한 사실을 안 점장을 비롯한 다른 회사 사람들은 유무형의 압박을 가해온다. 결국 어떻게 해고를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것은 승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비참한 결과일 따름이었다. 1부의 중간에 약자의 연대를 상징하는 장면이 계속 나왔지만 끝내는 씁쓸한 모습으로 끝난 듯 단순히 생각을 가지는 것, 모이는 것만으로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곧 이 작품을 보는 독자,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시민들과 노동자가 놓인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각종 불합리한 요구와 압박에 시달리고 술자리에서, 인터넷에서 불만을 쏟아내지만 정작 무얼 하기엔 딱히 준비된 것이 없고 그저 그렇게 살아갈 따름이다. 이수인 과장은 바로 이들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프롤로그에 모습을 잠깐 비추고 2부의 중심 캐릭터인 구고신 노동상담소 소장은 문제의식은 있지만 정작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뭉치게 만드는 기능을 작중에서 할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조금씩 비추고 있다. 마치 전투에 전략을 가지고 움직여야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노동권을 위한 싸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송곳>은 아직 전체 내용의 1/3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작품의 인기는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다. 마치 6월 항쟁을 다뤘던 작가의 전작 <100℃>에서 사람들이 불합리에 반발하지만 그 모습이 쉬이 보이지 않는 것을 물이 끓는 온도, 100℃에 달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비유했듯 <송곳>에 등장하는 상황도, <송곳>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사건들도, <송곳>을 보는 독자들 역시 모두 서서히 끓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 작품이 탐탁지 않을 것이다. 마치 ‘노동자’를 ‘근로자’라 부르며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노사 화합을 외치며 ‘근로자’가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일 것을 종용한 것처럼, 작품의 댓글을 비롯해 인터넷 상에서 작품에 대한 악평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최규석의 작품 스타일이 그가 연재하고 있는 네이버 웹툰을 비롯해 인터넷-모바일 상에 맞춰 제작된 느낌과 달리 출판만화에 더 가까운 모습이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몇몇 반응은 작중에서 전개되는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느낌이 들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강조하는 노사화합이 작중에서 이수인과 프랑스인 점장의 어색한 헤드락으로 풍자되었던 것처럼, 문제가 실제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회피하는 것도 해법은 아니다. <송곳>은 그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되,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리듬으로 다루고 있다. 3부까지의 내용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어떤 반향을 이끌어낼지 새삼 기대될 수밖엔 없는 것이다. <송곳>은 그런 점에서 제목만큼이나 한국 만화에서, 한국 사회에서 송곳같이 삐죽 솟아나온 작품이며 그렇게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웹툰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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