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4일 실시되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 후보자들은 기호 1번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후보자들은 기호 2번을 달고 뛸 수 있을 전망이다. 당초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은 지난 3월 2일 발표한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의 주요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기초선거 참패 전망과 당내 반발에 지도부는 한 발 물러서 9일 당원투표 및 여론조사 결과의 합산에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10일 오전 기초선거 공천 방침이 결론으로 내려지고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오후 4시 기자회견을 통해 승복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안철수, ‘당원의 뜻’을 출구로 삼았다
기자회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과정이나 이유야 어떠했든, 저희들마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또한 안철수 공동대표는 “정치인 안철수의 신념이 당원 전체의 뜻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당원의 뜻은 일단 선거에서 이겨 정부여당을 견제할 힘부터 가지라는 명령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당대표인 제 신념이 당에 강요되는 독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오늘 이후 당원의 뜻을 받들어 선거 승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모두 흘리겠다”라고 다짐했다. 본인이 ‘새 정치’의 모토로까지 격상시킨 ‘약속의 정치’를 철회하는 명분으로 ‘당원의 뜻’이라는 정당의 공적 절차를 내세운 것이다.
이에 대해 다른 정치세력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평가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선택이 ‘책임정치’를 받아들였다면서도,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는 파탄났다고 비판한다. 정의당 역시 기초선거 정당 공천 방침에 대해선 지지를 표하면서도, 9일 천호선 대표의 발언을 통해 “무공천 재고는 안철수식 새 정치의 종언을 고한 것”이라 해석했다.
가치평가를 분명히 하자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라는 공약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연합의 인식은 동의하기 힘들다. 새누리당이 제도 변경에 합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야당만 무공천을 고수하는 것이 ‘약속의 정치’라는 주장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내용적으로도 동의가 안 될뿐더러, 정치적 입장을 ‘약속 vs 거짓말’이라는 도덕적 이분법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제안을 철회하는 과정에서도 오류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현실론과 ‘당원의 뜻’을 끌어들인 부분도 깔끔하지는 않았다. 하루아침에 신념을 바꿨다 선언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그가 나중에라도 또 반정치적 대안을 정치개혁으로 제시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서 차후에라도 다시금 자기 평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김한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10일 국회에서 '기초공천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리더십 훼손이라기 보단 최악의 결말을 벗어난 상황
그러나 새정치연합 내에서 안철수·김한길 두 공동대표의 리더십이 큰 손상을 받았다는 일반적인 평에 대해서도 동의하기는 어렵다. 애초 기초선거 정당 무공천을 매개로 한 양 정치세력의 통합 자체가 무리수였다. 통합의 명분을 서너 가지만 더 대었어도 ‘성급한 결정’ 하나 정도를 수정하는 데 이 정도로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리더십 훼손’의 가능성은 표결 결과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애초의 통합 결정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었다.
어찌 보면 안철수 공동대표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기초선거 정당무공천’을 ‘약속의 정치’로 포장한 이상 그에게는 현실적으로 두 개의 결말이 있었다. 하나는 지방선거의 참패 이후 책임론에 맞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떤 명분을 통해서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물론 후자 역시 ‘모양 빠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애초에 주어진 결말이 그렇게 두 개였다면 그는 지방선거 참패를 통한 더 큰 리더십 훼손의 시나리오를 제거한 셈이다.
한상진 교수가 ‘문재인 정계 은퇴’까지 거론한 상황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문재인 의원을 예방한 것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11일 오전 발표될 중앙 선대위 체제는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와 문재인·손학규·정세균·정동영 상임고문·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포함된 '2+5' 형태로 윤곽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계파를 포괄하는 것이다. 이는 안철수 공동대표로서는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혼자 질 필요가 없는 구도라고 볼 수도 있다.
‘무색무취’ 안철수, 색깔을 보일 수 있나
결과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안철수 공동대표의 행보는 ‘무색무취’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무색무취하면서 제1야당의 지도부가 되었다면 정략을 발휘했다고 평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보기도 힘들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길지도 않은 정계입문 이후의 기간에서 특정 시기에 함께한 사람과 결별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최장집과의 결별이나 김성식·윤여준과의 두 번에 걸친 결별이 대표적이다. 이들과만 결별한 것이 아니라 전략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이름이 많이 나오지 않은 수많은 인사들과도 결별했기에 ‘자기 사람’이 축적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할 때 안철수 공동대표는 꽤 오래 지속된 ‘안철수 현상’의 힘을 지금의 위치로 바꾸었을 뿐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는 활용하지 못 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내세운 ‘새 정치’는 정리하자면 정치개혁과 민생정치의 요구를 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줄곧 말해왔던 것일 터이고, ‘새로운 것’을 말하려면 그 내용을 채우는 것이 관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공동대표는 정치개혁의 부분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나 정당공천 축소와 같은 ‘반정치’적 개혁안을 ‘기득권 내려놓기’로 치장했고, 이 부분이 논란이 되면서 민생정치의 내용은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했다.
그는 “선거 승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모두 흘리겠다”고 말했지만, 이제 이번 지방선거의 성패는 안철수 의원의 선전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지금의 정국은 돌고 돌아서 지난 대선 현 박근혜 대통령에게 맞섰던 야권이 모두 결집했을 뿐, 다른 새로울 점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겠으나, 이는 안철수 공동대표의 역량과 관련이 없다.
▲ 김한길(왼쪽),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10일 오후 국회에서 '기초공천 결정' 입장표명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현상' 이후 '정치인 안철수'
흥하든 망하든 그의 책임은 아닐 것이나, 성과나 실패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와, 향후 제1야당의 틀에서 어떻게 처신할까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정치개혁의 부분에선 제3정치세력을 말하던 시절 주장하던 양당기득권의 혁파를 여전히 추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정당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 좀더 많은 정당을 가능하게 하여 그들이 민의를 수렴하게 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제 제2당의 수장이 되었기에 그 분야의 ‘기득권 내려놓기’에 관심을 잃는다면, ‘안철수의 정치개혁’은 설득력을 잃는다.
민생정치의 측면에서도 너나할 것 없이 복지를 말하는 야권의 틀 안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본인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잊어버리고, 무성의하게 과거 정치인들은 민생을 말하지 않았고 내가 내세우는 정책만 ‘민생’이라 주장한다면, 그는 ‘무색무취’한 지금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안철수 현상’에 대한 분석이 아닌, 그 ‘현상’을 제1야당의 공동대표와 바꾼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실현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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