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는 웰메이드 드라마가 분명하다.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이를 펼치는 배우들의 열연,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연출력과 장면 장면들을 잘 짜깁기한 편집 기술 등 뭐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유치찬란한 구석이 전혀 없는, 막장의 요소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잘 빠진 드라마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받고 있는 대접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10일 방송된 7회의 시청률은 2.6%, 어제 방송된 8회의 시청률은 3.0%였다. 최근 방송된 드라마치고 이렇게 짜디 짠 성적을 받아 든 드라마는 <태양은 가득히>가 처음인 듯싶다. 저조한 시청률로 출발했다 하더라도 회를 거듭하면서 미약하게나마 올라가는 것이 미니시리즈의 일반적 예인데, <태양은 가득히>는 그 예를 깨고 첫 회만도 못한 시청률로 중반부를 향해 무거운 걸음을 걷고 있다.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어진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2-3%대의 시청률로 치부돼버리고 말 드라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아깝기 이를 데가 없다. 윤계상을 비롯해 조진웅, 김유리, 김영철, 전미선 등 주조연 배우들이 그려내는 입체적 캐릭터의 향연은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부족함이 없는데 말이다.

정세로 역을 맡은 윤계상의 연기력은 매회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한다. 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맹렬하게 울부짖거나,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목이 메어 흐느끼듯 오열하거나, 어느 순간 차갑고 거친 눈빛으로 돌변하여 죽일 듯 노려보거나, 복수에서 동정으로, 동정에서 사랑으로 변해가는 감정을 담은 눈으로 한영원(한지혜 분)을 바라보거나 할 때 그의 연기는 상상 이상의 완벽함을 보이며 정세로에게 매료되게 만든다.

그가 미니시리즈의 남자 주인공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에 그리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었다. 그러기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고 주연을 맡을 만큼 배우로서의 인지도 또한 모자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윤계상은 웬만한 남자 주연배우들보다도 뛰어난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그에게 가졌던 이런 저런 선입견을 모조리 무너뜨리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김영철과 전미선의 치열한 냉전은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촉매제다. 한태오의 무시무시한 권력을 든든한 배경으로 한 살벌한 독기를, 김영철은 예전보다 더욱 세련되고 능숙한 연기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와 대립각을 이루는 전미선의 차갑고 서늘한 연기 역시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묘미 중 하나다.

조진웅의 묵직한 연기는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언제나 주연이 아닌 조연의 자리에 있는 배우지만, 그가 해내는 몫은 어떤 작품을 맡든 예외 없이 주연배우 이상이다. <태양은 가득히>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호건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연기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와 짝을 이루는 김유리의 연기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선배들과의 연기 호흡을 잘 따라가 주고 있는 것이 대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 역시 제 몫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은 가득히>는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고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로 매회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이를 알아주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을 뿐이다. 이상하리 만큼의 부진한 성적은 급기야 가라앉고만 있는 현실의 원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세밀히 파악하게 만든다.

혹자는 극을 드리우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를 부진의 원인으로 꼽는다. 예전 또 하나의 웰메이드 드라마였던 <상어>가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대중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이유로 대진운이 좋지 않았음을 들기도 한다. <기황후>가 너무 센 데다가 <신의 선물>까지 치고 올라오니, 그에 비해 여러 모로 홍보와 배우들의 인지도가 부족한 <태양은 가득히>가 밀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혹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에는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질문도 첨가하고 싶다. 모두가 열연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여주인공 한영원 역을 맡은 한지혜만이 저만치에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듯해서 말이다. 특히나 상대 배우 윤계상과의 호흡에서 부자연스러운 숨고르기를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이번에도 역시 한없이 착한 역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내가 상처 받는 것이 낫고, 화를 내는 것보다 차라리 쓴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 쉬운 여자다. 나약하고 여리고 측은해 보여서 남자로부터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데는 최고의 캐릭터다. 흔하디흔한 멜로물의 여주인공이며, <태양은 가득히>에서 유일하게 입체감이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를 연기하는 한지혜가 예전과 같은 스타일, 같은 분위기, 같은 표정으로 한영원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태양은 가득히>의 한영원에게서 <금나와라 뚝딱>의 정몽희가 보이기도 하고, <메이퀸>의 천해주가 보이기도 한다. 캐릭터의 차이는 분명한데, 이들을 연기하는 한지혜의 연기 색깔은 변함없이 한 가지이며 하나의 톤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지혜는 얼굴만 예쁜 발연기 배우는 아니다. 그런 오명을 벗은 지는 좀 된, 그래도 어느 정도의 연기력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여배우다. 그러나 그녀는 캐릭터와는 상관없이 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울며 고개를 떨구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변화의 부재가 한지혜의 커다란 딜레마이며, 그녀가 시급하게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7회 시청률 2.6%, 8회 시청률 3.0%이라는 성적은 <태양은 가득히>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결과일 테다. 아무리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자부할지라도 그것을 시청자들이 봐 주지 않으면 작품의 존재감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작품 속에 산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다시금 점검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나 배우들의 연기를 들여다봤을 때, 한지혜가 어떻게 하면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는지를 고심해 보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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