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검찰이 날조된 증거를 사법부에 제출하여 간첩 혐의를 입증하려고 한 사건이 엄중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사건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과 검찰이 ‘꼬리 자르기’ 내지는 ‘축소 해명’에 급급할 것이기에 야당 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지대한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란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공안당국이 무슨 연유로 유우성 씨가 간첩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수 있다. 또 한 번 유우성 씨를 의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가 간첩이라는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는 처벌받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공안당국과 그들의 판단을 신뢰하는 이들의 ‘심증’의 근거를 따져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 설득력 있는 정황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때, 유우성 씨에 대한 수사가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국정원 규탄 기자회견'에서 양성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마이크 든 이)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안당국의 심증의 첫 번째 근거는 피의자의 신원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피의자는 몇 개의 이름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재북 화교 출신의 탈북자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조선족인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시민으로 정착한 이후에도 탈북자인 양 영국에 망명 신청을 했다는 보도도 나온 적이 있다.
또한 공안당국의 심증의 두 번째 근거는 피의자가 한국 사회에 정착한 이후에도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피의자도 일정 부분 인정을 한다. 2006년 어머니 장례식 때에 북한을 한 번 방문했다는 것이 피의자의 주장이고 그 후에도 드나들다가 북한 보위부에 적발되어 간첩 행위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공안당국의 주장이다.
신원이 불분명하고, 북한을 오가는 사람. 한국 사회의 생활인들이 이런 사람을 상상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그들은 피의자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게 되는 것일 터이다.
신원 문제에 관한 한 유우성 씨의 증언은 확고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회령에서 자란 재북 화교이고, 이 사실을 증언해줄 동료 탈북자나 친척도 있다고 말한다. 증언해준 이들도 적지 않은데, 검찰 측이 공소장 작성에 불리한 참고 증언들은 조서에 반영하지 않았다며 항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피의자의 말을 믿지 않더라도, 신원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간첩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북말을 할 줄 아는 조선족 중에 탈북자인 척하여 영국에 망명신청을 내는 이가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탈북자에 대한 망명에 관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는 거짓말을 했을지언정, 간첩일까? 그의 동기는 그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가고 싶다는 것일 뿐이다. 거짓말을 하는 이들을 일단 간첩으로 의심해야 한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바 적어도 수천억 혈세를 써가며 간첩을 색출해낸다는 국가정보원이 대한민국 최고의 간첩 조직이 될 판이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 검찰과 유우성 씨 변호인 측이 중국 관련 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문서에 대한 감정을 시행했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에서 7일 한 직원이 이동하고 있다.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는 지난달 28일 검찰과 유 씨 변호인이 제출한 문서에 찍힌 도장이 서로 다르다는 감정결과를 제시했다. (연합뉴스)
북한을 오가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굳이 폐쇄적인 전체주의 국가에 잠입해야 하는 이유도 우리로서는 쉬이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탈북자가 북한을 오갔다고 하면 한국 사회의 생활인들은 쉬이 '간첩'을 상상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 '심증'으론 충분한 사안인데, 중국 측이 공식적으로 확인을 해주지 않아 공안당국이 증거를 잡기 위해 무리를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북한이 의외로 드나들기 쉬운 곳이라고 말한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온 이후 중국 내 조선족이나 탈북자들을 활용하여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가족들을 빼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한국으로 오지 않은 탈북자들이 북한 땅에 잠입을 할 경우 한국 정부 역시 그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자들이 직접 잠입을 할 경우에는 위법이 되는 재미있는 상황이다.
10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를 봐도 북 노동당 고위간부 출신 탈북자가 “김정일이 ‘변경은 북한 땅이 아닌 거냐’고 말했을 정도로 중앙의 통제가 변경 지역에는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평양만 통치할 뿐 제2의 도시인 함흥만 해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했다고 한다. 북한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의 수준에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국경의 경비가 삼엄해졌고 그 때문에 탈북자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증언은 있다.
언론사 관계자들은 “북한이 탈북자 관리가 안 되어 남한 언론이나 쳐다보면서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조차 있다”라고 전한다. 2012년 한국 사회에서 대대적으로 탈북자 북송 반대 집회가 열렸지만 언론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한 일간지 기자는 “사실 북송되어도 도로 빼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언론에서 사건을 보도하면 손쓸 수가 없이 그냥 죽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선 북한의 인권 유린을 고발하겠다고 관심을 가지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탈북자 북송에 대한 언론 보도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한 기자는 “언론사에서 탈북자 북송 문제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대체로 외무부에서 보도하지 말라고 엠바고를 건다. 그런데도 어떤 언론은 막 써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해당 탈북자의 가족에 해당하는 사람이 외무부에 거세게 항의하여 외무부도 난감해 지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대체로 먼저 한국 사회로 온 탈북자들이, 자기 돈을 써가며 브로커를 통해 가족을 탈북시키는 것인데, 이에 관한 언론보도는 가족의 입장에서는 빼내오려던 그 가족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북자로 알려진 누군가의 신원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나, 그가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정황은 그가 간첩임을 시사할 유력한 정황 증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현 시기 남북한 관계를 반영하는 슬픈 에피소드들일 뿐이다.
▲ 국가보안법상의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 씨(왼쪽에서 세 번 째)가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공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국정원의 증거위조 의혹이 제기된 이후 열린 첫 공판이었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공안당국만큼은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억지로 과대평가하며 생활인들의 눈에 피의자가 의심스러워 보일 정황만을 부지런히 공소장에 담아 ‘간첩’을 만들어 내려는 저의가 궁금하다.
본인들의 ‘심증’을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정원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공작이었는지가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바다를 통해 잠깐 북으로 넘어갔다 온 어부들을 간첩으로 몰고, 일본에 거주할 당시 조총련을 만난 적이 있었던 재일교포나 유학생을 간첩으로 몰던 독재정권 시절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의 시민의식 수준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져 여기서 ‘조작’을 하기 어려우니 만만한 탈북자나 조선족을 활용하는 방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그들이 부르짖는 통일을 위해서라도 국정원은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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