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이 SAC CUBE 2014 기획공연으로 선보이는 <메피스토>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전신인 <우어파우스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파우스트>가 그리스의 헬레네를 비롯한 방대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파우스트를 주축으로 다채롭게 전개된다면, <우어파우스트>는 주인공인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그레첸이라는 세 인물을 주축으로 한 담백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이번에 선보이는 연극 <메피스토>는 <우어파우스트> 마냥 세 인물을 중심으로 압축된 서사구조로 진행된다.

<파우스트>를 무대로 올린 많은 작품들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주요한 축으로 서사를 전개한 게 사실이다. <메피스토> 역시 주축이 되는 캐릭터를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펠레스로 설정한다. 그럼에도 <메피스토>가 기존 <파우스트>와 다른 다채로운 점이 있다면 욥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연극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다.

▲ 사진 제공 예술의 전당
파우스트의 영혼을 두고 신과 내기를 벌이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은 괴테의 원작과 동일하면서 동시에 성경 속 <욥기> 1장에서 욥을 두고 신과 악마가 내기를 하는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는 괴테가 <파우스트>를 집필할 당시 <욥기>에서 모티브를 얻었기에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는 건 스포일러가 아닐 듯하다. 왜냐하면 <메피스토>는 괴테의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는 재해석이 아니라 몇몇 오브제만 재해석을 가하는 수순에 머무르는 고전극이기에, 괴테의 원작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파우스트>의 결말이 어떻게 끝난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신과의 내기에서 다 이긴 듯한 메피스토펠레스가 거꾸러진다. 이는 신과 악마의 내기에서 내기의 승자로 보이던 메피스토펠레스가 실은 체크메이트를 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파우스트라는 체스 말을 두고 내기를 벌이던 악마가 별안간 패배당한다는 건, 신이 알면서도 져주는 듯한 제스처를 가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파우스트라는 체스 속 왕을 놓치지 않고 공략하는 모양새와 일치한다. 신과 악마와의 내기에서 인간을 유혹하고 꼬드기는 악마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기의 결정권을 신이 갖고 있다는 점을 <메피스토>는 잊지 않고 있었다.

▲ 사진 제공 예술의 전당
<메피스토>에서 중요한 건 결정론적 사고관이다. 신과의 내기를 언뜻 보면 파우스트를 유혹하고 그의 영혼을 공략하고자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자유 의지, 순진한 시골 처녀 그레첸을 갖고자 하는 젊은 파우스트의 자유 의지가 신과 악마의 내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악마의 자유 의지, 파우스트라는 인간의 지유 의지가 아니라 파우스트가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 신의 선택이다.

파우스트를 구하기로 작정한 신의 의지가 인간 파우스트의 우둔한 결정이나 파우스트를 꼬드기는 데 성공한 메피스토펠레스의 계략보다 우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즉 메피스토펠레스가 인간을 꾀기로 작정한 자유 의지보다, 신이 인간 파우스트를 구하기로 작정하는 결정론이 중요하다는 걸 연극의 마지막은 보여주고 있다. 언뜻 보면 신과의 내기에서 다 이긴 것처럼 기고만장하던 메피스토펠레스가 처량해 보이는 건 파우스트의 영혼을 건 내기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보이던 메피스토펠레스가 실은 허당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메피스토>의 처음과 마지막은 이렇게 자유 의지보다 결정론이 중요하다는 걸 놓치지 않고 있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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