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은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 쓸데없는 게 어디 있으랴. 출근길 지하철에서 상사를 만나 영혼 없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별로 친하지 않는 동료를 만나 공기의 무게를 실감할 때면, 잡담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말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지 않는가. 소개팅은 어떤가. 말주변이 모자라거나 숫기가 없어도,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무슨 말이라도 입 밖으로 꺼내야 할 터, 진심을 바로 꺼내면 상대에게 부담을 줄지도 모르니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 잡담이 인생을 바꿀 기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과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으로 잘 알려진 일본 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잡담이 능력이다>에서 잡담이 의미 없는 이야기, 실없는 이야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이 잡담이기에, 잡담을 필요 없는 이야기라고 폄훼하는 건 잘못이라 말한다. 대화에서 중요한 건 용건이지만, 용건만 나누는 대화는 단조로울 뿐더러 필요에 따른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또한 용건만 나누어도 불편하지 않은 친숙한 관계에 이르는 데에도 역시 잡담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리하여 잡담 역시 또 하나의 자기계발 항목으로 올라선다.
이 책은 잡담의 다섯 가지 법칙, 잡담의 기본 매너,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잡담 단련법, 비즈니스 잡담법 등으로 구성되는데, 앞서 말한 잡담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잡담의 원리 원칙을 밝힌 후, 이에 따라 잡담을 잘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전하며 훈련을 통해 누구나 쉽게 잡담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잡담은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기 떄문에 갑작스레 화제를 바꿔 잡담을 지속하면서 잡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거나, 결론은 필요하지 않지만 깔끔하게 마치며 좋게 헤어지는, 그러니까 웃으며 "그럼.", "다음에 또"로 마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은, 잡담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에게 잡담학 개론까지는 아니어도 잡담에 고민해볼 만한 필요가 있겠다는 정도의 감각을 전한다.
구체적 조언으로 들어가면 기억해둘 만한 지점이 늘어나는데, 갑자기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우선 칭찬부터 하라는, 마땅히 칭찬할 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부분, 예를 들면 넥타이가 멋지다며 말을 시작하면, 상대 역시 기분 좋게 말을 받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조언에서 시작해서, 상대가 하는 말에 내 이야기를 붙이기보다는 질문으로 상대가 이야기를 끌어가도록 만드는,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할 화제가 없고, 수다를 좋아하지도 않고, 말솜씨가 뛰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한 잡담을 나눌 수 있다는 조언까지, 잡담에 대해 따로 고민하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잡담 인생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불필요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막막한 상황을 종종 겪는 잡담 초심자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될 세밀하고 분명한 지침이 이어진다.
결론에 이르면, 용건과 관련한 이야기만으로 상황을 끝내면 절대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할 수 없다며, 잡담이라는 잡초를 잘 키워야 꽃도 자랄 수 있는 이야기의 땅이 만들어지고,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구원받고 치유되니, 잡담이란 '살아가는 힘' 그 자체라고 강조하는데, 대체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의 용건을 벗어난 생각의 잡담이 다른 곳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거의 다루지 않은 오늘날 잡담의 현장, 그러니까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따른 잡담의 양식 말이다.
본문에서는 직접 만나 이루어지는 대화만을 다루는데, 인터넷의 등장과 SNS의 확산으로 잡담의 현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직장 동료와 하루에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경우가 흔하지만, SNS에서는 (남들이 절친이라 오해할 정도로) 즐겁게 잡담을 주고받는다. 물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 대화, 잡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업무 현장은 어떤가. 이메일이 보편화되고 간단한 업무 보고와 지시를 메신저로 전하면서 용건 아닌 잡담의 비율은 현저하게 줄었다.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에는 하루에도 수 차례씩 업무 소통을 하는 관계이지만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경우에는 잡담을 건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SNS에서 흔히 드립의 형태로 나타나는 잡담은, 불특정 다수에게 던지는 잡담인 동시에 자기에게 건네는 잡담이기에, 누가 듣기를 바라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가 듣기 위한 잡담이기도 할 텐데, 이렇다면 앞서 설명한 잡담의 다섯 가지 법칙, 잡담의 기본 매너,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잡담 단련법, 비즈니스 잡담법에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모두 헛된 망상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대화로 가는 과정이 불필요한, 언제나 대화에 접속해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잡담 없이도 대화가 가능한 방식으로 잡담의 진화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물론 이 글은 잡담에 대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잡담에 불과하다. 이 책이 알려준 법칙을 제대로 활용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대화에 참여할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좋겠지만, 내가 그 결과를 알 방법은 없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 잡담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의 책을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꾸며 삽니다. 공식 애칭은 서경식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바갈라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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