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26일 창당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2일 당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야권 통합신당’을 합의한지 24일만의 일이다.

통합은 비교적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두 개의 정치세력의 통합이 합의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사실상 완료되었다면 빠른 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는 것이 뼈아픈 일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첫 단추’의 문제일 것이다. 새정치연합 측은 그간 그들이 내세워 온 ‘새정치’에 여러 가지 내용을 집어 넣으려고 노력했지만, 통합의 순간 요구조건을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지지하는 차원에서의 기초선거 무공천’을 걸고 이를 ‘약속의 정치’로 치장했다. 타당하지 않은 제안이라 평가할 요소가 많을뿐더러, 지극히 지엽적인 이슈가 ‘새정치’의 상징인양 떠올랐던 것이다.
또 민주당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정치에서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기초선거 참패 시나리오’를 예측했다면 김한길 대표의 협상안에 대한 반발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약속의 정치’의 구도에 빨려 들어갔고 지금으로선 그것을 번복하기 힘든 입장이 되었다.
▲ 27일자 한겨레 6면 기사
당내에 반발이 많지만 복수의 정치평론가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원칙을 이제 와서는 번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25일자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한 과거 안철수 의원 측 고문이었던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안철수 의원의 리더십은 강하게 질타하였지만, 이 제안은 번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고원 교수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문제가 됐다"며 "단체장이나 기초의원 몇 개 더 건지겠다고 번복하면 신당 사령탑의 리더십은 치명타를 입게 되고 그러면 지방선거는 더 최악이 된다"라고 전망했다.
이어서 고원 교수는 "거짓과 싸우는 일 외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하겠다고 했으니 진짜로 공천권을 시민과 국민에게 돌려주는 공천혁명프로젝트를 지방선거에서부터 실제로 가동해야 한다"며 "이번 지방선거부터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혁신적 처방안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공천혁명 없는 정치혁신, 새 정치는 공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의 이대근 논설위원 역시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27일 공개된 <경향신문>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데> 20회에 따르면, 이대근 논설위원은 “시민들은 지금 무공천 여부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지 않은 것 같다. 무공천하면 감동하고 공천하면 분노로 끓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당이 어떤 후보를 낼 거냐, 어떤 공약, 어떤 것이 선거의 쟁점이 될지에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승부수가 시민들에게 먹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대근 논설위원은 새정치연합이 기초공천을 하는 것으로 선회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선 때 안철수 의원·문재인 의원이 약속했고, 대선이 끝난 뒤에도 민주당과 새정치추진위원회에서 무공천한다고 두 번째 약속을 했다. 두 당이 통합하면서 또 무공천 약속을 했다. 삼중 약속을 했다. 이를 다시 뒤집어 공천한다면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다시 돌리기엔 너무 나아갔고, 이미 늦었다”고 진단했다.
결국 퇴각이 불가능하다면 돌파 밖에 답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식출범을 통해 원내 130석을 가진 제1야당의 지도부가 된 김한길, 안철수 1년 임기 공동 대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참패한다면 그들의 ‘약속’이 당내에서 질타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들의 처지로도 그런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통합의 ‘첫 단추’는 문제였지만, 출범의 ‘첫 단추’는 나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7일 첫 입법 활동으로 ‘세 모녀 자살사건’에서 드러난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복지 관련 3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통합 과정에서 청와대와 여권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민생 문제에 일단 주목한 것이다.
▲ 김한길(왼쪽),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빌라 지하에서 이인숙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본인과 아들, 남편 모두 장애를 앓고 있는 이 씨는 "벽 앞에 선 느낌이라 자살시도를 네차례나 했다"며 눈물을 닦았다. (연합뉴스)
만시지탄의 느낌도 있으나 비교적 일찍 통합이 이루어져 지방선거까지 만 두 달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보문제에선 중도층 유권자를 챙기면서도 민생 문제에 있어선 복지제도를 정비하거나 확충하는 것은 나름 유권자의 열망을 대변한 바가 없지 않다. 다만 보수언론이 환영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긍정의 부분은 당내외 진보파와 토의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에서 그나마 의미있는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이 ‘첫 단추’를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 존재한다 생각되는 고질적인 계파갈등을 반복한다면 결과는 불보다 뻔할 것이다.
▲ 27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측에 힘을 실으려는 것처럼 보이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나 조경태 의원이 ‘문재인 의원 퇴진’과 ‘친노 배제’ 운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문재인 의원은 민주당 시절에도 당내에서 역할을 맡지는 못했다. ‘NLL 대화록’ 공개 정국에서 당에 나쁜 결과를 가져올 행위를 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그에게 퇴진을 운운한다면, 굳이 국회의원을 한 석 버려 새정치민주연합의 크기를 줄이자는 것일까? 안철수 대표의 말처럼 문재인 의원의 그 선택에 비판적이었다면 그 문제에 대한 품평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한상진 교수같은 식이라면 이번 지방선거가 참패할 경우 다른 쪽에서 ‘안철수 대표 사퇴 및 정계은퇴’를 주장할 판이다. ‘친노 배제’ 운운도 친노란 범주가 무의미하지는 않으나 이제는 너무 제각각으로 쓰이는만큼 무슨 일에 대한 책임을 무슨 일을 했던 이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정도의 구체성은 가지고 얘기해야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다. 이유야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겠지만 지난 대선은 패배로 끝났다. 이 패배를 상대 계파의 책임으로 환원하는 자세를 벗어날 때에야 새정치민주연합의 환골탈태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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