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는 저에 대해 요즘 굉장히 왜곡된 뉴스들이 많이 나온다. 아버지와 동생은 그런 걸 보고 있다. 동생은 계속해서 전화해서 울면서 괜찮냐고 하는데, 사실 저는 괜찮냐는 말이 안 통할 정도로, 제 자신이 컨트롤 안 될 때도 많다. 저는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고, 앞으로 재판 끝나고 나서도 계속 말할 것이다. ‘저는 간첩이 아니다’. 백 번 말하라면 백 번 말하고 천 번 말하라면 천 번 말하겠다. ‘간첩이 아니다’. 저는 지구상의 평범한 사람이다. 남들하고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차라리 사람으로 안 살고 다른 것으로 살면 좀 더 편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화교 출신 탈북자 유우성 씨는 되풀이해 말했다. 자신은 간첩이 아니라고. 지난해 1월 10일 국정원에 긴급 체포된 후 1년이 지났지만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국정원이 내놓은 증거가 불충분해, 정황과 의심만으로 간첩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재판부의 1심 판단이 나왔는데도 국정원은 불복해 항소했다. 이미 지난해 8월 국가보안법 모든 죄목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 씨는, 여전히 ‘간첩’ 혹은 ‘간첩 의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세간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 참여연대, 민주당 국정원 특위, 서기호 의원 등이 공동 주최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대국민 설명회’ <이 괴물을 어찌할까>가 16일 오후 4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이 괴물을 어찌할까>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국민 설명회’로 구성됐다. 우선 민변 김용민 변호사가 이번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당사자인 유우성 씨와 유우성 씨 변호를 맡은 민변 양승봉, 장경욱 변호사,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나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이야기 마당 형식으로 풀어나갔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의 ‘국가범죄적’ 성격을 분석했다.

▲ 민변 김용민 변호사가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스)

▲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의 ‘국가범죄적’ 성격을 분석했다. (미디어스)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민변 박주민 사무처장의 진행으로 시작된 <이야기 마당>에서는 이미 검찰의 ‘증거조작’ 시도가 사실로 드러난 상황에서도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설명이 나왔다. 1년 넘게 끌고 있는 이 사건을 끈질기게 좇고 있는 이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에, 시민들은 귀를 기울였고 근처를 지나던 이들도 발길을 멈춰 서고 집중했다.

박주민 사무처장은 ‘정식 재판을 시작하니 동생 유가려 씨가 도망갔다’, ‘유우성 씨는 12일 검찰에 출석했을 때 답변을 거부하고 일찍 돌아왔다’ 등 일부에서 품는 의심에 대해 유우성 씨에게 질문했다.

유우성 씨는 “도피한 적 없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는 “(동생은) 재판부에다 오빠의 마지막 재판 끝나는 것까지만 보고 가겠다고 부탁했고 변호인단에서도 그 부분을 계속 어필했으나, 이미 (출국) 연기를 2~3번 해서 더 이상 연기가 안 된다고 해 7월 3일에 강제 출국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12일 출석 당시) 200장 분량의 의견서를 드렸다. 피고인으로서, 진상규명에 있어 검사님이 궁금해 하는 부분은 다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 유우성 씨와 유우성 씨 변호를 맡은 민변 양승봉, 장경욱 변호사,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나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이야기 마당 형식으로 풀어나갔다. 사회는 박주민 민변 사무처장이 맡았다. 왼쪽부터 박주민 사무처장, 최승호 PD, 유우성 씨, 장경욱 변호사, 양승봉 변호사 (미디어스)

유우성 씨는 이날 지난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유우성 씨는 “저는 간첩이 아니다”라면서 “남들하고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전했다. 중간 중간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하루 빨리 재판이 끝났으면 좋겠다”며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병 치료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우성 씨는 또한 언론보도의 ‘무서움’에 대해 재차 강조했다. 마무리 발언 시간에, 좀처럼 입을 떼지 못하던 유우성 씨는 침묵을 깨고 이런 말을 했다.

“지난번에 제가 기자 선생님한테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들이 사실을 쓰게 되면 한 사람을 살리고, 왜곡하면 한 사람을 죽인다. 계속 왜곡되는 기사들이 저와 가족들을 괴롭힌다. 저는 국정원에서 20일, 검찰에서 30일 50일 동안 조사를 받았고, 사실 하나만 추궁하며 여기까지 왔다. 계속 소설 쓰십시오. 저는 계속 진실만 따라서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족처럼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진상이 규명됐으면 좋겠다”

“국정원의 간첩조작이 명백하게 밝혀지는 첫 사건”

지난해부터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추적해 온 <뉴스타파> 최승호 PD는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국정원이라는 기관 자체가 간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만 하는 기관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고 엄중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최승호 PD는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작이 일어났고, 이후 국정원본부가 체크했으나 그냥 넘어갔다. 수사관들이 왔을 때 또 조작했고 기소 단계에서 이런 점을 말해도 검사는 계속 조작했다. 1심에서 졌는데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장도 체크를 안 하고 (증거) 위조가지 하는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임명하며 국정원 간 덩어리를 이만큼 크게 만들어 놨다. 그게 아니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것도 굉장히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이 진상을 밝혀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호 PD는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판단해 이 문제는 계속 놔두면 안 되니 처리해야겠다는 태도만 보여주고 있다”며 “엄중하게 생각하고 사심 없이 국정원, 검찰이라는 괴물들을 국민을 위해 개혁해야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대국민 설명회'를 듣고 있는 시민들. 이날 설명회에는 민주당 신경민, 정세균, 정청래, 진선미 의원 등이 참여했다. (미디어스)

“종북몰이라는 유치한 짓하지 말라”, “제가 보는 앞에서 (그런 시도를 하다) 걸리면 가만 안 두겠다. 굉장히 분노해 있는 상태”라고 발언해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받은 민변 장경욱 변호사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국가보안법 때문”이라며 “헌법의 기본권 수준, 법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형사처벌 받는 사람만이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아니다. 나도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겁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봉 변호사는 “저는 보수적인 성향이어서 관에 대한 신뢰가 큰 사람이었다. 검찰, 국정원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이렇게 명백한 사건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고,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반드시 그 원인을 밝히고 사건 가담자들이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대국민 설명회에는 TV조선, 채널A, JTBC 등 종편 취재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가운데 채널A의 모회사인 <동아일보>는 지난해 1월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했던 언론사이다.

이들 언론사에 '계속 소설을 쓰십시오. 저는 진실을 따라갈 것'이라고 한 유우성 씨의 애끓는 진심이 제대로 전달 될까? 아니면 설명회 내내 맞은 편에서 노래를 크게 틀고 확성기에 고함을 질렀던, 설명회 방해 목적이 분명한 보수단체가 해왔던 것처럼 유우성 씨에 대한 '간첩몰이'만 계속할까? 이런 걱정이 기우이길 간절히 바란다.

▲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시민들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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