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이름이 낙점된 정치세력의 발기인 대회가 있었다.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정확히 두 정당의 이름을 섞어서 만들어낸 제1야당이다. 이 작명 센스는 마치 <드래곤볼>의 ‘퓨전’ 캐릭터에 붙이는 이름(‘오천크스’라든지)을 보는 듯하다. 국민 공모를 했다지만, 아마도 양측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고려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신당의 당명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약칭은 '새정치연합'으로 확정되었고,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발기인을 보면 민주당 측이 324명, 새정치연합 측이 355명 등 총 679명이었으며 의석수는 무소속 박주선 강동원 의원의 합류로 130석으로 늘었다.
▲ 17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창당 발기 취지문에선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아우르겠다"며 '우클릭' 기조를 드러냈다. 신당이 지향점으로 내세운 민주적 시장경제, 정의로운 복지국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평화통일의 준비 등은 모두 안 의원측의 새정치연합 발기취지문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창당이 급하게 진행되고 있기에 당연하게도 신당의 정체성으로 중도파 흡수 지향이라는 방침 정도 밖에는 나온 것이 없다. 보수언론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야당의 내부분열을 은근히 바라는 듯한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친노세력이나 야당의 초재선 의원들이 좌클릭을 주장할 것이라는 게 그 비평의 요지다.
17일 <조선일보>는 6면에 <문재인·이해찬은 행사 불참 / 신당, 친노와 노선 충돌 예고>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17일 <동아일보> 역시 5면 기사에서 문재인과 이해찬이 행사에 불참했다는 사실을 다뤘다.
▲ 17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
두 신문은 사설에서도 야권의 내부 분열을 우려하였는데, 사실상 분란을 조성하겠다는 의도가 읽혔다. <조선일보>는 <새정치민주연합, '낡은 야당'과 결별해야 미래 보인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지난 20년의 한국 야당사(史)는 선거용 신당을 주기적으로 만들어온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비판하면서, “신당이 과거 야당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선거의 성패(成敗)가 갈라질 수밖에 없다”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민주당은 '질 수 없는 선거'라던 2012년 총선·대선에서 패배했다. 좌파 정당과 선거 연대를 추진하면서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추진했던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도 반대하며 국민 다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결과”라며 민주당의 뚜렷한 우클릭을 주문하였다.
<동아일보> 사설은 훨씬 더 노골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친노 세력과 언제까지 같이 갈 것인가>란 제목을 달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친노 세력을 쫒아 낼 것을 요구하면서, 야권의 내부 분열을 추동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안 의원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로 알려져 있지만 민주당은 6·15 남북 정상공동선언과 10·4 남북 정상선언을 ‘존중하고 계승한다’고 강령에 명시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 이슈에서도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개별 구성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다는 것이 발기인대회 직전에 또다시 노출됐다. 그런데도 통합신당 창당에 급급한 것은 양측 모두 지방선거에서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는 정치공학적 목적 때문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양측은 ‘정체성’부터 합의해 새정치를 기대하는 국민을 더는 실망시키지 말기 바란다”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내부의 의견 차이를 강조했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는 묻지 않았다.
향후 새정치연합은 이와 같은 ‘분열’의 책동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가 관건인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의 성과를 긍정하고, 안보 문제에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중도파를 흡수한다는 지향은 현재의 야권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향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주장하는 양 햇볕정책의 폐기나 경제민주화의 후퇴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대북화해정책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통일위원회를 통해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고, 경제민주화는 서민들이 체감하는 실제적인 문제가 되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내세우는 시대정신이 될 정도였다.
보수언론이 요구하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 속에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측면에서는 다소 유연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서민들이 바라는 삶의 문제를 다루는 정책적 쟁점에서는 선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재의 야권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자세다. 그동안 안철수 의원은 민주당과는 경쟁구도를 가지면서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히려 ‘삼성 동물원’ 운운하던 CEO 시절에 비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도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보수층의 정서를 달래면서도 이런 부분을 극복해 나가야 진정으로 중도파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17일자 한겨레 6면 기사
한편,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출범에 대해 별도의 사설을 쓰지 않았다. 그만큼 아직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평하거나 기대할만한 지점이 많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경향신문>에서는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가 <안철수의 이상한 약속론>이란 기고문을 통해 안철수 의원의 태도를 비판했다. 박상훈 대표는 “필자를 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와 관련해 안 의원이 약속 지키는 정치와 약속 지키지 않는 정치라는 도덕주의적 이분법을 과격하게 동원한 데 있었다”라며 안 의원을 비판했다. 박 대표는 “흥미롭게도 그는 정당공천의 폐지가 왜 정치 발전을 위한 길인지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공천 폐지에 반대하는 많은 정치학자들의 비판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라면서 안 의원이 정치를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로 가져간 상황을 비판하였다.
또 박상훈 대표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발표한 이후부터는 약속의 윤리론이 갑자기 사라졌”다라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양당제의 폐해를 넘어 다원화된 정치질서를 만들기 위해 독자적 길을 가겠다는 자신의 말과 주장을 왜 스스로 지키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다”라면서, ‘약속의 정치’를 말했던 안철수 의원이 자신의 약속이 뒤집힌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17일자 경향신문 31면에 실린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칼럼
이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안철수 의원이 향후 정치행보에서 어떻게 ‘내용’을 채워나갈 것인가가 여전히 중요한 쟁점임을 보여준다. 박상훈 대표는 “좀 더 긴 시간 충분히 논의해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조급한 결정에 이어 잘못된 약속을 반복할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 아닐까 한다”라고 지적했지만, 이미 정당은 급하게 만들어졌다. 신당의 구성이 “자해적 정당혁신론”을 반복할 가능성도 농후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당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보수언론이 제시하는 것처럼 당내의 일부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온건파의 세계관 혁신과 강경파의 정책지향”을 조화시키는 것일 게다. 김한길과 안철수 두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이 그 정도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방선거를 견디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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