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까?”, 국회 한류연구회(공동대표 박병석·정병국)가 11일 주최한 <위협받는 영화상영, 관람의 권리> 토론회에서 한 패널은 이렇게 물었다. 한 영화가 있었다. 개봉하는 주 예매율 1위였고, 포털에서도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이달의 가장 보고 싶은 영화’ 1위를 줄곧 기록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상영관 100개(전체 스크린 수 2000여개 중)를 잡는 데 그쳤다.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당 영화의 제목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또 하나의 약속>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윤기호 PD는 이날 토론회에서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관객이 아니라 극장주, 자본에 있다”고 주장했다.

예매율 1위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100개, 왜?

이날 토론회에서 윤기호 PD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석 백혈병 황유미 씨와 그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휴먼드라마”라면서 “사회운동적 성격도 아니었고 사회고발 영화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영화는 상영관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 4월 11일 국회 한류연구회 주최로 '위협받는 영화상영, 관람의 권리' 토론회가 개최됐다. 주관은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담당했다ⓒ미디어스
윤기호 PD는 “과거 80년대에는 정부가 영화를 검열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아닌 멀티플렉스 대기업이 검열을 한다”고 토로했다. 윤 PD는 “해당 영화가 CJ나 롯데, 쇼박스 등이 투자해서 만든 것이었다면 이 정도(예매율 1위)의 관심이었다면 상영관 800개를 잡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해 윤기호 PD는 “‘작은영화’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21억5000만원이 들어간 영화”라면서 “하지만 대자본을 받지 않고 시민들이 투자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직접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윤기호 PD는 이어 “현재 영화는 극장 개봉이 아니면 수익을 창출할 길이 없다. IPTV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극장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라면서 “극장개봉을 못하면 관객을 만날 수 없고, 투자한 사람들의 권익도 보호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유사한 영화들은 또 있다.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와 <탐욕의 제국>이 그것이다. 다큐 <천안함 프로젝트> 배급사 아우라픽처스 정상민 대표는 유료방송 개봉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CJ헬로비전이 초기 화질문제를 들어 갑자기 VOD서비스를 중단했다”며 “문제제기를 하니, ‘사회적으로 민감한 영화여서 불필요하게 이슈가 되면 곤란할 것 같아 중단햇다’고 이야기하더라”라고 폭로했다. 그 후, 다른 IPTV 등 유료방송업체들도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을 하나 둘 중단해 나갔다는 것이 정 대표의 주장이다.

정상민 대표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사태는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며 “영화사는 이윤창출 방향으로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한국사회에서는 뻔한 영화들만 난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전체적 영화 상상력이 제한되고 한국영화의 역량 자체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대책을 주문했다.

다큐 <탐욕의 제국>을 배급했던 씨네마 달 김일권 대표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후폭풍에 휘말려 시사회 대관자체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에 패널 모두 공감했다.

영화상영, 어떻게 할 것인가?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스크린수와 상영회차 제한, △IPTV 등 유료방송 개봉 기회 확대, △상영표준계약 표준화, △‘작은영화’에 대한 마케팅 비용 지원 등이 그 대책으로 제시됐다.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최현용 소장은 ‘스크린수 제한’과 관련해 “하위쿼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위쿼터’란, 개봉영화의 수와 상영회차에서 마이너쿼터나 전용관 운영 등의 가이드라인을 의미한다. 최 소장은 “하지만 기존의 단일한 스크린수 기준보다는 ‘상영회차’, ‘공간적 배치’ 등 복합적인 상영 가이드라인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퐁당퐁당’ 상영을 막는 방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현용 소장은 또한 IPTV 개봉에 대해 “최근 IPTV용 영화가 급증하고 있다”며 “그런데, ‘5개 이상 스크린에서 일주일 이상 상영된 영화’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극장동시개봉(약 10000원)이라는 형태로 VOD서비스가 되고 있다. 이 같은 기준은 사실상 ‘작은영화’들의 상영기회를 제한하는 요소”라고 변경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윤철 감독(영화 <말아톤> 제작)은 ‘스크린수 제한’과 관련해 “상위쿼터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의 영화가 1300개 스크린을 독점하는 것은 심하다”며 “한 해 천만 돌파 영화 2개 생기는 것보다 500만 돌파 영화 수가 늘어나는 것이 정책적으로 옳은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어, “특정 영화의 스크린 수를 1/3으로 금지하는 법안은 충분히 <공정거래법>에 의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만일,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작은영화’ 상영기회 또한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윤철 감독은 ‘영화상영표준계약서’에 대해서도 “영화 상영에 대한 정확한 계약이 사전에 이뤄지지 못하니 첫 주 예매율 성적만 보고 극장이 스크린 수를 조정한다”며 “그런데 이를 막을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퐁당퐁당’ 상영 문제도 나타난다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정윤철 감독은 “독립영화나 작은영화들에 대해 정부의 마케팅 지원을 확대해 노출 기회를 확대시키는 정책도 고민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김혜선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투자계약서와 상영계약서를 공정거래위원회 및 영화계와 협의해 표준화 작업을 진행해 콘텐츠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 유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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