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 21> 951호, <방황하는 칼날>의 정재영, <한공주>의 천우희와 다른 캐릭터들의 표정에게서 보이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장문의 글을 쓴 김영진 평론가는 글 말미 이렇게 쓰면서, 신전영객전을 마무리 지었다.

"우린 너무 불편한 세상을 살고 있다. 아니, 우리 중 일부는 너무 불편한 세상을 살고 있다."

김영진 평론가가 9일 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접하고 이 글을 마무리 지었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두 영화만 보고 그런 생각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방황하는 칼날>, <한공주>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아픈 영화이다.

히가시노 게이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방황하는 칼날>의 아버지 상현(정재영 분)는 성폭행을 당하고 무참히 죽은 딸의 시체와 마주한다. 상현은 억울하게 죽은 딸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한다. 딸을 죽인 범인들을 하루라도 빨리 잡아달라며 경찰서를 찾지만 형사들은 상현에게 "집에서 조용히 기다려라"는 말만 할뿐 수사는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상현은 스스로 범인을 잡기 위해, 총칼을 들고 범인들의 행방을 쫓는다.

<방황하는 칼날>의 상현은 경찰을 대신하여 딸을 죽인 범인들을 직접 잡는다. 한술 더 떠, <방황하는 칼날>과 같은 CJ 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 배급한 영화 <표적>은 직접 악당을 잡는 소시민(물론 잘 훈련된 용병)의 무용담과 더불어 공권력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악용될 수 있다는 섬뜩한 악몽을 보여준다.

상현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들을 탓하며 상현에게 일종의 연민을 가지고 있는 <방황하는 칼날>의 형사들은 (이성민, 서준영 분)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가해자 부모들과 유착관계에 있는 듯한 <한공주>의 형사들은 오히려 집단 성폭행 피해자인 한공주(천우희 분)를 몰아붙인다. 친구 화옥(김소영 분)이 자살을 했는데 왜 입을 다무냐고. 영화 <표적>의 광수대 경감(유준상 분)은 존재만으로도 끔찍하다.

<방황하는 칼날>, <한공주>, <표적>의 주인공들은 모두 공권력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보호해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은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가해자, 잘못한 이가 되어버린다. 큰 상처를 겪은 이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모두다 주인공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상황에서 이들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물에 빠진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한공주는 어떠한 일이 닥쳐도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영을 배운다. 아마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고 한 가해자를 선처하는 데 합의를 본 아버지 때문에 곤경에 빠진 한공주는 이제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며, 잠시 열어두었던 마음을 굳게 닫을 것이다.

영화 <한공주>에서 한공주는 말한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맞다. 한공주는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한공주는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가해자들의 부모를 피해 계속 도망 다니다가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참혹한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방황하는 칼날>의 상현의 눈물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잘못한 것 없는 한공주가 날개를 잃고, 믿기지 않은 딸의 죽음에 목 놓아 흐느끼는 아버지의 눈물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면서, 숨길 수 없는 울분이 치솟았던 지난 일주일. 한공주를 따뜻하게 지켜주지 못한 나는 한공주에게 이 말밖에 할 수 없다. 미안하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비극의 소용돌이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그래도 기적을 기다린다.


연예계와 대중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합니다.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http://neodo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