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제작진과 협의 없이 <6시 내 고향> 진행자를 일방적으로 교체한 데 이어 전인석, 서기철 등 스포츠 중계를 전문적으로 했던 선임 아나운서들을 지역정책실 등 아나운서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인사 발령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KBS는 이에 대해 “봄 개편의 일환”이며 “인력 효율화”를 위한 조처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KBS 내부에서는 “인사를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KBS는 2일 저녁 7시 반 조건진, 전인석, 서기철 등 KBS에서 스포츠 중계를 전문적으로 맡아왔던 중견 아나운서 5명에 대한 인사 발령을 냈다. 조건진 아나운서는 수원센터운영부로, 전인석 아나운서는 2TV 편성부로 서기철 아나운서는 인재개발원 등 아나운서의 전문성과는 무관한 부서로 각각 발령이 났다. 특히 오는 6월 브라질월드컵과 9월 인천아시안게임 등 큰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단행된 인사라 “전문성을 무시한 인사”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3일 낮 서울 여의도 KBS본사에서 아나운서 전보 발령을 비판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KBS, 아나운서 전보 “시니어 인력 효율화 위한 것”

KBS는 이번 아나운서 전보 인사에 대해 3일 오후 입장을 내어 “시니어 인력 효율화를 위해 이뤄진 전보인사”라며 “현재 본사 아나운서실 인력은 T/O보다 현원이 27명이 더 많고 직무분석에서도 적정인원보다 8명이 초과하고 있는 상황으로 상위직급의 비효율화를 막기 위해 적정 인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이뤄진 인사였다”고 주장했다.

KBS는 또 “아나운서 직종은 꼭 마이크 앞에서 방송업무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직급에서는 방송업무뿐만 아니라 업무의 보폭을 넓혀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실무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회사와 본인 발전을 위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방송분야에서 참여도가 가장 높은 아나운서들이 수원센터 운영부, 지역정책실 등 부서에서 더 높은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비판이다. 더군다나 이번 인사 발령이 난 아나운서 다섯 명은 인사 명령서가 코비스(KBS 사내게시판)에 게시된 뒤에야 본인들이 전보 대상임을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입사 20년을 넘은 아나운서들이 통보 전화 한 통에 짐을 꾸려야 하는 현실은 분노를 넘어 착잡함마저 느끼게 한다”며 “이번 발령을, 막장 인사를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원들의 입을 막으려하는 저의에서 비롯된 기획인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KBS본부는 또 “그 대상자가 가장 취약한 조직인 아나운서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한다”며 “아무리 봐도 이번 조치는 사원을 생각하지 않는 사장과 아나운서를 생각하지 않는 아나운서실장이 만들어낸 막장드라마에 지나지 않는다”며 길환영 사장을 향해 인사 철회를 촉구했다.

▲ KBS '6시 내 고향'
KBS, <6시 내 고향> 진항자 교체 “봄 개편과 함께 추진된 것”

이와 함께 제작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6시 내 고향> 진행자를 교체해 논란이 일자 KBS는 “봄 개편과 함께 자연스럽게 추진된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앞서 <6시 내 고향> 제작진(김명우, 윤동률, 윤성도, 조규진, 최승현, 하동현)이 2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KBS는 3월31일 저녁 <6시 내 고향>의 진행을 맡고 있는 가애란 아나운서 본인에게 진행자 교체 사실을 통보했다. <6시 내 고향> 새 진행자로 낙점된 김솔희 아나운서는 1일 아침 야외촬영이 있는 상태여서, 결국 두 명의 아나운서가 서로의 일정을 바꾸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가애란 아나운서의 경우 최근 한석준 아나운서 등과 함께 기존 노동조합이 아닌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KBS본부를 가입한 것으로 드러나 ‘새 노조 가입에 따른 회사의 보복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KBS는 이와 관련해 이날 오후 입장을 통해 “KBS에서는 봄. 가을 개편 시기를 맞으면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고 아나운서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기위해 MC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까지 MC를 맡아 온 아나운서도 1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해왔고, 새로 MC를 맡게 된 아나운서는 <6시 내고향> MC 적격자라는 판단 아래 제작진이 지난해 봄 개편 때도 MC로 검토했으나 당시 TV 뉴스 앵커여서 보류된 바 있다”고 주장했다.

KBS는 또 “물론 MC 교체와 선정과정에서 CP와 팀장들과의 협의가 있었고 MC선정위원회도 거쳤다”며 “일부에서 MC가 노조원이기에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새 MC도 노조원이기에 이 주장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BS 주장과는 달리 현재 KBS본부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현재 제작진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자 교체를 통보한 점이다. KBS는 해명 글에서 제작진이 지난해 봄 개편 때에도 MC로 검토한 사실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말 그대로 지난해 봄 개편 상황일 뿐 현재 상황은 아니다. 더군다나 KBS는 “새 MC도 노조원”이라며 가애란 아나운서에 대한 불이익 주장을 일축했으나, 김솔희 아나운서는 KBS본부가 아닌 기존 노동조합 소속 노조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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