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가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청와대 회의를 사상 처음으로 KTV 방송(정부 홍보방송)을 그대로 받아 두 시간 동안 생중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생중계 하루 전인 19일 아침 갑작스럽게 결정됐으며, 이 같은 갑작스러운 결정에 KBS는 편성표를 미처 수정하지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가 19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KBS는 20일 오후 2시부터 KBS 1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청와대 민관합동 규제개혁회의를 생중계한다.

▲ 18일 오전 청와대 비서동인 위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장과 영상국무회의를 하며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청와대 회의 생중계는 19일 아침 갑작스럽게 결정되었으며, 때문에 KBS는 KTV 방송을 그대로 생중계하는 방식을 결정하게 됐다. KTV 방송을 그대로 받아 생중계 하는 이 같은 KBS의 ‘파격’ 행보는 KBS 역사 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군다나 해당 청와대 회의 중계를 맡은 제작진은 19일 오전 회의 제목과 시간 정도만 전달받았으며, 1TV 편성 담당자조차 생중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일 오후 6시 현재 KBS는 청와대 회의 생중계 편성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KBS는 홈페이지에 있는 편성표 상에도 청와대 회의 생중계 프로그램을 공지하지 않았다. 현재 KBS 편성표에는 20일 오후 2시에 KBS 뉴스타임 방송이 예고돼 있다. 하지만 KBS는 내부적으로 내일 생중계를 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청와대 회의 생중계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KBS는 청와대 민관합동 규제개혁회의를 생중계 하는 것에 대해 “중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KBS 회사 쪽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규제개혁회의가 처음에는 장관이 참여하는 콘셉트였는데 지난 주말 사이 민간인이 참여하는 ‘소통’의 콘셉트로 바뀌어서 중계 여부를 검토했고 중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오늘 오전 중계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 서울 여의도 KBS사옥 ⓒ미디어스
KBS 새 노조 “공영방송 지위와 역할 포기” 맹비난

하지만 KBS 구성원들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KBS본부는 이에 대해 “공영방송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한 채 국영 또는 관영으로 전락한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KBS본부는 통상적으로 중계방송을 할 경우 국제 또는 국가 차원의 행사를 비롯해 3.1절 등 국가기념일, 긴급한 국가적 현안 등으로 제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국민의 자산인 KBS의 전파를 타거나 인력, 비용이 수반되는 만큼 긴급을 요하는 일이 아니라면 사전에 편성제작 회의를 거쳐 확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KBS본부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뉴스에 기사 한두 건으로 처리하면 될 일을 2시간 넘게 중계까지 해가며 호들갑 떠는 배경은 길환영 사장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 때문일 것”이라며 “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차례 규제개혁을 언급했고 회의까지 주재한다고 하니까 잘 보이기 위한 ‘방송 쇼’에 다름 아니다. 임창건 보도본부장은 이를 충실히 따르는 모양새”라고 일갈했다.

KBS본부는 더 나아가 “청와대 회의 생중계 방송 계획을 즉각 중단하라. 수신료가 아깝다”며 “길환영 사장은 이러고도 수신료가 부족하니 올려야 된다는 얘기를 할 수가 있는가? 길환영 사장은 이러고도 KBS 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중계방송을 철회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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