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개그맨들은 한국에서 개그하기 참 힘들다고들 한다. 오죽하면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노랫말이 다 있겠는가.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남에게 모진 말, 험한 말, 싫은 말은 하지 말자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났다.

범죄자를 비난해도 동정 여론이 쌓이는, 온정주의의 대한민국에서 남의 치부를 개그 소재로 승화하는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러니 대한민국 개그맨들의 고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양락은 김구라를 향해 남을 비방해서 웃기는 짓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꾸중했지만, 사실 가장 대중적인 웃음이 남을 향한 비웃음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무리 개그의 기본이 거친 어감의 디스, 미화해서 풍자라고 할지언정 사회적 약자를 웃음의 소재로 삼아 깔깔대는 행위는 개그가 아닌 폭력이나 다를 바 없다. 육체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쓴다. 정신적 폭력이 그 이상의 것이라면, 나의 고통이나 상처를 공개적으로 비웃음 당하는 고통에 비할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아픔을 모욕이라 부른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더니, 최근 비슷한 사례의 두 개의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SNL의 입양아 비하 논란, 개그콘서트의 장애인 희화화 논란. SNL의 제작진은 풍자였을 뿐 모욕의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풍자된 대상은 깊은 모욕감과 상처를 느꼈다며 분개를 터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일 SNL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제이슨 두영 앤더슨’이라는 코너를 방송했다. 입양인 제이슨 두영 앤더슨이 모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4분여의 콩트로 제이슨의 서툰 우리말 발음과 다소 원색적인 편지의 내용이 유머의 주요소로 쓰였다.

“반갑습니다. 엄마. 제이슨 두영 앤더슨입니다. 왜 날 버렸냐? 똥꾸녕이 째지게 가난했었냐? 자식새끼 버리면 죄 받어. 죄 받는다. 하지만 난 괜찮아요. 엄마를 이렇게 만났으니까. 미국 엄마한테 들었다. 내가 술을 잘 먹는 게 한국 엄마를 닮았대. 한국 사람들은 술 먹을 때 노래 불러준다며?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입양인 제이슨의 애증이 섞인 편지는 연기자의 꼬부라진 말투로 희화화되었다. 제작진은 사람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해외 입양 세태를 풍자한 것이라는 항변을 했으나 석연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 제이슨의 과장된 몸짓, 그리고 그가 더듬더듬 편지를 읽어 내릴 때마다 SNL의 관객은 웃음을 터뜨렸다. 입양인의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조롱조의 편지 내용을 읽는 콩트 전개에서 제작진이 비웃으라고 던져준 대상이 사회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이 콩트는 삽시간에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로 퍼져나갔다. 풍자의 나라인 미국에서조차 이 개그를 사회 비판의 어조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었다. 입양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폭력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견, 입양인의 입장에서 모욕감을 느낀다는 항의가 올라오기도 했다.

한편 9일 방영된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숨은 표절 찾기에서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모욕적인 표현이 지적을 받기도 했다. 개그콘서트 또한 사회 비판이 우선이었다. 굿모닝 닥터라는 패러디 드라마를 내세워 최근 드라마에 빈번한 표절 시비를 비판하고자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대의명분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는가는 몰라도 개그콘서트 팀은 표절 시비를 비판하는 한편 장애인을 소재로 사용,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개그콘서트 PD역의 권재관이 박성광을 가리켜 던진 실언이 모욕의 시발점이었다. “주원도 바보고 얘도 바보야.” 하지만 나는 그의 파트너 이상훈의 대꾸에 큰 불쾌감을 느꼈다. “아니, 주원 씨는 그냥 바보 연기를 하는 거고, 박성광은 그냥 바보고.”

숨은 표절 찾기 팀이 패러디한 드라마 굿닥터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의사의 인생 역경기다. 이 드라마에서 주원은 어눌한 말투에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보기 드문 천재성으로 기존 의사들을 압도한 이른바 천재 의사다. 이런 캐릭터를, 단순히 어눌한 말투를 쓴다는 이유로 ‘바보’라는 폄하적 표현을 쓴 것은 물론, 주원은 ‘바보 연기’를 한 것이라는 이상훈의 대답은 지적 장애인을 향한 차별성 폭언이나 다름없었다. 주원이라는 톱스타의 눈치를 보는 디테일은 챙겼으면서 정작 사회 약자의 아픔은 돌이켜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다.

사전에서 바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으로 결코 지적장애인의 대체 단어가 아니다. 이 문제는 다름 아닌 KBS 내부 프로그램, 시청자 상담 일일보고서에서 제기되었다. 자체 지적을 통해 개그콘서트 제작진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미 다른 코너에서 같은 내용의 경고를 받은 그들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풍자라는 단어 뒤에 숨는 짓은 인성이 의심될 만큼 비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작진은 모욕이 아닌 풍자라고 항변하고 개그맨은 대한민국에서 개그하기 참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개그맨은 힘든 직업이 아니던가? 타인의 상처를 조롱하는 손쉬운 방법을 피하고도 남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프로 개그맨 아닌가? 그 어떤 폭소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인간의 존엄성 위에 설 수 있는 개그는 없다.

드라마와 예능 연예계 핫이슈 모든 문화에 대한 어설픈 리뷰 http://doctorcal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