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주중 미니 시리즈 <신의 선물-14일>과 <쓰리 데이즈>는 동일한 스릴러 장르물이다. 또한 두 드라마는 동일하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쓰리 데이즈>가 대통령의 저격 사건으로 서두를 열었다면, <신의 선물-14일>은 김수현(이보영 분)의 딸 샛별(김유빈 분)이가 납치되는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16부작 드라마로 중반을 넘긴 두 드라마의 진행 상황은 전혀 다르다.

<쓰리 데이즈>는 대통령 저격 사건으로 시작하여 과거 양진리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대통령과 한태경, 그리고 그들의 반대편에 김도진과, 국정원, 여당 실세들의 명확한 전선이 형성되었다. 결전이 임박한 것이다. 반면 10회를 마친 <신의 선물-14일>의 경우, 이제야 샛별이의 사건이 과거 기동찬이 사랑했던 여인 수정이의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사건의 연관성이 밝혀졌지만 누가 샛별이의 범인일까는 아직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장르물에서 모든 사람들이 범인의 혐의를 받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설정이다. 그만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장면 장면 그 누구도 범인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의 선물-14일>은 10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이 반복되면서, 제작진이 이런 장르적 묘미에 너무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기 시작한다.

사실 시청자들은 처음 기동찬이 수현과 함께 등장했을 때, 그리고 그가 수현과 함께 물에서 살아나와 2주 전의 과거로 돌아갔을 때 이미 그의 형의 사건과 샛별이 납치살해 사건 사이에 관계가 있을 거라는 예측을 했다. 두 사람이 주인공이니 당연히 그럴 밖에.

그런데 드라마는 그 당연한 예측에 이르기까지 무려 10회라는 시간을 보낸다. 물론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니다. 처음 부녀자 연쇄 살인범 차봉섭(강성진 분)을 잡았고, 이어서 장문수(오태경 분)를 잡았다. 하지만 그들을 잡으면 조금은 분명해질 것 같은 사건의 윤곽은 마치 양파 껍질을 벗겨낸 듯 여전히 수많은 속살을 숨긴 채 시청자 앞에 던져진다. 샛별이의 엄마 수현이 절규하듯, 시청자들도 회를 거듭할수록 윤곽조차 알 수 없는 사건의 실체에 슬슬 지쳐 가기 시작한다. 마치 제작진이 맛있는 걸 숨겨놓고 나눠주지 않는 것 같아 약도 오르면서.

오히려 외부에서 벌어진 사건이 수현의 주변으로 오면서 수현 주변의 인물들 모두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수현의 남편(김태우 분), 그리고 그 남편과 내연의 관계에 있었던 수현의 후배 작가 주민아(김진희 분), 그리고 딸 샛별이가 좋아하는 가수 스네이크(노민우 분), 수현의 납치 현장에 찾아가 증거물을 숨긴 수현의 옛 애인 현우진(정겨운 분), 기동찬의 집에 뜬금없이 나타난 노인(신구 분)까지 모든 사람들이 샛별이의 사건, 그리고 과거 수정이의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그들 모두가 의심스러워진다.

그런데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수정이의, 샛별이의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 시청자들은 수현이 못지않게 답답함이 증가된다. 드라마가 2/3의 지점을 돌 즈음이 되었으면 대강 윤곽이 드러날 만도 하련만, 제작진은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매회 새로운 떡밥을 하나씩 던지면서 요건 몰랐지?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샛별이 모녀의 부산스러운 행보가 부각된다. 딸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왔다는 엄마는 딸을 방치하는 것만 같고, 엄마를 똑 닮은 딸은 갈 수 없는 나이임에도 스네이크의 콘서트장행을 감행하는 무모한 짓을 벌인다. 딸을 방치하며 사건을 해결하러 다니는 엄마나, 그런 엄마의 손아귀를 벗어나 제 나이 또래에 어울리지 않는 사고를 치는 딸내미에게 시청자들은 연민을 갖거나 공감하기보다 ‘왜 저러지? 심지어 저럴 시간에 딸을 돌보지, 혹은 쟤가 더 문제야’라는 부정적 인식을 매회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제 아무리 그들의 보디가드 기동찬이 매회 원맨쇼에 가까운 진기명기 연기력을 보이고 그것도 모자란 듯 직접 기타를 치며 '마법의 성'을 불러도, 비호감으로 전락한 두 여주인공들에게서 떠나가려는 마음이 쉽게 돌아오질 않는다.

<신의 선물-14>일이 던진 패는 만만치 않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와 관련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사형제도의 문제점도 걸려있다. 신구가 분한 기동찬네 집에 기거하는 노인이 사실은 대기업 회장이며, 그와 대통령은 한때 밀월 관계였으나 이제는 입장을 달리하는 사이라 하니 정재계의 커넥션 문제도 끼어 있는 듯하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는 인권 변호사로 명망을 날리지만, 윤리적으로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직업적으로도 역시나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한지훈(김태우 분)의 이중적 면모도 만만치 않다. 이들이 사건이 밝혀지면 마치 목걸이에 구슬이 꿰어지듯 한 줄에 엮일 것 같긴 한데, 도무지 드라마는 그런 결론에 냄새만 피울 뿐 10부에 이르도록 무엇 하나 분명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 없다. 마치 장기판에서 기동성 있는 차만 줄창 왔다 갔다 하고, 포 등 다른 무기들은 그저 한 발자국만 들락날락 하는 형국이다.

가지고 있는 패를 숨기고 위기를 조장하려다 보니, 능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뛰어든 여주인공과 그 딸내미가 민폐 모녀로 전락하고, 나쁜 놈인 것 같은 사람들은 어른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러는 동안 매회 끈질기게 따라오던 시청자들은 10회에 이르러서야 겨우 윤곽이 잡힐 듯한 <신의 선물-14일>의 긴 호흡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되어버렸다. 저렇게 벼르다 마지막에 제작진이 ‘이 사람이 범인이야, 이걸 몰랐지? 이런 사건이었어’하면 오히려 이까짓 걸 이제야 알려줘하면서 분노하게 될 것 같다. 수현과 기동찬은 몰라도 시청자들은 대강 돌아가는 사건의 정체라도 눈치 채도록 해야 장르 드라마의 재미를 놓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신의 선물-14일>은 너무 꼭꼭 숨어 술래가 찾다 해가 져서 집에 가버리게 만들듯, 숨겨진 패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크다. 숨바꼭질의 재미는 찾고 찾아지는 과정의 쪼이는 맛이다. 부디 남은 회차 동안이라도, 시청자들과의 숨바꼭질 대신 시청자가 지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호흡으로 드라마를 끌어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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