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상한 그녀>는 칠순의 말순 할매(나문희 분)가 우연히 청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단지 영정사진을 찍고 나왔을 뿐인데, 말순 할매는 행색은 그대로이지만 얼굴과 몸이 꽃다운 젊은 처자(심은경 분)가 되어버렸다. 자신이 젊은이가 된 사실을 마주친 앞 사람의 선글라스와 차창에 비친 모습으로 알게 된 할매는 기절초풍한다. 하지만 영화는 할매의 혼란을 그리 길게 끌지 않는다. 할매는 곧 이 '회춘'이 평생을 아들 하나 바라고 살았던 자신의 일편단심에 대한 '신의 선물'이라 여기고 젊음을 즐길 시동을 건다. 덕분에 혼돈도 잠시, 영화는 유쾌하게 할매의 젊음 탐방기로 접어든다.

타임 슬립물에서 빠질 수 없는 클리셰라 한다면 바로 이 부분, 타임슬립을 한 주인공이 과거 자신이 살았던 시점과 시간을 거스른 현재 시점 사이의 혼돈을 느끼는 상황일 것이다. 그것을 통해 보는 사람들 역시 주인공의 혼란과 혼돈을 공유하고,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시동을 걸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계륵이기도 하다. 분명 꼭 짚어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지만, 이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호들갑과 보는 사람들의 경악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지루할 수도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 2회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샛별이가 죽은 장소로 가 자살을 시도했던 엄마 수현(이보영 분)은 아이가 죽기 2주 전으로 돌아간다. 수현은 아이가 갇혔던 장소에 아이의 흔적이 없는 것과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돌아온 집에서 깜짝 파티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가족들을 통해 자신이 사건이 나기 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샛별이가 죽고, 자신이 죽으려 했던 사실을 악몽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수현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자신이 타임슬립했다는 사실을 수긍하고, 미래에 있을 샛별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2주 후 샛별이가 납치당해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리려 하나, 그게 안 되니 샛별이를 데리고 도망가려 하고, 함께 죽을 뻔했던 기동찬(조승우 분)을 만나게 되고, 그와 아웅다웅하지만 결국은 과거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하는 과정은 분명 <신의 선물>에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하지만 어느덧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400년을 살았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구구절절 장황하게 타임슬립의 파생적 문제점을 설명하는 과정은 가급적이면 짧으면 짧을수록 좋았다. 시청자들은 엄마인 수현만큼이나 과연 누가 샛별이를 죽였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엄마가 다시 물에서 살아나왔을 때, 창고에 샛별이의 흔적이 없었을 때, 그리고 아이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을 때 이미 엄마 수현에게 시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빨리 범인을 찾기 위한 기회로 돌아가길 바라게 되는데, 드라마는 여전히 타임슬립의 혼돈과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답답해진다.

장르물의 관건은 속도이다. 여기서 속도가 의미하는 바는 그저 빠르게 진행시키는 의미에서의 속도만이 아니다. 긴박감을 줄 때는 주되, 사건 이해를 위해서는 풀어주는 강약 조절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의 선물> 3회는 초반 타임 슬립의 혼돈에서 수현이 스스로 범인을 찾기 위해 떨쳐 일어나는 시간까지의 장황함이 마음 급한 시청자들로 하여금 딴청을 하게 만든다.

물론 3회의 <신의 선물>이 장황함만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결국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엄마 수현은, 결국 자신과 같은 처지의 기동찬과 함께 범인을 찾으려 한다. 잠시 재벌의 엄청난 재산에 현혹되었던 기동찬도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형의 사형 집행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고, 그리고 잠깐이었지만 샛별과의 조우를 떠올리며 수현의 수사에 합류한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장르극의 긴박감이 되살아나고, 해골 무늬 티셔츠를 입은 두 번째 피해자를 찾기 위한 혼돈스런 숨바꼭질을 통해 시청자의 느슨해진 관심을 조이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 빗속에서 피해자를 찾기 위해 나선 수현의 목을 범인인 듯한 사람이 조여 올 때 장르극으로서의 <신의 선물>의 묘미는 극대화된다.

장르극의 딜레마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장르극에 있어, 방영 시간 내내 범인을 쫓을 수도 없고 설명과 혼돈의 시간이 필요한데, 과연 그 배분과 깊이를 어떻게 해야 범인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그런 면에서 <신의 선물>은 다큐멘터리 식으로 그 과정을 세세하게 짚어가고자 한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수현이 남편 한지훈(김태우 분)이나 첫사랑 현우진(정겨운 분)에게 미래의 사건을 토로할 때,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의 격차만이 아니라 아내를 믿을 수 없는 남편, 그녀를 믿어주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첫사랑, 대화하는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하게 빚어지는 감정적 괴리에 주목했다면 어땠을까.

사건의 용의자로서 남편 혹은 첫사랑과의 감정적 이반이었다면, 수현이 벌인 혼돈의 시간이 타임 슬립물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또 다른 실마리로 받아들여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동찬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을 거슬러 헤매는 기동찬 대신 형의 사형과 재벌회장의 돈 사이에서 고뇌하는 기동찬에 초점을 맞추면 어땠을까. 잃어버린 아이를 향해 질주하는 수현, 연기의 묘미를 선보이며 독주하는 기동찬, 그들의 폭주 사이에 쉼표가 어디가 될 것인가에 따라 드라마의 묘미는 달라질 듯하다.

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물>은 아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범인을 찾는 엄마의 타임 슬립물이라는 장르적 선택에서 이미 비교우위의 드라마이다. 치정과 막장, 로맨스가 아니고서는 드라마를 논하기 힘든 우리 드라마 시장에서 보기 드문 반가운 시도이다. 어쩌면 이런 장황한 리뷰조차도 <신의 선물>에 보다 많은 관심이 쏟아지기를 바라는 노심초사가 빚어낸 과욕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신의 선물>이 마지막까지 웰메이드 드라마로 남아 장르극의 안착에 기여하길 바란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