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불안했던 모양이다. 인터넷이 다시 뜨거운 여론의 진원지가 되지 않도록 방송통신위원회가 감시와 통제의 그물망을 겹겹이 쌓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망법) 시행령을 개정해 인터넷 이용자의 75%에 적용되도록 실명제를 전면 확대함과 동시에, 아예 망법 자체를 뜯어고쳐 ‘사적 검열’을 더 공고화하는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스
방통위가 지난 20일 발표한 망법 개정안은, 포털과 인터넷서비스 제공자(ISP), 거의 모든 웹사이트 운영자들을 포괄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광범위한 ‘사적 검열’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적 검열이 웬 말이냐’고 방통위는 발끈할지 모른다. ‘불법정보’의 모니터링을 의무화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번 물어보자. ‘내가 불법정보요’라고 꼬리표 달고 다니는 정보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불법자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돈이 없는 것처럼,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정보가 불법인지를 따지려면, 모든 정보에 대한 감시와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그걸 민간사업자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의무화한 것이다. 이게 바로 ‘사적 검열’이다.

지금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사적 검열’은 음성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망법 자체가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런 음성적인 ‘사적 검열’을 양성화해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 탓일까. 방통위는 사적 검열을 양성화·의무화해놓고선 과태료 부과 등 처벌조항은 따로 마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자발성’이라는 겉모습을 갖추기 위한 생색이다. 하지만 그 자발성이 못 미더웠던 것일 게다. 행정지도를 통해 유도하겠단다. 행정지도의 구체적 내용은 지난 7월 발표한 것처럼, ‘불법유해정보 신고센터’ 운영 강제와 ‘불법정보 관리실태 점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뿐인가. 현행 망법 제44조의2 제2항과 제4항은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주장만 해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해당 정보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접근을 30일간 임시 차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같은 법 제6항은 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고 있다. 방통위는 여기에다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보탰다.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때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도자료에는 마치 이런 처벌조항을 포털에게만 적용하는 것처럼 꾸며 놨다. “포털사는 관련 내용을 삭제, 임시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으나 제재조항이 없어”, “포털사가 의무조치 이행에 적극적이지 않아 피해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음” 등등. 방통위에 한 번 더 물어보자. 왜 여기서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포털로 축소 둔갑했는지 명쾌하게 말해달라고.

강력한 처벌조항을 추가하는 마당에, ‘개평’ 한 개도 안 주면 욕 들어먹기 쉽다. 그래서 하나 준 모양이다. 과태료 부과에 따라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삭제 등을 남용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게시물의 게재자에게 이의신청 기회를 준다는 게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선심 쓰는 개평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의신청을 심사하는 곳이 법원이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심의는 7일 안에 뚝딱 해치우도록 한단다. 사법부도 아닌 곳에서 표현의 자유 제한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 '광고주 리스트 게시물'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조치 결정을 다음이 게시물 등록자에게 보낸 통보문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면 꼼수를 피우기 마련이다. 방통위의 인터넷 통제가 여기에 제격이다. 하기야, 1996년 제정된 미국 통신품위법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의 맥락을 180도 뒤집어 ‘사적 검열’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악한’ 꼼수에 비하면, 지금 벌어지는 꼼수는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궁금증을 품게 된다. 정당한 규제에 대해서도 완화하라고 정부에 박박 대들던, 위헌심판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그 용감무쌍한 사용자들은 다 어디가고 정적만이 남아있는 것일까. 통신산업은 방통위의 한 마디에도 취약한 ‘규제’산업이라서 그런 것인가. 걸출한 역사학자 배링턴 무어가 그랬다. “부르주아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고. 무어가 여러 나라의 정치체제를 비교분석하면서 내린 이 결론은 한국에 딱 들어맞는다. 제 정신 박힌 사용자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현 정권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망법 개정안은 해킹 등 침해사고 발생 때 방통위가 침해받은 정보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누구 요청인데 안 받아들이겠는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들이 정치권력에 제 속살을 훤히 내보이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 내용에 뭐라고 의견을 낼지 궁금하다. 정부에 박박 대들던 사용자가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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