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비극 앞에서도 연예인들은 연예인들이어야만 했다. 대한민국이 슬픔에 잠겨 있는 가운데서도 연예인들은 같은 국민의 일원이기 이전에 이슈를 몰고 다니는 셀레브리티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아픔을 모두가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만큼은 연예인이 여론몰이를 하는 바람잡이가 아닌 그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여졌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되질 못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씁쓸했다. 때로는 그것이 노여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위로하기 위해 송승헌이 1억을 기부했고 그 뒤를 이어 차승원, 하지원, 김수현, 주상욱 등이 기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곧이어 양현석이 5억을 쾌척했다는 소식과 함께 추성훈이 5000만원, 수지도 5000만원을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전달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설경구, 송윤아 부부 1억, 강호동 1억 등 현재 연예인들의 기부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소식이다. 훈훈하고 따뜻한 위로의 동참이다. 망망대해에 버려진 자식을 가슴이 사무치도록 애타게 찾는 부모들의 절규를 TV를 통해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그들과 함께 통곡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들도 똑같이 아프고 슬펐다. 그리고 그 마음이 차오를 대로 차올라 그저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일 게다.

▲ 방송인 강호동, 영화배우 설경구 송윤아 부부 Ⓒ연합뉴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왜곡하고 경중을 따지며 특별하게 여기기도 했다. 선행하는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놓기 위한 하나의 홍보 수단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5억을 기부한 연예인과 5000만원을 기부한 연예인의 마음을 저울질하는 속물근성에 근거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부 금액의 액수에 따라 특별하게 등급을 매기는 어처구니없는 이들도 보였다.

급기야 기부를 강요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누구는 이렇게 많이 하는데 누구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누구는 기부하고 누구는 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한 것 아니냐며 어설프게 따져 묻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유재석의 이름이 기부 명단에 없자 일부 사람들은 그에게 가차 없이 실망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평소 선행 연예인답지 못한 행보라며 그를 비난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중의 오지랖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쯤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이런 몰상식한 이들이 지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라는 사상 유례없는 국가적 비극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예인 기부 행렬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이 아닐까 싶다. 그 수가 극히 미약하고 단지 일부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 세월호 침몰 열흘째인 25일 오후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일부 사람들의 완악한 시선은 연예인들로 하여금 세월호 참사를 익명으로 돕게 하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 초반에는 몇몇 연예인들의 이름들을 공개한 기부 사실이 보도되더니, 이제는 익명으로 기부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의 행렬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든 그렇지 않든, 홍보를 목적으로 하든 그렇지 않든, 기부를 많이 하든 적게 하든, 그런 것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굳이 의도를 가려내야 직성이 풀리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중요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눈을 뜨고 지켜보는 그들의 짐작이 모두 맞아 떨어질 리는 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으며 가늠하고 판단하며 단정 지을 수 없는데 아직도 그것 하나를 모르는 이들은 존재한다.

지금까지 기부한 연예인들 중에서 상당수는 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길 꺼렸다고 한다. 혹시라도 그것이 이슈화되어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는 이들의 마음이 상하게 될까 봐서였을 테다. 선행은 알려져야 한다는 일념 하에 언론이 좋은 뜻으로 공개한 것일 뿐, 연예인들의 기부 행렬 자체에 다른 의도나 목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연예인들이 익명으로 기부에 동참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의 선함 마음에 성숙함까지 깃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십시일반 모아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것이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실질적인 도움임을 직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긍정적이지도 발전적이지도 않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판의식이 판을 치고, 그것이 사람들의 아픔에 생채기를 더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한없는 눈물바다다.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어린 영혼들을 우리는 살려내지 못했다. 그들의 영결식은 우리를 참혹할 만큼의 미안함으로 송구함으로 애도함으로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으며 누가 더 도왔고 누가 덜 도왔는지를 따진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정말로 이러한 시시비비라고 생각하는가?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열흘째인 25일 충북 청주시 성안길 입구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예인들의 기부 행렬을 보면서 가만히 핸드폰을 들어 기부 모금에 동참을 한다든지, 안산에 있는 영결식을 찾아가 국화꽃 한 송이와 함께 진심 어린 기도를 한다든지, 자식을 떠나보낸 이들의 손을 붙잡고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같이 울어준다든지 하는 것이, TV를 보며 비판의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이 될 것이다.

참사를 더욱 참사로 만드는 것은 위로와는 상관없는 비판의 잣대다. 그것도 지독하게 주관적이라 민망하고 부끄럽기까지 한 비판의 잣대. 세월호 참사를 위한 모금 운동에 참여한 연예인들은 그 어떤 명목으로도 싫은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익명이고 아니고에 따라서 도움의 정도를 평가 받을 이유도 없다. 정작 평가와 비난은 뒤틀린 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비뚤어지게 노려만 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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