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태지컴퍼니

서태지는 가히 서태지였다. 귀환은 성공적이다. 그의 ‘대원’들은 역시나 충성스러웠고, 그가 이끄는 무리들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변함없었다.

물론, 이제 그가 더 이상 시대의 살아있는 지배자가 아니라는 잠재되어 있던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의 컴백 이후에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들’쯤 되는 전스틴(전진)과 이횰(이효리)의 순위 프로 지배는 여전했고, 또 그 ‘아이들’의 막내 동생뻘 되는 ‘빅뱅’이 줄기차게 그리고 확고하게 검색어 순위를 사수했다.

그렇다. UFO, 서태지는 필연적으로 UFO이다. 그는 언제나 한국 사회의 미확인 비행물체였다. 날되 끝내 땅에 발을 딛지 못하는 무엇. 그 애매모호한 무엇으로의 서태지는 이번에도 변함없다. 이쯤에서 받아들인다. 92년도에 데뷔한 서태지가 92년생들을 주력으로 하는 원더걸스(소희, 선미)를 제압할 수는 없다. <서태지, 문화대통령인가 vs 비즈니스맨인가>를 끝짱토론(XTM, 백지연의 끝짱토론, 8월 8일)해봐야 스타일의 절대자 권지용(빅뱅의 G-드래곤)의 ‘반삭’(반만 삭발한 헤어스타일)보다 흥미로울 순 없다.

‘소리쳐 주던, 예쁘게 웃었던 우리들만의 추억’도 이젠 많이 흘러갔다. 그냥 흐른 것은 아니다. 몇 번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닳아갔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취업’을 했다. 마냥 소리를 지를 수도 예쁘게 웃기만 할 수도 없다. 이젠, 써도 삼켜야 한다. 조금 더 옥탑방의 습한 에로스를 즐겼더라면 좋았으련만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니면 미쳤거나 ‘결혼’도 했다. 아이의 돌잔치를 ‘씨푸드 뷔페’에서 할까를 고민하고, 펀드와 CMA의 차이쯤도 이해해야 인생의 테크트리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됐다. 기성세대 전체를 향해 ‘난 알아요’를 외쳤던 때가 있었나 싶고,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 싶었는데 문득 가슴 한 쪽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아련하게 저려오려 한다.

서태지를 아티스트와 비즈니스맨으로 나눠 보려는 까닭일랑 왜 그러는지 알겠는데 부질없고 공허하다. 대한민국 펀드의 역사를 창조한 미래에섯 박현주 님하가 말하지 않는가. ‘돈은 아름다운 꽃’이라고. 당신들의 서태지가 한 번이라도 비즈니스를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가? 동시에 나의 서태지는 언제나 아티스트였다.

오늘, 서태지가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위대한 업적도 아니다. 서태지의 정체성과 현재성이다. 그는 주류이되 주류의 흐름에 서지 않고, 비주류이되 언제나 주류를 호명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여전히 그러하)며, 대중문화에서 일정하게 비껴 있으면서, 대중문화에 영향을 준 아이콘이(었고 또한 여전히 그러하)다. 이 양면성은 서태지가 동시대의 누구들과 자신을 분리해내는 굉장히 영리한 선택이었고 동시에 방전되지 않고 한 걸음 더 지를 수 있었던 에네르기였다. 방구석을 달구는 어느 소수자의 사유와 테헤란로의 휘황찬란함 사이의 경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넘나들 수 있으리라는 것은 분명 누구나 꿈꾸는 새로운 지평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진정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 낯선 이방인으로 돌아온 오늘의 서태지이다. 이상과 욕망, 고급함과 저급함, 일상과 일탈, 희망과 절망의 첨예한 대립에서 날마다 위태로운 우리 모두에게 그 경계를 초월해 버린 존재가 하나쯤 생존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다.

서태지는 난데없이 “지구상에서 생존이 가능한 지역 중에서 가장 격리된 곳이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한때 문명의 섬으로 번영하였지만 인간의 욕심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고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사라져 현재 무게 40~50톤이 넘는 수수께끼의 거대한 모아이 석상 887개만 남겨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섬 자체가 미스터리투성이인 이스터섬”을 묻고 있다. 세련됐으나 대책 없는 낭만주의이고, 근거 없지만 아름다운 낙관론이다. 묘하게도 나는 이 지점에서 뭣도 없는 못하는 시대의 막내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서태지라는 표상이 어떤 숭고한 지향적 이데올로그로 남는 것을 기꺼이 지지하기로 했다. 그는 전시대의 지배자였고, 퇴락하지 않는 동시대의 타자이다.

굳이 조선일보가 지적해주지 않아도,(그도 이제 '혁명'에 지친 것일까?, 최승현, 08.07.30) 이제 그가 더 이상 혁명을 할 수 없으리란 건 누구나 안다. 혁명의 시대는 조선일보의 기대처럼 지나갔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또 속절없는 세월을 기다려야겠지만, 누군가 거침없이 스스로를 ‘진보를 향한 열정’이라고 칭할 때, 냉소를 던지지 않기 위한 합의에 이르는 길은 까마득해 보이지만, 서태지 스스로 자신이 더 이상 ‘메시아’나 ‘혁명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이른 시간을 기꺼이 긍정하기로 했다.

서태지는 이번 앨범의 장르를 ‘네이처 파운드’(nature found)라고 했다. 멜로디와 리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내게 그것은 그냥 문맥 그대로 ‘자연을 찾아냈다’로 들렸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든 것들은 역사를 갖고, 나아가기 위한 순서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자연이란 거대함 앞에서 삶이란, 오늘이란 작은 물결을 일으키는 일말의 잔잔함 같은 것일 게다. 그 자연스런 문맥, 살아갊의 점진주의로 돌아온 서태지를 환영한다. 그의 비행이 너무 값비싸고 지나치게 호화스러운 일탈임을 감수하더라도.

▲ ⓒ서태지컴퍼니
Moai

가수 : 서태지
앨범명 : Seotaiji 8th Atomos Part Moai (Single)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
내가 벗어두고 온 날의 저항 같았어
떠나오는 내내 숱한 변명의 노를 저어
내 속된 마음을 해체시켜 본다.

때론 달콤한 내 거짓으로도
때론 아이 같은 응석에 두 손을 벌려도
이제 ALL I NEED 모아이들에게
나의 욕심을 말해볼까 이젠

내 가슴 속에 남은 건
이 낯선 시간들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다 속으로...
이 낯선 길 위로 조각난 풍경들
이런 내 맘을 담아서 네게 주고 싶은 걸
IN THE EASTER ISLAND

이제 세상은 이 어둠을 내게 허락했고
비로소 작은 별빛이 희미한 나를 비출 때
차가운 바다 속에 내 몸을 담그니
내 가슴을 흔드는 잔잔한 물결뿐

해맑게 웃을 때 나른한 걸까
세상에 찌든 내 시크함을 조롱한 걸까
나는 멍하니 이 산들바람 속에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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