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니까 지난 1월 17일에 올라온 “픽업 아트의 모든 것 : (1) 이론 편”(링크)으로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각은 3월 7일 오후 10시 58분이고, 결혼식까지는 14시간 하고도 2분이 남았다.

14시간 1분.
14시간 0분.
13시간 59분.
13시간 5… 아니, 그만두자.
그건 나의 결혼식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 내 아내의 결혼식이라고 해야겠지만, 나는 지금 식권에 도장 찍는 일도 미룬 채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밤에 쓰는 원고라. (나는 잠시 그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이건 미디어스가 악덕 매체라는 뜻일까 아니면 내가 한심하고 게으른 필자(어쩌면 팔자)라는 뜻일까?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나는 다만 미디어스가 내게 화환이라도 보내줄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많은 것이 변했다. 지난 원고의 마지막에서 나는 “나는 다만 누군가 픽업의 기술을 ‘진정으로’ 필요로 한다면, 마치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듯 그렇게 찾는다면, 픽업 아티스트를 찾는 대신 (아트와 픽업으로서의 아트 모두에) 성공한 예술가의 사례를 살펴보라고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픽업 아티스트 교재를 읽는 대신 몇 편의 소설을 읽는 게 낫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썼고, 이어 “그리고 이 경우, 나는 로맹 가리보다 나은 작가를 알지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때 내가 염두에 둔 건 2013년 12월 20일에 출간된 <여자의 빛>이었다.
*
주인공 미셸은 사십대의 매력적인 남자다. 아무렴, 로맹 가리의 소설인데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을 리가 없다. 에어프랑스에서 17년 간 조종사로 근무한 그는 “승객이나 승무원의 눈에 책임감 있고 긴 비행에 익숙하다고 비칠 만한 침착한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외모도 괜찮았”고, “어깨는 떡 벌어졌고 눈빛에는 깊이가 있”(8쪽)는 남자다. 모두 본인의 입으로 내뱉은 말이다. 그는 카라카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샤를드골공항에 갔다가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자 홀을 가로질러 택시에 올라탄 후 기사에게 집 주소를 말한다. 그리고 얼마 후, 생각을 고쳐먹고 모퉁이 담배 가게 앞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한 마디로 그는, 사연이 있는 남자다.
미셸이 택시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길을 걷던 여자와 부딪힌다. 여자가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빵, 달걀, 우유가 인도 위로 흩어진다. “여자는 내 또래로 보였다. 차이가 난다 해도 기껏해야 몇 년일 듯했다. 젊음과 매력적인 이목구비로 윤곽만 잡힌 그 무엇이 흰 머리로써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런 얼굴이었다.”(7쪽) 말하자면 그는 당황스러운 찰나에도 완벽히 여자를 관찰할 수 있는 남자다. 동시에 허둥대는 그에게 괜찮다고, 그냥 두시라고 말하며 몸을 돌리는 여자를 바라보며 “‘품위’나 예의, 좋은 관행 같은 것들에 묶여 대책 없이 그 여자를 놓쳐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내가 ‘픽업 아티스트의 모든 것’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은 글의 주인공으로 그를 점찍은 이유다.
때마침 택시 기사가 그를 도와준다. 요금을 내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환전해버린 그에게는 프랑화가 없었고, “구불거리는 흰머리에 품 넓은 회색 외투를 입은”(약간의 시간이 흘렀고, 그는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여자가 그를 돕는다. 대신 100프랑을 내준 것이다. 여자의 단순한 호의를 그는 놓치지 않는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식품들 한가운데 서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 “우리 벌써 헤어지기 힘든 사이가 됐군요.”(11쪽) 여자가 웃었다.
자, 여기서 모두 한 번씩 따라 해봅시다.
“우리 벌써 헤어지기 힘든 사이가 됐군요.”
다시 한 번, 힘을 빼고, 좀 더 담백하게, 그러나 날아갈 듯 담백하지는 않게.
“우리 벌써 헤어지기 힘든 사이가 됐군요.”
그는 여자를 카페로 안내한다. 로맹 가리는 거장다운 필치로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여자가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 더 많은 주름이 뚜렷이 잡혔다.”라는 문장 바로 뒤에) “우리가 들어간 카페 이름은 ‘아리스’였다.”(11쪽) 가리는 어째서 그들이 카페에 갔는지, 그가 뭐라고 했기에 여자가 순순히 그를 따라나선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마치 낯선 여자를 웃기는 순간 그녀와 함께 커피숍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다는 듯이. 아마도 그건 사실인 것 같다.
테이블에 앉은 그는 유감없는 기술을 사용한다 : “우리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게 나을 것 같소. 그러지 않으면 사태가 순식간에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니 말이오. ‘내가 지금 이 카페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랑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하고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오?”(11쪽)
바로 맞혔다고 맞장구치는 그녀. 그때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고, 그는 그녀에게 묻지도 않은 채 크림 커피 두 잔을 시킨 후 그녀에게 몸을 돌리며 다소 노골적인 기술을 사용한다 : “보시오, 이렇게 여기 있는 이유가 있잖소.”(11쪽)
하지만 너무 성급했다. 여자의 미소에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 아까부터 수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단지 그뿐이에요.”(11쪽) 맙소사, 잊었군요… 너스레를 떠는 미셸. 그는 여행 배낭에서 수표책을 꺼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묻는다.
“성함이?”
“그냥 소지자에게 지급하라고 쓰세요.”
“그래도 성함을 알고 싶소. 혹시라도 나중에…….”
“리디아 토바르스키예요.” (12쪽)
그렇게 그는 그녀의 이름을 듣는다. 리디아, 울림이 좋은 이름이다. 비록 우리나라의 현실에는 맞지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응용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그때 누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개를 조련해 공연을 하는 ‘세뇨르 갈바’라는 이름의, 조금 외로운 남자다. 그는 미셸에게 우리 서로 언제 만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묻고, 미셸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1975년 라스베이거스라고 대답한다. 그가 ‘샌즈’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고 말하자 개 조련사는 이제 기억난다고 말하며 반갑게 대화를 나눈다. 잠시 후, 조련사가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돌아가자 리디아가 묻는다.
“197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바텐더로 뭘 하고 계셨던 거죠?”
“아무것도. 사실 난 그때 거기 있지 않았소. 하지만 저런 종류의 사람에겐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필요한 것 같아서 말이지.” (13쪽)
(저기, 혹시 손수건 가지신 분? 제가 기계식 키보드라 물에 민감하거든요. 잠시만, 눈물 좀 멈추고 갈게요.)
도대체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자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 없는 게 여자다. 적어도 리디아는 그렇다(나는 ‘픽업아티스트’가 아니라 단지 서평가임을 기억하시라. 지금 나는 여자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니고, 다만 로맹 가리가 만들어놓은 판을 복기할 뿐이다). 리디아는 호기심 어린, 그러나 냉정함이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묻는다.
“처음 보는 사람의 고독을 그렇게 빨리 알아챈다는 건 본인도……” (13쪽)
그렇다면 질문. 여기서 과연 남자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1) “고독이라는 나쁜 짐승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라오.”
2) “거짓말이오. 사실 나는 정말 1975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바텐더로 일했고, 저 친구는 술에 취해 주정을 늘어놓는 고독한 주정뱅이었소. 하하, 속았지?”
3)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촉촉한 눈빛으로 허공과 허공 사이의 한 지점을 지그시 응시한다.
4)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은…”이라고 말한 후 고개를 떨군 채 왼손 약지의 반지가 있었던 자리를 다른 손가락을 이용해 천천히 쓰다듬는다.
미셸은 애써 권위적인 어조를 꾸며 이렇게 말한다 : “이런 종류의 속내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부인.” (13쪽)
중요한 것은, 그가 애써 권위적인 어조를 꾸몄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알아챌 만큼 눈치가 있었고, 그것에 웃음을 터트릴 만큼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를 다시 한 번 웃게 하는 데 성공한 미셸은 내처 말한다. 약간의 ‘밀당’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며 높은 점수를 딴다.
“내가 ‘부인’이라고 부른 건 거리를 지키고 있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서요…….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요, 부인. 크림 커피 두 잔의 의미를 내가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걸 믿어주시오. 난 조금 전 택시에서 내리다가 당신과 부딪쳤소. 그게 다요.”
“유머 감각을 발휘해주시다니, 친절하군요.”
“내가 당신에게 몇 초간이라도 웃음을 줄 수 있었다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오. 누군가를 웃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도 없소. 그런데 당신은 다 괜찮은 거요?” (13쪽)
여기서 중요한 건 접속사다. 잘 쓰인 접속사는 언제나 커다란 효과를 발휘한다. 이때 ‘그런데’는 일종의 도약이다. 그녀와 자신의 사이를 한 번에 뛰어넘는, ‘목숨을 건 도약’(속된 표현으로는 ‘훅 들어가기’ 정도 되겠다). 여자는 당황한다. 그녀에게도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미셸 또한 그 사실을 안다. 적어도 안다고 믿고 싶다. 갑작스러운 불쾌감에 당황하는 것과 아픈 사연을 콕 짚어 당황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라면 그는 집에 돌아가야겠지만, 후자라면 그는 잘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일부러 들이대려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재빨리 덧붙인다 : “미안하오. 난 그저…….”(14쪽)
그의 예상이 맞았다. 그녀가 갑자기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 저도 알아요. 제 모습이 큰 슬픔에 잠긴 사람 같을 거예요. 저도 남들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압니다. 하지만 6개월 전 자동차 사고로 남편과 어린 딸을 잃었죠. 자, 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14쪽)
그녀는 장갑을 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그는 정중히 다음을 기약한다 : “저는 연초에 프랑스로 돌아올 겁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14쪽)
이때 중요한 건 그가 프랑스로 돌아온다고 했지 어디로 떠난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어지지 않은 정보에 리디아가 반응한다. 먼저 “물론 괜찮아요”라고 말한 후 “그런데 멀리 가시나요?”라고 묻는 것이다(다시 한 번 ‘그런데’의 사용). 그때서야 카라카스로 떠난다고 말하는 미셸. 카라카스는 베네수엘라의 수도고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에 있으며 남아메리카는 듣는 이에게 열정과 관능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계산을 끝낸 그녀가 먼저 카페를 나선 후, 그가 나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다음번에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봐서요.” (14쪽)
분명 그녀 또한 보통 여자는 아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가 “여자는 흰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있었다. 그런 머리형을 하고 있는 이유가 자신이 여전히 젊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미 과거의 자신을 추억하기 시작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광대뼈가 높게 도드라졌고 검은 두 눈은 기묘할 정도로 아득하고 깊게 어둠의 나라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다소 장황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한다. 친숙한 몸짓으로 그의 팔에 한 손을 얹으며, 이렇게.
“이제 댁으로 가서 주무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이 먼 나라에서 둘 다 돌아온 다음, 그때 전화 주세요.” (15쪽)
택시가 왔고, 그녀가 떠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생각한다, “30분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15쪽) 다시 카페로 돌아온 그는 고독한 개 조련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들이 술을 마시며 하는 이야기. 여자, 과거의 영광, 여자, 현재의 직업, 건강, 여자, 여자, 여자, 여자……. 절로 술이 들어가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죽치고 앉아 낯선 남자와 술이나 먹고 있어도 좋은 걸까?
그는 카페를 나선다. 시계를 확인하고 택시를 탄다. 생루이엉릴 가의 낡은 건물의 우편함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한다. 그리고 문을 두드린다.
여자는 문을 열고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요. 들어오세요.” (19쪽)
집안을 둘러보던 그는, 조금 절박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그녀의 냉정함을 누그러뜨려야만 하는 것이다 : “개는 안 기릅니까? 불안해할 것 없소. 개 대신 나를 들이라는 건 아니니까. 개들은 요즘 큰 인기요. 어느 때보다도 수요가 많지. 신문에서 그러더군.” (20쪽)
그는 계속해서 말을 늘어놓는다. 조금 전 카페에서 만난 개 조련사의 이야기, 그의 개 이야기, 개 조련사가 들려준 죽음의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는 괜한 소리를 한다 : “이제 할 이야기를 다 했으니 가봐도 될 것 같소.” (21쪽)
그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여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말한다.
“난 지금 취하지 않았소. 난 사랑하오, 여자를……. 그냥 여자를 사랑할 수 있소…… 때로는. 당신을 납득시킬 설명 같은 건 할 수 없을 것 같소. 우리는 나이가 비슷한 것 같으니.”
“난 마흔일곱 살이에요.”
“마흔세 살이겠죠.” 내가 말했다.
여자의 얼굴이 거의 빨개지도록 상기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알았죠?”
“사람은 늘 과장하는 법이지. 이제 끝장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즐기지. (…) 하지만 낯선 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 담겨 있소. 내가 또 이런 것도 알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따로 불행한 두 사람이 함께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 말이오. 두 절망이 만나 하나의 희망을 만들 수 있지만, 그건 그저 희망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것만을 증명할 뿐이오. 내가 여기 온 건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 또한 구걸의 한 방식이 아닌가. (22쪽)
그리고 그는 취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렇게 무용한 헛발질들을 했던 것이리라. 교훈은 이렇다. 적당한 술은 분위기를 좋게 만들지만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 것. 그녀는 조용히 문을 향해 걸어갔고, 뒤따라온 그에게 코트를 내밀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는 다시금 예의를 차려 어쨌거나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고, 그녀는 조금 슬픈 얼굴로 자기도 그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남자가 문을 나선다. 여자가 그를 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이다.
“하지만 당신은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여자는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좀 더 물고 늘어졌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녀에게서 그 이상을 얻어낼 수 있었을 텐데. (23쪽)
*
자, 어떤가. 이게 본래 내가 계획하고 있던 것이었다. <여자의 빛>의 다양한 상황들을 마치 ‘픽업아티스트교본’처럼 풀어쓰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먼저, <여자의 빛>이 정말이지 그런 상황들로 가득 차 있어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이제 유부남이 될 거라는 사실이다. 결혼식은 어느덧 11시간 후이고, 나는 아직 식권에 도장을 찍지 못했다. 그밖에 또 뭘 빠트렸는지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한 마디로, 내게는 이런 글을 더는 늘려 쓸 시간이 없으며,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내게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지난 원고를 쓰고 약 한 달 뒤인 2월 15일에 로맹 가리의 또 다른 소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가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크다. 한 작가의 소설이 새로 나온 마당에 그 전에 나온 소설을 두고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사실은 로맹 가리가 <이 경계를 지나면…> 다음으로 쓴 소설이 <여자의 빛>이긴 하지만). 덧붙여, 생업에 바쁘신 픽업아티스트 여러분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사실을 밝혀둔다(농담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여자를 꼬시겠다는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자, 그래서 이 지루한 ‘실천’편은 이쯤에서 그치도록 하고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하자. 픽업아티스트건 뭐건 간에, 모든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어떤 경계선 너머로.
교재는 물론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가 될 것이다.
(* 픽업 아트의 모든 것 : (3) 픽업 아트를 넘어서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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