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두 번의 밤이 지났지만 실종자들에 대한 시원한 구조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멈췄다’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18일 조간신문들은 ‘초유의 신문편집’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1면에 해당 사안에 대한 기사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할 정도였다.

<조선일보>의 경우 1면 기사 전부를 세월호 침몰 관련 기사로 채운 것은 물론, “진도 여객선 침몰”이란 주제로 2, 3, 4, 5, 6, 8, 10, 11, 12, 14면에 기사를 배치했음을 알렸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에서 ‘관계기사’가 2, 3, 4, 5, 6, 8, 10, 12, 13, 21, 24면에 있음을 알렸다. <동아일보>는 1면에서 “여객선 침몰 참사 지면안내”란 제목 아래 2, 3, 4, 5, 6, 8, 10, 21면 기사를 소개했다.
진보언론들 역시 사안에 대한 집중도는 마찬가지였다. <한겨레>는 1면에서 “여객선 침몰 참사”라는 주제 아래 2, 3, 4, 5, 6, 8, 9, 10면 기사가 배치되었음을 소개했다. <경향신문> 역시 1면에 “여객선 침몰 참사 지면”이란 단어 아래 2, 3, 4, 5, 6, 8, 10면에 관련 기사가 게재되었음을 알렸다. <한국일보>도 1면에 2, 3, 4, 5, 6, 8, 9면에 관련 기사가 있음을 알렸다.
언론이 집중할 수밖에 없는 초유의 사건이었고 선장, 선박 회사, 정부 대처의 책임 및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동향 등 많은 영역에서 비슷한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면 편집과 사설에서 보이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결의 차이는 있었다. 보수언론이 선장 등 승무원들의 책임을 집중부각하면서 이 사건이 ‘인재’임을 밝혔다면, 진보언론은 정부 대처나 사회 전체의 문제에 좀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 18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대표적으로 <중앙일보>의 1면 기사 제목은 <‘경력 1년’ 25세 항해사가 몰았다>였다. <조선일보> 역시 1면 기사 세 개를 <입사 4개월 20대가 배 몰았다>, <안개 속에서 무리하게 급선회>, <선장 지시로 선원부터 탈출>이란 제목으로 배치했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좀 더 감성적인 1면 배치를 하였다. <동아일보> 1면은 안산 단원고 운동장에 모인 시민들의 ‘희망의 불’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포기하지마, 기다릴게”>라는 기사 제목을 달았다. <한국일보> 1면에는 <“상처 가득한 자리에서 아이들 살아남게 하소서”>란 제목의 신현림 시인의 기고문이 실렸다.
반면 <한겨레> 1면의 경우 <“제발 살아 있기를”>이란 제목으로 17일 저녁 안산 단원고의 ‘세월호 실종자 무사 귀환 기원 촛불문화제’의 사진을 담았으나, 하단 기사는 <안이한 현장대처·지휘체계 혼선…‘어이없는 정부’>란 제목으로 달렸다. <경향신문> 역시 1면 탑 기사 제목을 <“아이 살려주세요” 대통령에 애원해야 하는 나라>로 달았다.
▲ 18일자 한겨레 1면 기사
이를 정파적인 관점에서 보수언론의 경우 이 사건이 정부 여당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하는 반면, 진보언론의 경우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공세를 꾀하려 한다고까지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큰 사건을 대할 때 보수언론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면 진보언론은 구조적 문제를 제시하는 결의 차이를 보여주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한국의 언론들이 대체로 이러한 사안에 대해 감성적·감정적 접근이 많지만 보수언론이 이 지점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심하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런 기조는 사설에서도 이어졌다. 보수언론은 사설 세 개 중에 한 개는 선장을 비판하는데에 할애했다. <조선일보> 사설 중엔 <승객 팽개치고 먼저 배 빠져나간 세월호 선장·선원들>이 있었고, <중앙일보> 사설 중엔 <침몰하는 배에서 1호로 탈출한 나쁜 선장>이 있었다. <동아일보> 역시 <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해 젖은 돈 말리고 있었다니>란 제목의 사설을 배치했다.
반면 <한겨레>의 경우 사설 세 개 중에 하나만 관련 사안에 대해 배치하였고, <말뿐인 ‘더불어 함께 사는 안전 공동체’>란 제목으로 정부의 기조 및 대처를 비판하였다. <경향신문>은 사설에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안전 대한민국’>과 <살신성인한 승무원, 그리고 선장의 책무>를 함께 배치했다. <한국일보> 사설은 <어느 곳 하나 정상이 아니었다>라는 제목으로 폭넓은 문제를 지적했다.
<경향신문> 사설 <살신성인한 승무원, 그리고 선장의 책무>의 경우 선장의 책임을 분명히 지적하면서도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경향신문>은 "사고 당시 방에서 쉬고 있었다는 이모씨는 해경에 구조된 첫 생존자다.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기도 전에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모씨를 무작정 탓할 생각은 없다.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그에게 일사불란한 지휘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라며 선장에 대한 과도한 비판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경향신문>은 "하지만 안전사고 발생 시 선박의 최고 지휘관은 선장이다. 선장은 승객의 안전 여부가 확인되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배에서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굳이 법적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지휘관이 사고 현장을 먼저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경향신문> 사설은 "2012년 이탈리아 검찰은 유람선 침몰사고 당시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에게 2679년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리더의 역할과 책무를 망각한 채 행동했을 경우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 교훈적 사례로 남게 됐다"고 비평했다.
또한 보수언론 역시 선장의 도피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자성하는 모습도 보였다. <중앙일보> 이훈범 국제부장은 31면에 실린 <한국인답게 행동하라?>란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신랄한 개탄을 하였다.
▲ 18일자 중앙일보 31면 칼럼
대부분의 재난이 그렇다. 이번 세월호 침몰 역시 선박회사와 선장, 승무원들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측면이 많아 보인다. 그렇게 자기 할 일 안 하는 사람들이 모여 부실 공화국 대한민국을 만든다. 이 땅에 어이없는 재난이 그치지 않는 이유다.

전설이 된 타이태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끝까지 승객 탈출을 지휘하다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함께했다. 고향 리치필드에 있는 스미스 선장의 동상에 새겨진 그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

만약 “한국인답게 행동하라”는 말을 새겨야 한다면 어떤 게 될까. “일등이 돼라(Be the First)”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할 수 없는) 일등만 하면 된다는 사회 분위기도 그렇지만 승객은 나 몰라라 달아나는 데 일등이었던 선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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