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측이 청와대 민관합동 규제개혁회의 생중계, 친박인사 고성국 정치평론가 기용 등 잇따라 불거진 ‘방송공정성’ 문제를 논의하는 노사 공정방송위원회를 일방적으로 결렬시켰다. KBS 양대 노조는 사측의 ‘공방위 부정’을 단체협약, 편성규약 무시 행위로 판단, 공동 피케팅을 벌이는 등 반발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노동조합 노조원들은 24일 오전 11시 40분부터 20여분 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1층 로비에서 '공방위 파행' 및 '친박개편' 규탄 피케팅을 벌였다. (미디어스)

KBS는 지난 20일 청와대 민관합동 규제개혁회의를 KTV 화면을 그대로 받아 생중계했다. 1TV 편성 실무자조차 영문을 모르고 있을 만큼 생중계 결정은 급작스레 이뤄졌고, 내부에서는 KBS가 ‘공영방송’이 아닌 ‘관제방송’을 하고 있다는 자조가 나왔다. 이날 청와대 회의는 KBS뿐 아니라 MBC, SBS, OBS와 포털 사이트까지 생중계에 가세해 ‘청와대 홍보매체’로 기능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또한 KBS 1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를 폐지하고, 신설 TV 프로그램 <시사 진단>의 MC 최종후보로 고성국 평론가를 포함시키는 등 제작자율성을 위협하는 일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측 위원 “편성에 노조가 간섭할 권한 없어”… 10분 만에 공방위 ‘일방 결렬’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는 지난 21일 열린 3월 정례 공정방송위원회에서 제작자율성 침해 안건을 중심으로 사측의 ‘공정방송 의지’를 따져 물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회의는 사측의 일방 결렬 선언으로 10분도 되지 않아 파행을 맞았다.

새 노조가 24일 낸 새 노조 특보와 성명에 따르면, 첫 번째 안건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폐지 등 1라디오 제작자율성 관련 건’을 논의하기 위해 사측 위원으로 나온 이제원 한민족방송부장은 “편성 과정에서 제작자율성 침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라며 노조의 문제제기를 무시했다.

새 노조가 공개한 공방위 녹취록에 따르면 이제원 부장은 “편성에 관한 권한은 노측이 거기에 대해서 간섭할 권한이 없어요. 어떠한 것이라도 편성의 독립성은 흔들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새 노조는 “통상 본부장이나 국장급이 공방위 사측 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1라디오와 관련 없는 한민족부장이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이 부장의 발언은 공방위에 참석한 KBS 부장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비상식적이었다”고 질타했다.

이어, “노사가 공동 합의한 단체협약서에는 ‘공방위는 공정방송에 대한 편성·제작·보도와 관련한 제반사항을 논의한다’고 규정돼 있고, 방송법에 따라 제정된 편성규약에는 ‘각 본부별 편성위원회에서 조정이나 해결되지 않은 사안은 전체 편성위원회에 상정하며, 전체 편성위는 공방위가 그 기능을 대신한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며 “편성과 관련된 문제가 공방위 안건이 될 수 없다는 이 부장의 발언은 이런 단체협약과 편성규약을 명백히 부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새 노조는 “사측 위원이 노사합의를 전면 부정하는 이런 발언을 노측을 상대로 고성과 호통을 치며 하는데도, 사측 대표인 류현순 부사장이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노조가 이 부장의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항의하자 해당 안건을 다룰 경우 공방위를 계속할 수 없다며 회의장으로 돌아오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렬을 선포했다”고 밝혔다.

새 노조는 “노사 협의를 통해 채택된 안건이 공방위 자리에서 사측 말바꾸기로 인해 다뤄지지 못한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노사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던 김인규 사장 시절에도 사측이 이런 식으로 공방위를 결렬시킨 경우는 없었다”며 “친박 개편에 대한 회사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아예 공방위 자리에서 개편 논의 자체를 차단하려던 것은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권오훈 본부장과 KBS노동조합 이현진 부위원장이 공정방송 쟁취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디어스)
양대 노조, “공정방송 의지 없는 길환영은 물러가라” 피케팅

사측이 공정방송 논의를 차단하자, 새 노조는 24일 오전 8시부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1층 출입구 앞에서 피케팅을 했다. 오전 11시 40분부터는 새 노조,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 이하 KBS노조) 노조원 40여명이 공동 피케팅을 벌였다.

양대 노조는 “정권홍보 혈안이 된 길환영은 물러가라”, “공정방송 포기하면 수신료는 못 받는다”, “공방위 파행 부추기는 류현순도 집에 가라”, “KTV 수중계한 임창건은 자격 없다”, “말로는 경쟁력 속으로는 친박개편”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권오훈 새 노조 본부장은 “오늘 피케팅은 처음으로 KBS노동조합과 언론노조 KBS본부가 함께 운동했다는 점, 이 자리에서 길환영 사장 퇴진 구호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두 가지가 지금 사태의 엄중함을 잘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며 “오늘 투쟁을 시작으로 앞으로 최소한 관제방송 이야기는 듣지 않도록 투쟁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현진 KBS노조 부위원장은 “공정방송에 노조 구분도 직종 구분도 필요 없다고 본다”며 “공정방송에 대한 양대 노조의 투쟁이 본격화됐다. 서로 힘을 합쳐 정권홍보 개편을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피케팅을 하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조원들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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