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일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건 부부생활의 권태를 벗기 위한 활력소이자 설렘이라는 동기에서 출발하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맞은 남녀 가운데서 어느 한쪽이 정상적인 부부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바랄 때, 나머지 한쪽 사람은 ‘내가 장난감이었나’하는 의구심을 품기 쉽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원래의 부부 생활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이럴 때 <위험한 정사>의 상황이 되풀이된다.

영화 <가시>도 마찬가지다. 준기(장혁 분)와 영은(조보아 분)의 관계를 통해 <위험한 정사> 속 상황이 반복된다. 비의 향기에 취해 관계를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스케치> 속 수연(고은아 분) 마냥, <가시>의 준기는 비에 취해 제자 영은과 불장난을 하고는 다시금 부부라는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여제자 영은은 선생님인 준기가 자신을 계속 사랑하기만을 바라지만 준기는 영은을 밀어내려고 애쓴다. 여기에서 ‘인력’이라는 영은의 집착이 발흥하기 시작한다. 영은을 거부하는 준기를 원래의 생활대로 놓아주기보다는 준기를 다시금 자신의 품 안으로 가둬두고 싶은 집착이 싹튼다.

하지만 여고생의 집착에는 한계가 있다. 준기와 그의 아내 서연의 벽을 미성년자인 학생의 신분으로 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영은은 공고하게 결합한 부부의 정을 집착으로 헤집는 데 성공한다. 준기의 아내 서연을 영은이 과외 교사로 고용하면서부터 준기는 제자인 영은의 집착에 포획당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두 여성, 영은과 서연의 태도다. 만일 영은이 보통 집안의 딸이었다면 서연을 영은의 과외교사로 고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은은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의 재력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선생님의 아내를 과외교사로 고용하고는 준기를 사랑이라는 집착 아래 가두는 데 성공한다. 만일 영은이 과외교사를 고용하지 못할 처지의 재력을 갖지 못했다면 준기를 향한 영은의 집착은 일장춘몽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재력이 집착의 도구로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영은의 태도를 통해 보여준다.

<가시>에서 이해할 수 없는 건 서연의 태도다. 영은의 집착이라는 포위망이 옭죄어 올 때 준기는 교사를 그만두고 코치 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준기가 맡으려는 코치직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교사보다 봉급이 낮다는 점이다. 서연은 여제자의 포획망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남편의 바람을, 임금이 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코치직을 반대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지금보다 낮은 봉급으로 어떻게 생활하겠느냐는 서연의 논리 앞에서 여제자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준기의 바람은 허망하게 꺼지고야 만다. 영은이 준기를 집착의 포위망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준기가 다른 직장을 알아봄으로 여제자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 꺾이는 데에는 아내 서연이 한 몫 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남편의 제자에게 고용되고, 낮은 봉급의 직장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싫다는 서연의 바람이 여제자의 집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준기의 바람을 꺾어놓고야 만다.

<가시>는 돈으로 집착이라는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는 여제자의 광기와, 역시 경제적인 논리로 남편을 여제자의 집착에 포위당하게 만드는 아내 서연의 하마르티아가 복합적으로 얽힌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이다. 두 여자의 집착, 즉 경제력을 앞세운 영은의 집착과 역시 경제 논리로 남편의 바람을 꺾어버리는 아내 서연의 바람이 준기라는 한 남자로 하여금 어떻게 집착이라는 포위망에 얽히게 만드는가를 치열하게 보여주고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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