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생태환경운동을 하다 지금은 지리산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필명 ‘지리산’님이 <미디어스>에 한 주 한 차례 글을 보내오기로 했습니다. 자연 속에 살며 세상을 맑히는 지리산님의 밝고 보드라운 시선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잘도 피어나는 사위질빵 흰꽃이 소리없이 시들고 보라빛 익모초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어머니를 이롭게 한다고 해 익모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는 지어미가 익모초 달인 물을 열심히 먹고 회임을 했다 합니다.

▲ 익모초꽃
밭과 집 주변 풀을 뽑으면서 익모초는 뽑지 않습니다. 단오 전에는 백초효소에 넣으려고 뽑지 않지만 단오 뒤에도 뽑지 않는 이유는 꽃이 적은 여름철에 벌들이 열심히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벌들이 얼마나 열심히 찾아오는지 익모초는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8월말에 피는 또하나 꽃은 한삼덩굴꽃입니다. 한삼덩굴은 사위질빵처럼 덩굴식물입니다. 무엇이든 타고 올라가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는 게 덩굴식물들 특징입니다. 봄에 덩굴식물들은 느긋하게 새싹을 땅 위에 내보냅니다. 다른 나무나 풀들이 열심히 잎을 틔우고 줄기를 올릴 때 이들은 조그만 싹을 내보내고 때를 기다립니다. 8월말쯤엔 일찍 나온 풀들은 조금 시들해지고 덩굴식물들이 주변을 온통 차지합니다. 그 중 한삼덩굴이 으뜸입니다.

봄엔 다른 풀처럼 앙증맞은 어린 싹을 내보지만 여름엔 밭이며 집주변을 뒤덮는 엄청난 풀입니다. 밭에서 한삼덩굴을 봄에 잡지 못 하면 밭농사를 포기해야 합니다. 줄기에 잔가시를 가지고 있어 낫으로 베기도 힘들고 다른 걸 칭칭 감고 올라가기 때문에 뽑기도 어렵습니다. 여름엔 자라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잠시 한눈 팔면 온통 한삼덩굴입니다. 어쩌다 한삼덩굴 가시에 살갗이 스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따갑고 가려운지 모릅니다. 이런 이유로 한삼덩굴을 항상 냉대해 왔습니다.

▲ 한삼덩굴꽃
올 여름엔 항상 냉대받던 한삼덩굴에게 벌들이 엄청나게 찾아오는 걸 보았습니다. 꽃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었기에 한삼덩굴의 꽃이 어찌 생겼나도 몰랐는데 겨울 날 식량 모으기에 바쁜 벌들이 한삼덩굴꽃에 많이도 찾아옵니다. 눈에 띄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꽃이 적은 여름철에 벌들에겐 아름답고 소중한 꽃임을 발견합니다.

올 여름엔 한삼덩굴을 새롭게 만납니다. 가시 돋히고 미운짓 한다며 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누구나 무한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어 내 눈을 새롭게 하면 반갑게 만날 수 있음을 한삼덩굴에게서 배우는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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