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이 무사히 끝났다. 2008년 이후 6년만의 3국 정상회담이라고 하며, 22개월만의 한일정상회담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최초의 정상회담이 된다.

▲ 현지시간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이 무사히 끝났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 내용을 따지면 북핵문제를 고리로 한 3국의 공고한 협력관계를 추진한다는 것과,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를 추진한다는 것 등이다. 대개의 언론은 3자 정상회담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현재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 과거사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현상만을 짚은 것이다. 이번 회담 결과를 놓고 한일이 북핵 문제에 대해선 협력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평하지만 이도 진부한 말이다. 일본 정부가 북핵을 용인할 가능성은 애시당초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는 나라다. 비록 한국과 역사문제로 갈등을 빚는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볼 때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을 하지 않을 위치가 아니다. 양국이 과거사 문제에서 갈등하더라도 북핵 문제에서 공조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분쟁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한일 과거사 분쟁은 한일 간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공동 대처를 불러온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종종 보았던 바, ‘한중 vs 일’의 구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인 재균형 전략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찾는 것을 핵심으로 하지만 미국 측의 과도한 군비부담을 바라지는 않는다. 일본의 재무장이 미국의 재균형 전략의 양해 하에 있다고 우리가 의심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면 미국의 재균형 전략은 어디를 타겟으로 하고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북한일지 모르나 실질적으로는 중국이라는 것이 전문가나 관계자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중론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미국과 중국이 미묘하게 협력하면서도 파워게임을 벌이는 이 상황 속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의 한 축으로 기능해야 한다. 일본처럼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더라도, 만만치 않을 부분으로서 말이다.
즉 미국으로서는 일본 정부와의 협력하에 그 재무장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으면서도, 일본 정부가 지나친 극우적인 발언으로 중국과 한국을 결속시키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미국이 종종 아베 정권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일본과 한국에 쓸 수 있는 카드가 많기 때문에 그 딜레마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뒤집어서 한국의 딜레마를 보자면, 미국 주도의 외교·안보 질서를 단시간에 이탈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며,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 질서에 속해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중국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되며 심지어는 그들을 대북관계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질서에 들어와 중국을 배려하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선 아무도 답을 할 수 없는 형국이다.
25일의 정상회담을 전하는 26일의 언론보도에선 이런 종류의 문제들은 크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언론들이 이 문제를 전혀 몰라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문제들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되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외교적 난맥상들의 진정한 원인은 조심스럽게라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통일은 대박’이라는 허황한 수사를 고집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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