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은 무척이나 친해지기 어려운 드라마다. 마치 상자 속의 상자 같은 이 드라마는 등장인물 전원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시청자를 지그시 응시한다. 진범과 진실이라는 알맹이를 맛보기 위해 벗겨 내는 껍질이 너무나 성가시다. 손에 잡히는 범인마다 진범에게 상납된 재물일 뿐이고 내 주위의 이웃은 배신자거나 유괴 조작단이거나.

등장인물의 차단된 시점이 극의 트릭이자 메시지인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서 꺼내놓은 모습이 진짜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누군가는 과거의 죄를 묻기 위해. 누군가는 악의를 선의로 포장하기 위해.

배우자를 향한 따뜻한 미소나 어린아이에게 내밀었던 호의마저도 협박과 탐욕이 시킨 위선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존경하는 남편, 내가 연애를 걱정했던 후배, 살가운 도우미 아주머니, 아름다운 첫사랑, 내 딸을 수시로 ‘실종’시켰던 아이의 아이돌. 온 사방 천지에 배신자를 깔아놓고 살았던 샛별이 엄마 김수현은 마치 지뢰 찾기 게임의 공백 같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들이 노리는 대상이 바로 내 딸이라는 것. 그들이 바라는 결말이 내 딸의 죽음이라는 것. 심지어 운명마저 내 편이 아닌 14일의 카운트 위에서 엄마 김수현은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진짜 14일에 한지훈(김태우 분)은 아이를 잊지 못해 발광하는 아내를 두고 끝내 대못을 박을 한마디를 던졌다. 첫사랑에 눈이 팔려서 아이를 내버려둔 당신의 방심을 용서할 수가 없다고. 그러나 리턴된 14일에 한지훈은 불륜의 앙금과 전화 속의 협박범에게 정신이 팔려 아이를 잃어버린다.

그날 샛별이를 주민아(김진희 분)에게 맡겨놓고 방심했던 김수현처럼 한지훈 또한 으레 잘하겠거니 싶어 도우미 아주머니께 아이의 안전을 맡겨놓은 것이다. 이것이 자의로 저지른 유괴 사건은 아닐지라도 순간의 어리석은 방심이 부른 미필적 고의인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이 드라마는 작가의 집착이 느껴질 만큼 몇 가지 코드에 집중한다. 그것은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의 방심이 타인의 안전을 해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 14일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샛별이 사건은 한 사람의 악의가 만들어낸 단독 범행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방심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집단 범죄나 다름 아니었다.

결국, 운명처럼 돌아온 쓰레기봉투 안의 그 옷을 입었던 날. 영리하지도 영악하지도 못한 엄마는 발작을 일으켜 아이와 떨어지고야 만다. 사악한 아빠는 형체 없는 인권 보호에 정신이 팔려 끝까지 아이를 지켜봐 주지 못했다. 망설인 끝에 샛별이를 데리러 나온 도우미 아주머니 또한 유괴범의 끄나풀일 뿐이었다. 찰나의 양심에 눈치를 주어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돌아선 샛별이는 역시나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 아빠에게 뛰어가지 못한다.

그 나잇대 아이에게 아이돌이란 백마를 타고 온 왕자님과도 같다. 스태프를 피해 숨어들었던 테오(노민우 분) 오빠의 차를 이번엔 정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숨어든 샛별이. 하지만 테오의 매니저는 울먹이며 유괴의 위험을 호소하는 아이를 보고도 좁디좁은 좌석의 틈마저 허락해주지 않았다. 제발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아이에게 택시비 줄 테니 알아서 가라고 하곤 그저 제 가수의 안위만 걱정되어 으름장을 놓는다. 열린 뚜껑의 틈 사이로 바라본 샛별이의 왕자님은 약에 취해 그의 팬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가까스로 택시를 탄 샛별이의 모습을 감시 카메라로 확인하며 수현은 안심했지만, 불행히도 샛별이는 어른의 보호 아래 종점으로 향하지 못했다. 매니저 아저씨에게 그 와중에도 택시비가 있다고 말했던 샛별이가 기사에게 꺼내 보인 돈은 달랑 천 원짜리 한 장뿐이었다. 택시 기사는 위그든 씨의 아량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젖내 폴폴 나는 어린 여자아이를 한밤중에 길가에 버려두곤 내뺐으니까.

집에서 살해 위협을 받았음에도 집 아니면 갈 곳이 없어 어떻게든 집으로 향하고 싶었던 샛별이. 결국 이날 샛별이를 끝까지 데려다 준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아이의 안전을 타인에게 맡겨버렸을 뿐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대신하겠지-하는. 범인의 끄나풀이 되어버린 도우미 아줌마. 이 와중에도 방심하는 부모. 택시비 대신 아이를 버린 매니저. 그 택시비조차 양보하기 싫었던 택시기사. 약에 취한 아이돌. 술에 취해 도움이 되지 않는 아저씨.

서로가 책임을 회피한 상황에서 샛별이를 마지막까지 책임지려 했던 유일한 사람. 그는 바로 기영규(바로 분)이었다. 누군가는 경멸했고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내 아이에게 주의를 시켰던 사람. 감시 카메라로 그의 모습을 확인한 기동찬마저도 – 형의 트라우마 때문이겠지만 – 영규를 믿지 못해 의심부터 했던. 언젠가는 샛별이 엄마에게 유괴범으로 오해받아 뺨까지 맞았던 영규. 그는 샛별이 엄마가 선물한 초록색 운동화의 약속을 떠올리며 장정에게 덤벼들어 샛별이를 지키고자 했다. 부모조차 방심하고 내버려둔 이 아이를 영규만큼은 마지막까지 내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잘못이라고, 잘못했다고 웅얼대며 더 잘했어야 했다고 미안하다고 자책하는 영규의 정의에 수현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내 아이를 품듯 영규를 품에 안는다. 부모마저 버린 책임감을 최후까지 사수한 노란 정장의 기사님에게 경의를 표하듯.

12회의 후반부에 묘한 감상을 남기는 장면 하나가 있다. 정신병동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제니(한선화 분)의 연기력이 필요했던 동찬과 수현. 마침 범인에게 당해 부어터진 얼굴을 스스로 내려치며 자해라는 병을 앓는 두 사람의 딸 역할을 연기한 제니였다. 그 열성적인 연기 때문에 보호자 역할로 진료실 안에 들어설 수 있었던 두 사람. 그런데 불필요하리만큼 길게 잡힌 이후의 의사 표정이 어쩐지 묘했다. "일단 검사를 좀 해야 하니까 보호자 분께서는 좀 나가주시겠습니까?" 아이의 부모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마치 선량한 의사에서 범인으로 돌변한 얼굴을 하고 비열한 표정으로 제니를 비웃는 의사. 드라마는 몸부림치며 외친다. 자칫 방심하고 책임을 떠넘긴 순간 아이를 지켜주는 어른은 없다.

인권 운동가, 존경받는 선생님, 사람 좋아 보이는 문구점 주인, 정다웠던 도우미 아주머니, 사랑받는 톱스타. 세상이 존경하고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사람들이 하나씩 본성을 드러내며 유아 범죄라는 최악의 사건을 이끌어내는 반면에 누구에게나 외면을 받았던 사회의 약자가 오히려 그 두렵고 외로운 밤에 샛별이를 지킨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아프고 쓰다.

덧. CCTV로만 보면 영락없이 샛별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모습처럼 보였던 돌을 든 영규. 오히려 아이를 살리고도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그의 아빠 기동호(정은표 분)의 모습이 겹쳐 보인 것은 저뿐만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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