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배우 김보희가 연기하는 성미는 ‘현대판 심청’이다. 극 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의 치료비 5천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 사연 있는 아가씨다. <헤르메스>에 따라다니는 타이틀이 명품 성인연극이지만, 야한 걸 기대해서는 안 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성미를 연기하는 이 배우, 아이들을 좋아해서 비영리 문화예술교육단체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게 그렇게 행복하다고 한다. 교사인 자신이 아이를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연기와 교육,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는 욕심 많은 이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김보희 씨가 연기하는 성미는 뇌쇄적인 캐릭터다. 김보희 씨 본인이 생각할 때 자신이 뇌쇄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뇌쇄적? 절대 아니다. 오히려 좀 맹하지 않을까. 약간 멍할 때가 있어서 함께 공연하는 김문성 선배가 ‘맹하다’고 놀릴 때도 있다.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하고 덜렁거리는 면도 있다. 공연하며 살이 쪘다. 원래는 공연하면 예민해져서 안 먹어야 하는데 평소와 달리 더 먹게 되었다.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살을 빼야지’ 하면서도 더 먹는 제가 뇌쇄적이겠는가.”

- 극 중에서 연기하는 성미를 어떻게 바라보나.

▲ 사진제공 한강아트컴퍼니
“배우들이 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가 상대 배역을 어떻게 보는가, 과거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서로 이야기하며 메모하기 바빴다. 역할이 강해서 처음에는 주저한 게 사실이다. 노출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참고로 김보희는 단 한 장면에서도 노출이 없다)

다른 작품을 많이 한 것도 아니라서 차기작에 출연할 때 제 이미지에 대한 염려도 많았다. 신인치고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이라 과연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컸다. 함께하는 배우들과 연출님을 믿었다. 선배들에 대한 믿음이 컸다. 오랜만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라 생각하고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

- 날씬하게 보여야 하는 역할이다. 몸매 관리는.

“공연이 끝나면 새벽까지 먹고 잔다.(웃음) 함께 공연하는 언니들이 원래 말라서 부담이 크다. 언니들에 비해 키는 크지만 어깨도 넓다. 살이 약간이라도 오르면 어깨가 넓어서 더 쪄 보인다. 공연이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언니들을 볼 때마다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펄쩍 뛰었을 역할이 성미다.

“친오빠가 제가 하는 공연을 보았다. 공연 마치고 밥을 같이 먹는데 오빠가 그날따라 밥을 잘 못 먹더라. 오빠가 직업군인이라 보수적이다. 친동생이 하는 공연을 처음 보았는데 옷도 짧고, 역할이 콜걸이라 쇼크를 받은 거다.

오빠는 ‘연극인 건 알겠어, 그런데 네가 안마사를 했으면 좋았을 걸’ 하더라. ‘오빠, 안마사는 내가 하고 싶어도 시켜주지도 않아’ 했지만 속상했다. 가족 입장에서 속상하겠다는 게 느껴졌다. 공연으로 보면 좋을 텐데 가족이다 보니 그게 잘 안 되었던 거다. 만일 남자친구가 있었어도 똑같았을 거다.”

- 연기를 오래 쉬었다.

“대학교 3학년이 지나고 4학년이 되었는데 갑자기 지쳤다. ‘이 길이 맞나?’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갈등이 많았다. 집안에서는 제가 연기하는 걸 반대한다. 집안의 반대가 심해서 저 자신이 지친 것도 있다. 스튜어디스 시험을 위해 준비하려고도 했다. 그러다가 문화예술교육단체 ‘더 베프’에 들어갔다.

‘더 베프’는 사회적 기업이고 비영리 단체다. 어린이 프로그램과 실버 프로그램, 장애우를 위한 축제를 기획한다. ‘더 베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이들을 좋아해서다. 요즘 아이들은 많이 뛰어놀지도 못하고 학교에서 왕따 같은 문제들에 치이기 쉽다. 제가 만난 아이들 중에 자매가 있다. 언니 따로, 동생 따로 입양된 입양아다. 처음에는 제게 심한 욕을 할 정도로 아이가 과격했다.

▲ 사진제공 한강아트컴퍼니
아이에게 이런 욕까지 들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욕을 먹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욕에 상처 받고 울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나중에 반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제게 과격한 욕을 하던 때가, 아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때라고 한다. 나중에 그 아이가 제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여는 게 보였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여는 게 고마웠다.

지능이 보통 아이보다 떨어지는 아이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밝지만 상처가 많다. 그들의 부모도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런 아이가 저희와 만나면 누구보다 밝고, 친구를 격려해 줄 줄 알고 정이 많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정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걸 배울 수 있다.

‘더 베프’를 통해 연기를 놓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대단원’이라는 작품을 병행하게 되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만나면서 대충 하는 게 아니라 교육을 해야 하는데 ‘더 베프’ 일정과 작품 일정이 맞지 않았다. 가령 공연 연습이 오후 3시부터 밤 8시까지 있다고 치자. 그런데 ‘더 베프’ 일도 소홀하면 안 되었다.

공연을 위해서라면 ‘더 베프’를 손에서 놓고 되든 안 되든 영화나 공연 오디션을 보러 다녀야 했다. 두 개를 병행할 수는 없었다. 흥행을 위한 코미디극 같은 공연도 하기 싫었다. 좋은 선배들과 좋은 작품을 통해 연기를 다지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본의 아니게 오래 쉬었다.”

- 가족에게 연기로 인정받고 싶다면 분야는 공연일까 영화일까 드라마일까.

“스타가 되어서 인정받기보다는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싶다. ‘우리 딸이 열심히 하는구나’하는, 연기하는 딸로 인정받고 싶다.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로 진출해도 연극 무대는 놓치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딸 배우야’하고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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