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의 중앙일간지가 삼성을 비판하는 내용의 광고를 “향후 광고가 끊길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사회파괴 노동인권유린 삼성바로잡기 운동본부’(상임공동대표 권영국 박석운·신승철·이선근, 이하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최종범 씨의 사망으로 사회적 화두가 된 삼성전자서비스기사들의 노동환경과 관련해 소비자연대 성격의 의견광고를 중앙일간지에 싣기로 했다. 비용은 시민 2000여명 자발적 서명과 함께 소셜펀치를 통해 480만원을 크라우드 형식으로 모금했다.

해당 광고 내용은 “그동안 A/S기사들의 마음의 병을 몰랐습니다. 삼성A/S기사들의 노동인권은 지켜져야 합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고객담당최고임원 이재용 부회장이 우리의 물음에 응답해야 합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또, 삼성그룹이 높게 A/S 비용을 책정해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 사진은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에서 일간지 광고 게재를 위해 '소셜펀치'에서 모금한 모습 캡처(http://www.socialfunch.org/samsungbaro)

한 진보성향 매체, “삼성광고 끊길 수 있어” 거절

하지만 중앙일간지에 해당 광고를 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조선, 중앙, 동아, 경향, 한겨레 등 주요 일간지에 3월 4일과 3월 13일 두 차례의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대부분의 일간지가 응답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적 성향의 중앙일간지마저 해당 광고 게재를 거부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우리는 매일같이 신문에서 삼성 광고를 본다”며 “신문 광고지면은 삼성에게는 손쉽게 차지할 수 있는 자리이지만, 삼성AS기사들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자리”라고 개탄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황수진 활동가는 “진보적 성향의 매체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광고(사회운동적 성격의)에 대해 통상적으로 300~400만원의 비용을 받고 광고를 게재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물론 그 역시 많은 편의를 봐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광고를 거절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과거사례를 놓고 볼 때 다른 점은 해당 기업이 삼성이라는 것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해당광고 게재를 거절한 한 진보성향의 매체의 광고국에서는 “삼성이라는 기업 이름이 들어가기 때문에 (광고) 불이익에 대한 위험부담 차원에서 2700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진보적 성향의 일간지의 경우 역시 “광고가 끊길 수 있기 때문”이라며 최종 불가통보했다.

황수진 활동가는 “‘만일 삼성이 아닌 다른 기업이었더라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삼성의 힘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 활동가는 이어 “삼성의 손이 미치지 않는 인터넷 혹은 대안언론이 많으니 그쪽에 광고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보성향의 매체들 역시 이번 광고 거절에 대해 할 말이 없지는 않다. 해당 광고가 일반광고가 아닌 ‘의견광고’라는 데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신문 광고 쪽 관계자는 “의견광고는 명확하게 일반 광고와는 다르다”며 “의견광고는 일반적으로 주관적인 입장이 담긴 광고이기 때문에 매체에서 역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같은 지면이라고 하더라도 단가가 비싼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삼성왕국의 언론장악 실태 확인”

그래도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삼성비판 광고를 거절한 진보성향 매체들에 대한 큰 불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매체들 역시 광고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문제제기 또한 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보도자료를 내어 “엄두도 내지 못할 광고비용이 ‘돈의 벽’이었다면, 삼성광고가 끊길 수 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태도는 ‘권력의 벽’ 이었다”면서 “다시 한 번 ‘삼성왕국’의 언론장악 실태를 확인했다.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며 삼성이 장악한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을 꾸준히 벌여갈 것”이라고만 밝혔다.

한편,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는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가 전환한 기구로 그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연대하고,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을 알리는 등 삼성의 노동인권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환원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래는 진보성향의 매체들로부터도 거부된 광고 전문이다.

“AS기사들의 마음의 병을 그동안 몰랐습니다, 미안합니다”

‘매우만족’만 인정받는 고객평가제도, 지나친 감정노동 요구가 AS기사들을 병들게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천안센터 기사였던 최종범님의 죽음에 마음이 아팠고, 삼성AS기사의 54%가 우울증세를 보인다는 조사결과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비자와 AS기사 모두 피해자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제품가격에 포함된 AS비 명목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2012년 한 해 동안 1조 7천억원을 거둬들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전체 AS기사의 90%에 달하는 6천여명의 협력업체 AS기사들에게 돌아간 돈은 결국 3천3백억원에 불과합니다. ‘삼성’마크를 달고 ‘삼성제품’만을 고치며 ‘저희 삼성제품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지만 삼성은 AS기사들이 삼성직원이 아니라 했고, 자신들과 상관없다며 내쳤습니다. 소비자에겐 AS비를 명목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해놓고, 정작 그 돈의 대부분을 AS에 사용하지 않고 삼성전자의 이득으로 챙겼습니다. 삼성은 소비자도, AS기사도 속인 것입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과 고객담당최고임원 이재용 부회장이 응답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이 낸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AS기사들은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들게 일해야만 할까요? 삼성전자는 제품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과도한 AS비를 낮추고, 그동안 부당하게 거둬들인 돈으로 삼성AS기사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수많은 소비자들이 ‘AS가 좋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쓴다’고 말합니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삼성을 키운 진짜 주인공, AS기사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고 노동인권을 보장받으며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도록, ‘고객담당최고임원’ 이재용 부회장이 응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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