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귀국해 광주교도소에 유치되어 하루 일당 5억원의 노역을 선택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는 2010년 광주고법이 허재호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하루 5억원으로 환산에 노역장에 유치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허재호 전 회장은 약 50여일간의 교도소 유치 노역 후 벌금형을 면하게 된다.

▲ 수백억원대 벌금과 세금을 미납하고 해외로 도피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2일 국내로 들어와 곧바로 노역장에 유치됐다. 2010년 초 재판 중 뉴질랜드로 건너간 허 전 회장에게 당시 법원은 1일 노역의 대가로 5억원을 산정한 초유의 판결을 선고해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허 전 회장은 영장 실질심사 중 1일 구금으로 5억원을 줄여 벌금 249억원을 49일 노역장 유치로 탕감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영장실짐 심사를 받기위해 법정으로 들어서는 허 전 회장. (연합뉴스)
과거 대기업 총수에 대해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정찰제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특별사면이 이루어지면 대기업 총수들은 천문학적인 기업범죄에 대해서도 실형없이 면죄부를 받았다. 하지만 허재호 전 회장의 ‘일당 5억’은 과거 재벌들에 대한 일당 기준에 비해서도 현저히 높다. 2008년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이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으면서 미납할 경우 하루 노역 환산액 1억1천만원으로 노역장에 유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1000일을 일해야 벌금을 갚을 수 있었는데, 이는 법적으로 허용된 ‘벌금 대납’ 노역이 1일 이상 3년 이하였다는 점에서 제도의 내부에선 최소한의 양심을 지킨 일이다. 물론 이건희 회장의 경우 어차피 벌금을 납부할 것이었기에 이 판결의 부조리함은 그 부분에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허재호 전 회장에게 ‘1000일’이라도 적용했다면 그의 일당은 2500만원 정도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당 정책위는 “일당 5억 원은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보다 5배 정도 높고,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보다 일당이 10배나 높은 수준”이라며 비판했다. 또 노동당 정책위는 “불평등한 형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제시되는 대안”으로 “일수벌금제(日數罰金制, Daily Fines System)”를 들고 나왔다.
노동당 정책위는 일수벌금제에 대해 “유치기간을 먼저 산정하고 벌금미납 시 경제능력을 감안해 노역 일수별 액수를 산정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첫째가 ‘일수 확정’의 단계로 “법원은 법의 규정 및 양형원칙에 따라 일수를 확정”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법률에 따른 양형의 모든 요소가 고려”된다. 말하자면 이 단계에서도 피고인의 경제적 여건이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수벌금액의 결정’으로 “피고의 수입, 평가 가능한 재산, 실질적인 생활정도를 고려하여 매일 감당(지급)할 수 있는 평균금액이 결정”된다. 이 결정 전에 제도적으로 “미리 벌금액의 일수벌금액의 최저액과 최고액이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 노동당 측의 설명이다. 이후 세 번째로 ‘벌금납입 방식의 결정’ 단계로 넘어가 “벌금의 즉시납입이 어려울 경우 분납 또는 연납을 결정”한 후, “벌금의 납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노역을 선택”하게 된다.
노동당 정책위는 이러한 일수벌금제의 긍정적 효과가 현행 총액벌금제가 가진 “경제능력에 따라 처벌의 효과가 반비례하는 경향”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몇몇 도입반대론에 대해서도 나름의 반박을 한다.
노동당 정책위는 일수벌금제에 대해 “해외에서는 핀란드(1921), 스웨덴(1931), 덴마크(1939), 독일(1971), 오스트리아(1975), 프랑스(1983), 스위스(2007) 등이 채택하고 있다. 이 외에 페루, 멕시코, 브라질, 쿠바 등 남미국가에서도 일부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적용사례를 보면, 핀란드의 핀리틸라 그룹 야리 바르 회장은 과속운행 벌금으로 우리 돈 약 2억 원을 내야 했다. 기준속도를 1km/h 위반했다는 이유였다”고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돈 많은 이들은 평소에는 재산과 상관없이 남들과 같은 벌금을 내지만, 천문학적인 벌금을 노역으로 때울 때엔 제도적·인권적 한계로 인해 ‘노역 일당’이 높아지는 기형적인 상황이 생긴다. 노동당 정책위가 제시한 이 일수벌금제는 이 ‘이중차별’에 대한 시정의 시도라는 점에서, 이 제도가 작동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 및 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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