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돌아온 300은 2006년 판의 다음 이야기가 아닌, 동시간대의 또 다른 전투를 기록했다.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맞섰던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 전쟁이 아니라 투신에 가까웠던 1편의 배턴을 이어, 역시나 골리앗 대전을 벌이고 있었던 아테네 용사들의 전투를 담은 것이 바로 300의 후속작, 300: 제국의 부활이다.

테르모필레 협곡의 전쟁을 다뤘던 300, 1이 육상전이었다면 2편의 용사들은 바다라는 링 위에서, 페르시아 해군과 그리스 해군의 자긍심을 걸고 살라미스 해전을 벌인다. 잭 스나이더의 공백을 채운 노암 머로 감독은 바다 위의 300을 패션 화보집처럼 구성했다. 전작보다 많은 슬로우모션이 사용되었고 작은 틈 하나도 허용치 않은 듯한 특수 효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덕분에 300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또한, 스타일리쉬하다. 블루스를 추듯 멈춰있는 액션. 비극을 암시하듯 경악의 눈망울로 채워진 검은 말의 클로즈업. 빛과 색의 쓰임새 또한 예사롭지 않다. 허공을 가르는 테미스토클레스의 푸른색 로브, 허수아비 황제가 되어버린 크세르크세스가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갈 때 마치 석양을 받은 밀밭처럼 황금빛으로 물들어진 화면. 천지창조처럼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빛줄기 하며 작은 창고에서조차 빛을 이끌고 다니는 부유물을 오밀조밀 배치해놓은 강박증엔 그저 한숨이 다 나왔다.

특히 감탄이 나왔던 것은 신화적 표현과 고대의 마물을 묘사하는 연출력에서 조금의 이질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조악한 미술에 이따금 서프라이즈를 떠올리곤 했던 폼페이를 생각하니 300의 미술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작년 맨 오브 스틸을 보며 판타지를 이토록 이질감 없이 표현해낼 수 있는 연출력이라면 드래곤볼의 - 제대로 된 - 영화화 역시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국의 부활 또한 같은 희망이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게 목이 뽑히고 팔이 잘리는 섬뜩한 장면들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고어한 느낌이 없다. 도리어 아름답다. 걸쭉한 핏줄기조차 미술적 장치로 느껴졌을 정도다. 영화가 아니라 보그지를 넘기는 기분이 든다.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엔 이야기가 없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짧은 편이지만, 이야기 없이 인공미로 가득 찬 화면을 한 시간 이상 견뎌내기란 벅찬 일이었다.

마치 성서의 살로메가 떠오르는 에바 그린의 '아르테미시아'만이 화보집 같은 300의 유일한 이야깃거리였다. 페르시아의 속국,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라는 실존 인물에서 이야기를 가져온 아르테미시아는 의붓아버지에게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만큼이나 아찔하고 도발적이다. - 아르테미시아 또한 다리우스 왕의 의붓딸이라는 사실. 그녀가 왕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적군의 목을 양손에 들고 선물로 바치는 장면 또한 살로메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

유혹적인 몸매와 고혹적인 눈빛을 가졌지만 거침없는 포즈로 적을 희롱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을 따 입을 맞춘다. 망설임 없는 에바 그린의 연기력은 독 담은 성배 같은 아르테미시아의 이중적 매력을 그림 같이 묘사해낸다. 그녀의 미모에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며 생뚱맞게도 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를 잘한다면 저런 느낌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300이 아닌 장발장이 더 어울릴 듯한 설리반 스탭플턴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액션은 좋았지만, 줄곧 멍한 표정에 카리스마가 별반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을 더했다. 300하면 떠오르는 강한 남자의 이미지가 제국의 부활에서는 에바 그린의 기에 눌려 하나같이 약한 남자로 돌변해버렸다. 양기를 이기는 음기라. 어쩐지 동정 이미지에 초식남 같은 테미스토클레스가 야수 같은 여자 아르테미시아와 전쟁 같은 성교를 치르는 장면만이 그나마 사람의 이야기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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