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8월 나주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행 사건 보도하면서 아동의 그림 일기장 뿐 아니라 비밀 영역에 해당하는 상처 부위를 촬영한 사진 등을 공개한 언론사에 대해 법원이 “피해자의 사적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피해자들에게 모두 7800만원을 배상하고 관련 기사 일부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배호근)는 언론인권센터가 나주 아동 성폭행 사건을 보도한 SBS, 채널A, 경향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모두 7800만원을 배상하고 관련기사 일부를 삭제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법원은 구체적으로 SBS는 3000만원, 채널A는 2300만원, 경향신문은 25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고, 위법성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4~6건의 기사를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 나주 아동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선정적 보도라고 비판받은 '경향신문' 그림일기 기사ⓒ경향신문
앞서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2012년 8월 나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행 사건을 언론이 보도하면서 피해자와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해, 피해자를 대신해 연합뉴스, 조선일보, 채널A, 경향신문, SBS에 각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2013년 7월 제기한 바 있다. 나머지 연합뉴스, 조선일보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선고는 오는 4월 말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은 피해를 입은 아동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집의 위치와 집 내부를 공개해 피해를 키웠다. 또한 사건의 원인이 마치 부모의 관리 소홀에 있는 듯이 몰았고 범인과 피해자 어머니의 관계를 사실 확인 없이 왜곡해 피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원 “공적 보도라도 사적 영역에 대한 침해는 최소한에 그쳐야”

재판부는 먼저 “언론사는 이 사건과 같은 잔혹한 범행이 재발되지 않도록 범행 동기나 원인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등 공익적인 차원의 보도를 할 필요가 있다”며 공익적 차원의 언론 보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공익적 차원의 보도라고 해도 피해자나 가족의 사적 영역에 대한 침해는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불필요한 과도한 침해는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해당 언론사들의 보도가 불필요한 과도한 침해였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이 사건의 경우 언론사들은 피해자의 집 위치를 파악할 수 있거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내부사진을 보도하고, 개인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일기장 등도 무단으로 보도했다”며 “특히 비밀영역에 해당하는 상처부위를 촬영한 사진을 공개해 피해자의 사적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심지어 사건 경위와는 무관하게 피해자의 부모와 관련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암시하는 보도를 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범죄의 원인 일부가 마치 피해자 측에 있다는 인상을 주기까지 했다”며 “이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언론인권센터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20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피해자 입장을 고려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성범죄 보도 준칙을 만들었지만 (해당 언론사가) 피해자에게 사과한 적은 없다”며 “피해 사실 자체도 기가 막힌데 언론 보도 때문에 피해자는 집을 옮겨야 했고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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