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것이 없지만 떠밀리듯, 살던 고향과 학교를 떠나야했던 한공주(천우희 분)는 그 사건 이후 웃음과 꿈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공주는 하루도 수영연습을 거르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가파른 물살을 가른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제4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제16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를 석권하며 더욱 주목받은 영화 <한공주>(이수진 감독 연출)의 시작은 단순 명료하면서 묵직하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맞다. 공주의 말대로 한공주는 잘못한 것이 없다. 오히려 공주는 우리 모두가 보호해야할 피해자이다.

하지만 공주는 세상의 따가운 편견과 오해를 피해 숨어 살아야 한다. 한때 공주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들도 있었지만, 공주의 과거가 밝혀지는 순간 공주는 다시 먼 곳으로 떠나야한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만큼, 근래 미성년자 성폭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았다. 지난 10일 개봉한 <방황하는 칼날> 또한 미성년자 성폭행을 다뤄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미약한 법적 처벌 대신 가해자를 직접 응징하는 피해자 부모들의 복수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다수 영화와 달리, 영화 <한공주>는 철저히 피해자 관점의 이야기이다.

비슷한 사례로 성폭행 피해자의 치유 회복과정을 다룬 <소원>을 거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판타지적 접근법으로 피해자의 아픔을 감싸는 <소원>과 달리, <한공주>는 여전히 성폭행 피해자에게 따뜻하지만은 않은 냉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의 흰나비와 달리 바다의 무서움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공주는, 그럼에도 좌절이나 회피가 아닌 거침없이 물에 뛰어들어 풍파와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 하지만 공주 혼자 뛰어들기엔 세상이 녹록치 않았다. 앞으로도 공주가 헤쳐 나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게 한다 해도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공주의 가냘픈 날갯짓. 말없이 따뜻하게 안아주고픈 한공주의 축 처진 뒷모습이 시리도록 아프다. 4월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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