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리쌍의 길이 곧바로 무한도전 자진하차를 알렸다. 이에 대해 무한도전 역시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상당히 이례적인 속도라 할 수 있다. 일단 세월호 참사에 대한 노이즈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무한도전 김태호PD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길의 사고로 가장 복창이 터지는 사람 역시도 김태호 PD일 것이다. 단발도 아니고 두 개의 중장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물의를 일으킨 하차이기 때문에 이미 촬영한 영상을 대대적으로 편집해야 하는 수고는 물론이고 그로 인한 완성도 저하는 피할 수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동안은 예능 방송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시간은 벌었다고 하겠지만 일곱 명으로 짜둔 많은 계획들이 뒤틀어진 것은 결코 쉽게 봉합되지 않을 상처가 틀림없다. 길의 하차는 어쩌면 길보다도 죄 없는 무한도전이 대신 벌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그렇게 민폐를 끼친 길의 자진하차 결정이지만 뭔가 속이 후련치 않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연예계라지만 이런 시국에 음주운전이라는 방종을 저지른 길의 무한도전 자진하차라는 형식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 대해서 무한도전이 수용하는 형식이다. 물론 길이 그동안 밉든 곱든 무한도전에서 5년간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자진하차라는 갖춰진 형식이 불만이다.

일반 회사원들도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형벌적 의미로 파면과 해고가 주어지듯이 연예인들도 자진하차, 자숙이라는 느슨한 의미가 아닌 좀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어차피 자숙이라고 해도 방송출연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개인생활에는 아무 지장도 없지 않은가.

일시적 방송 중단이 나름 연예인에게 형벌이기는 하겠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주는 감정적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음주운전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음주운전은 타인을 해칠 수 있는 살인 예비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지만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후에 뺑소니를 치고도 버젓이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실상이다. 그런 연예인에 비하면 자진하차라도 했으니 양심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얼마간의 자숙기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대중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다를 것도 없다. 자숙이라고 해봤자 일 년 남짓이 고작이다.

수백 명의 목숨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애도하고, 함부로 숨도 쉬지 못할 상황에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에게 자진하차와 자숙은 형벌이 아니라 어쩌면 면피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연예인에게 성직자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도도 부족할 판에 음주운전이라는 방종을 저지른 길에게 자숙이라는 단어는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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