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MBC <음악중심>의 1위 후보 가수는 이선희, 임창정, 박효신이었다. 눈을 씻고 2014년이 맞는가 확인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한 시절 가요계의 레전드라 칭송받았던 이들이 2014년 4월 첫째 주 <음악중심>에 다시 1위 후보곡을 가지고 모여든 것이다. 그리고 이선희와 임창정은 같은 날 저녁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전설과, 전설을 노래하는 가수로 다시 조우하였다.

최근 <무한도전> 시청률이 예전 같지 못하자 트렌디했던 이 프로그램이 이제 한 물 간 것이 아니냐는 조급한 진단이 나오기도 했었다. 물론 오랜 세월 동일한 멤버로 지속되어온 <무한도전>의 피로도를 운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최근 이미자 그리고 이선희까지 이어진 <불후의 명곡> 특집이 너무 강력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싶다.

이선희 편만을 예로 들어 보자. 박정현, 윤민수&신용재, 더 원, 울랄라 세션, 장미여관, 홍경민, 바다... 이미 <슈퍼스타k>, <나는 가수다> 등은 물론 <불후의 명곡>에서도 몇 승을 거뜬히 거머쥐며 스스로 전설의 역사를 썼던 가수들이, 이선희라는 전설을 기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더구나 전설의 자리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임창정까지 그 대열에 합류했다. 거기에 그 예전의 이선희를 복기하게 하는 듯한 신인가수 벤에 그간 섹시 컨셉에 가려졌던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선보인 걸스데이도 선배 가수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이미자 편은 어땠을까? 역시나 그간 <불후의 명곡>을 통해 빛났던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총망라되었다. 왁스, 소냐, 거미, 알리 등 당대의 디바들이 이미자 선배님을 기리는 그 자리에 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노래를 불렀으며, 그들 못지않은 가창력의 정동하, 조장혁, 이세준이 자웅을 겨루었다. 울랄라 세션과, b1a4의 무대도 약방의 감초다.

<불후의 명곡>에선 훌륭한 가수들에 의해 멋진 편곡으로 거듭난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그렇듯, 제 아무리 향기로운 냄새도 어느 순간 무디어지듯이 늘 일정 수준 이상의 내용을 선보이고 있는 두 프로그램이지만, 거기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뻔하게 느껴지는 한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두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늘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을 상대하는 모든 프로그램들의 생로병사의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그 생로병사의 과정을 당기느냐 늦추느냐는 그것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재량에 달려 있다.

그런 가운데 <불후의 명곡>은 그간 아껴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그간 전설로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이미자와 이선희. 한국가요사에 있어 굵은 고딕체로 그 이름을 남기고도 남을 두 전설의 무대는 그 존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불후의 명곡>은 그저 전설을 모셨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전설의 이름값에 걸맞은 특집을 제대로 꾸려냈다.

이미자와 이선희 편에 출연한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가장 이선희스러운 혹은 이미자스러운 노래를 잘 소화해 낼 것 같은 가수들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리상자 대신 이세준의 가녀린 목소리를 살린 솔로 무대라든가, 이선희와 닮은 보이스를 가진 벤의 기용, 윤민수와 신용재의 콜라보레이션에, 그 등장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 박정현, 임창정처럼 전설의 색깔에 맞춰 가수들의 특징을 살려 절묘하게 재배치해낸 기획의 승리이기도 하다.

또한 이제는 모두를 들었다 놨다 하며 원숙미를 보이는 신동엽의 진행, 그에 못지않게 안정감 있는 진행을 보이고 있는 대기실의 정재형, 문희준, 은지원의 조화도 <불후의 명곡>을 그저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 이상의 예능적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초반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던 <나는 가수다>는 가수간의 서바이벌이라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사되어 갔다. 반면 아이돌 가요 무대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전설에 대한 축제의 장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불후의 명곡>은 여전히 순항중이다. 이미자, 이선희 편처럼, 여전히 우리는 건재하단 존재감을 뽐내며. 물론 1985년부터 월요일 밤을 묵묵히 지켜온 <가요무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긴 하다. 그 시절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대를 지키는 고정 시청자 층을 가진 <가요무대>처럼, <불후의 명곡>도 오래도록 가수들에게 좋은 무대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시청자들에게는 모처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오래 그 자리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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