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방패보다 강한 설득의 힘!

어벤져스로 마블을 배운 내게 캡틴 아메리카의 첫인상은 세상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꼴통 학급의 요주의 학생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 타 히어로들의 울퉁불퉁한 매력과 달리 그는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농담과 진담도 구분 못해 시종일관 정색에 혼자 인상 팍팍 쓰며 토니 스타크를 감시 감독하는 진지함이 참 싫었었다.

그에 비해 나른하고 불량한 아이언맨의 매력은 얼마나 유혹적이던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헐크의 옆구리를 꼬챙이로 찔러댄다든지. 스스로 테마송을 틀고 등장하며 섹시한 농담을 던지는 그 여유는 또 어떻고. “로마노프 요원, 나 안 보고 싶었어?”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느른한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토니 스타크의 불량미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고지식했다. 생각해보면 난 그의 건전함이 참 싫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의 능력은 자연스레 리더를 선점하는 위압감이었다. 그 자신이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정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는데 모두의 암묵적 동의 속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리더가 되어있었다. 다른 캐릭터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것만큼은 투덜댈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이상으로 어울릴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으니.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캡틴 아메리카가 가진, 다른 불량 히어로들이 대체할 수 없을 그만의 희귀 기술이었던 셈이다.

캡틴 아메리카2는 고지식하고 근면한 스티브 로저스라는 인물을 위장하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어벤져스에서 압도적인 몸매를 자랑하며 샌드백을 치는 모습으로 관객과 인사를 나눴던 그 시절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스티브 로저스의 등장은 근면 성실하기 짝이 없다. 무려 아침 달리기로 포문을 여는 히어로라니. 그 와중에도 타인의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는 꼰대질을 놓치지 않는다. - 로마노프 요원이 캡틴 아메리카도 차를 훔치느냐고 장난을 걸었을 때 “빌린 거야. 훔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차에서 발 내려.”하던 스티브의 근엄함에 웃음이 터졌다. -

장한 일을 하고도 세계의 암적인 존재나 위협의 표적이 되어 신분과 얼굴을 감추는 여타의 억울한 히어로들과 달리 캡틴 아메리카는 타인의 귀감이며 청소년의 우상이자 아이의 꿈이요, 세계 평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추앙받는다. 스티브 로저스 또한 이런 현실을 일말의 갈등 없이 받아들인다. 그게 왕자병 같은 모습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객관화가 아주 잘 된 건강한 정신 상태의 인물이 아주 건전하게 스스로의 공로를 인정하는 형태로 받아들여져 거부감이 없다. 줄곧 냉소와 자기 비하에 빠져있는 타 히어로들의 고뇌에 비해 이런 스티브 로저스의 건전함은 산뜻하기까지 하다.

1941년, 캡틴 아메리카의 등장은 히틀러에게 주먹을 꽂는 파격적 행위로 시작된다. 미국의 반나치 히어로의 염원이 탄생시킨 캐릭터인 만큼 여느 히어로와 달리 정치적인 메시지를 설파한다. 그래서인지 신과 외계 종족이 등장하는 어벤져스의 캡틴과 단독으로 출연한 캡틴 아메리카의 캡틴의 이미지는 샴쌍둥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딴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벤져스에서 싫었던 그의 성격이 단독 작품에서는 각별한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유재석과 무한상사의 유부장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같은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을까.

미래적 자원과 첨단 기술, SF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데도 영화는 묘하게 올드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낡고 고루한 부정적인 감상이 아니라 어딘가 우아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이다. 그래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처럼. 선을 넘지 않는 말장난, 실물 크기의 적군과 품위를 지키며 싸우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은 고연령의 히어로를 배려한 제작진의 센스가 아닐까 싶었다. 21세기의 히어로 영화임에도 아날로그 시절 몸으로 싸우는 액션 히어로의 향수가 느껴진달까.

어벤져스에서는 캡틴의 무기마저 성에 차지 않았었다. 칼이 아닌 방패를 든 그는 여느 히어로에 비해 비효율적인 물건을 지닌 것만 같았으니까. 확실히 그 영화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액션 또한 부각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고.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2에서는 그의 방패가 얼마나 효율적인 물건인가를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방패와 거의 한몸이 되어 싸우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그것은 누구의 것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무기였다.

토르의 망치가 부럽지 않은 파괴력에, 핵폭탄도 막아줄 것만 같은 수트 부럽지 않은 내구성. 그 덩치에 어디로든 날았다가 주인에게 되돌아오는 날렵한 탄성까지. 이 모든 기술을 조금의 어색함 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방패 액션을 구사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몸짓은 마치 잘 짜여진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대단한 그리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캡틴 아메리카만의 최고의 능력은 방패도 액션도 아닌 그의 탁월한 리더십에 있었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내 시선을 끌었던 장면 중 하나가 불량학생 같은 토니 스타크가 의외로 실전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다는 것인데.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자 군소리나 비아냥 한마디 없이 “예스, 캡틴.”하고선 하늘로 퓨슝 날아가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그와 만났을 때 마치 경의를 표하듯 “캡틴.”하던 아이언맨의 목소리 또한 기억에 남았었지.

폭력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캡틴 아메리카는 그저 그의 목소리에 신뢰를 담아 타인을 설득시킨다. 그 마음에 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억지 감동으로 느껴지지 않고 관객마저 수긍할 만한 설득력이 깃들었다. 그 순간 그가 왜 칼이 아닌 방패를 들었는지. 최선의 기술은 공격이 아닌 방어와 포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면 승부를 던진 캡틴 아메리카는 나태와 타락을 오가며 비탄에 빠져있는 최근 히어로계의 트랜드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이나 힘이 아닌 설득이 최고의 비기인 히어로라니, 세계의 위협이 아닌 신뢰와 사랑을 받는 히어로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허약한 소년이 혈청을 맞고 초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 냉동 기술로 수년을 잠재워져 다른 시대에서 살게 되었음에도 딱히 정체성을 의심하거나 비탄에 빠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것이 칼이 아닌 방패를 든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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