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24일 부산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기초공천 폐지는 정치개혁을 위한 공약이었지만 새누리당이 의사가 없는 상태가 민주당만 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결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의원은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에 대해 “당원들에게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출구전략을 제시했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도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을 필두로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이부영 상임고문까지 기초공천 폐지 방침에 대한 재검토를 주장한 상태다. 이는 통합신당 측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일방적으로 하지 않았을 때의 선거 결과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장에는 ‘통합’에 방점을 찍고 환영했으나, 그 통합의 명분이 된 제안을 실행할 경우 지방선거에서 선전하기는커녕 재앙적인 결과가 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횡행한 것이다.
그러나 통합과정에서 민주당 측과 새정치연합 측이 이 문제를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약속의 문제’로 정의했기 때문에 퇴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그것(기초선거 공천 폐지)을 뒤바꾼다는 것은 정치집단이 아니라 사기꾼 집단이 되는 것인데 국민을 믿어야지 왜 잔계산만 하는가”라며 사실상 문재인 의원 등 기초선거 무공천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했다. 김부겸 예비 후보는 “지금 와서 그것(무공천)을 다시 뒤집는다면 정치 자체가 국민들에게 쓰레기취급 당할 것”라고까지 말했다.
양자가 갈등하고 있을 때 그나마 타당한 의견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판단을 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문제는 이 문제가 통합신당에게 있어 명분에 있어서나 실리에 있어서나 풀기 어렵게 꼬인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잘못 뀐 첫 단추가 애초 생각보다 훨씬 나쁜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이것을 다시 풀려고 해도 또 그에 못지않은 나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측과 새정치연합 측은 애초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중앙위원장의 협상을 통해 전격적으로 통합신당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때에 명분으로 삼은 유일한 것이 ‘기초선거 무공천’이었다. 만약에 이 제안을 철회하게 된다면 두 정치세력의 결단은 ‘야합’으로 몰릴 소지가 더욱 커진다. 애초에 새정치연합 측과의 연대 및 합당을 간절하게 원했던 민주당 측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 측으로는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철회를 하더라도 철회의 절차를 섬세하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민주당 문재인 의원의 주장은 다소 배려가 부족한 것처럼 들린다. 물론 이 문제가 김한길 대표의 독단적 결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의사를 수렴해야 했던 문제였다는 주장은 원론적으로 옳다. 비록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당원 투표를 통해 당론으로 제시되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 새누리당이 공천을 하는 상황에서 통합신당이 무공천을 하는 상황에 당원들이 합의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한길 대표의 결단은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 추인을 받은 바 있고, 양 정치세력이 통합을 진행 중에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원의 의사만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새정치연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출구전략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방침의 철회에서 모양새가 더욱 안 좋아지는 것은 새정치연합 쪽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굳이 비전위의 합의를 통해 기초선거 무공천 제안을 철회하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비전위는 민주당 뿐 아니라 새정치연합의 입장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양 정치세력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모양새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촉박함을 고려해봤을 때도 이쪽이 더 실효적인 해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의 주장은 이 출구전략이 새정치연합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담쟁이포럼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민주당 의원 중엔 비교적 안철수 의원 측에 가까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을 출범시킬 때 안철수 의원은 대구시장 후보로 김부겸 전 의원을 영입하려 했지만, 김부겸 전 의원은 분열된 야당의 후보로는 나오지 않겠다고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24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김부겸 예비후보의 입장에서는 ‘통합’의 당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수가 있다. 그리고 기초선거에 나서는 후보가 아닌, 민주당 지도부나 광역선거 후보의 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 민주당의 현실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문제만으로도 이렇게 난맥상인데 여기에 한상진 교수와 민주당 조경태 의원, 박지원 전 원내대표까지 끼어 있는 ‘문재인 사퇴’ 및 ‘친노 배제’ 문제까지 있다. 지지율이 오를 요소보다는 서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물려서 다툴 요소밖에 없다. 통합신당의 ‘컨벤션 효과’가 금세 사라져 버린 난맥상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각개약진 ‘언론플레이’ 대신 최대한 넓은 논의의 틀을 구성하여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