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이나 입시교육열풍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가 제일 먼저 부탁하는 것은 아무도 악마화하지 말고 접근하자는 것이다. 다수 보통의 사람들에게 나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면, 그들을 비난해 봐야 해결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현실이 시궁창인데 바로 이상향을 이식하자는 식으로 건너뛰지 말자는 것이다. 이상은 그대로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없다. 현재에서 한 단계씩 이루어지는 개선이어야 효과도 있고 지속력도 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다수가 배울 내용으로서의 교육과 선발되는 소수가 되기 위한 교육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내용으로서의 교육은 어떤 형태로든 선발에 지장을 주고, 선발에 치중하면 내용 자체를 위한 교육은 축소된다.
위 세 가지 부탁을 역전하면, 지금 벌어지는 교육 현장에서의 진흙탕을 그대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다 과목명 ‘영어’를 추가하면 진흙탕은 한층 더 엉망이 된다. 세 가지만 짚자면 이렇다. 영어가 입시에 주요한 과목이니 안 할 수 없다는 것, 검증되지 않은 교육 노하우가 이것저것 입소문 따라 시행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인들이 원하는 ‘영어 잘하는 사람’의 표상이 무척 비합리적이라는 것.
첫째로, 입시에 필요하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입시가 과도하고 왜곡된 영어 사교육의 주범인 것은 맞지만, 입시 하나로 모든 원인이 고정돼 변할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입시를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입시에 매몰되지 않되 입시에도 어느 정도 유효한 영어 교육 가이드가 필요하다. 입시에서 영어를 요구하고 있으며 입시에 응할 모든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면, 이것을 부정할 수 없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끄덕이며 참여할 수 없다. 그들을 떨궈내고 진행되는 대안은 당연히 실천할 이가 없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
둘째, 검증되지 않은 교육 노하우의 문제. 근거가 취약한 각종 영어 공부 방법이 아주 어린 연령대부터 임상 실험처럼 자행된다는 문제는 학부모들도 알고 있다. 안 시키자니 뒤처질까봐 걱정되고, 시키면서 정신건강이나 정서적 악영향이 없을지, 스트레스는 없을지에 대해서까지 이제 같이 걱정하는 부모들이 늘었다. 어릴 땐 펑펑 놀게 해주자는 이상적인 말은 좋지만, 나중에 학창시절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말해주지 않으면 이것은 그냥 문제를 뒤로 미뤄두다 개별적으로 생존하라는 이야기가 돼 버린다. 자율적으로 공부하게 하자는 말도 좋지만, 무엇이 자율적인 공부를 돕는 방법인지 구체적으로 이르지 않으면 듣고 잊어버릴 좋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검증된 교육 노하우는 어디서 만날 것인가? 사교육 기관은 그것을 가장하지만 아닌 경우가 많고 학부모는 걸러내기가 힘들다.
셋째, 한국인들이 ‘영어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 이것이 지칭하는 내용은 ‘미국 영어를 원어민 발음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영어를 잘 해도 미국 발음이 아니면 별로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어려운 텍스트는 하나도 읽고 쓰지 못하더라도 유창한 미국 발음으로 간단한 구조의 문장들을 쭉쭉 말할 수 있으면 영어를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학원에서도 미국인 강사를 찾고, 미국인이라도 아시아계나 아프리카계는 거부당한다. 호주나 뉴질랜드, 필리핀 등 미국인이 아닌 영어 화자도 쳐주지(?) 않는다. 사실상 ‘영어 잘 하기’라기보다 ‘평범한 미국인처럼 보이기’에 가깝다. 이러니 진짜 영어 실력을 위한 사교육보다 저 목표에 가까운 사교육이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얼치기가 아니라면 교육 문제가 입시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선발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으며, 이것은 입시나 교육의 문제라기보다 교육 이후의 취업에 관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루면 결국 사회가 바뀌어야 될 뿐 부모 개개인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을 주기 쉽고, 안 다루면 부모의 마음속에 있는 진짜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 이 딜레마 때문에 나는 교육 문제에 대한 대안을 논하는 칼럼이나 책에 그다지 높은 기대를 걸지 않는다. 도처에 한계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 책, 굿바이 영어 사교육
《굿바이 영어 사교육》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에서 기획한 강연 모음으로, 부모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지만, 이 글 처음에 설명한 세 가지 부탁을 모두 통과하고, 그 뒤에 지목한 영어라는 과목에 얽힌 세 가지 문제를 모두 제대로 돌파한 강의를 담고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장 재미있었던 강의는 조기 교육의 폐해를 아주 상세하게, 또 언어학적 관점에서 비판한 이병민의 것이지만, 학부모를 독자로 하였을 때의 백미는 4번째인 김승현, 5번째인 권혜경의 강의이다.
김승현은 사걱세 활동가로, 그의 강연은 2008년부터 이뤄진 31회의 토론회와 강좌를 거쳐 추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이 빠질 수 있는 다양한 함정과 고민을 하나씩 모두 구체적으로 다루어 답하고 있다. 일찍 시작해야 하나, 전문 어학원에 다녀야 하나, 유학이나 캠프를 보내야 하나, 애가 원어민 발음으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나, 이런 것들 말이다. 자료나 분석 없이도 이 모든 것에 ‘아니오’라는 답을 내는 것은 쉬울지도 모른다. 다시 원래의 방법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려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안내해야 한다. 그는 ‘자녀 영어 교육의 시기별 목표는?’ 이라는 작은 소제목 하에, 앞서의 영어교육과 교수들이나 뇌과학자들의 강연과 모순되지 않고 스스로 지적한 저 고민 요소들을 벗어나면서도 실행할 수 있는 자녀 교육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정도면 입시정보 잘 모르는 학부모라도 아이 정신건강 걱정 없이 따라 해봐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학부모에게 쉬운 스토리북을 읽히라고 하면, 학부모가 생각하는 쉬운 수준이라는 것이 너무 높아 아이가 모르는 단어 투성이인 스토리북을 강요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한 페이지에 아이가 모르는 단어가 다섯 개 이하여야 한다고 기준을 정해 주어도, 부모는 아이의 실제 능력보다 훨씬 어려운 것을 고른다. 모국어는 이미 수십줄의 줄글을 읽을 수 있다 보니 외국어 책을 고르면서도 비슷한 기준에서 별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중학생에게 읽힐 쉬운 스토리북의 난이도를 예로 들기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에게 읽힐 용도로 ‘한 권에 15쪽 안팎에 한 페이지에 네 문장’이 들어있는 그림책을 꼽는다.
실제로 5~6학년과 중1에게 한 페이지 네 문장 든 15쪽짜리 그림책을 영어공부하라고 사줄 학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독해가 아닌 흥미 유지,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확보, 그리고 영어 회화를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이런 가이드는 전문가가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초중학교 때는 각각 무엇을 얼마나 하면 되며, 고교에는 입시를 위해 어디에 집중하는 게 좋고, 대학 너머에서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 각 단계에서 필요한 교재나 소스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영어’는 국제 통용어이자 한국 학습자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 쓸 일 없는 외국어이고, 학창시절까지는 입시를 고려해 공부해야 하며 대입 이후엔 필요할 때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초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입시에 매몰되지 않지만 입시를 외면하지 않는, 언어를 언어답게 익히는 공부이면서 학부모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미묘한 균형을 잡기까지 저 31회의 토론회나 강좌 외에도 오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 강연이 각 지역의 영어도서관과 각종 프로그램 소개 및 영어도서관 활용에 대한 것인데, 이것도 보통의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수준과 접근할 수 있는 소스를 다루려고 노력한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보통의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에게 약간 과한 기대를 하고, 잘 하는 다른 집 자녀들을 부러워하며, 잘 하는 집 아이의 엄마나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서 공부 노하우를 얻고, 애를 잡고 시켜보다가 애와 싸우고서 꼭 이래야 하나 고민하고, 큰 맘 먹고 아이에게 자유롭게 놀고 스스로 공부할 기회를 주었다가, 사실상 방치에 가까워 아이가 학습을 전혀 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그 때 다시 크게 후회하며 아이에게 강제로 ‘잘 하는 아이들이 한다는 방식’의 학습을 밀어 넣는다. 이때는 아이와 싸워도 물러서지 않는다. 입시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한 번 자유롭게 놀게 해 봤더니 아무 것도 안 되더라는 나름의 깨달음(?)과 후회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녀와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걱정하고, 물러서서 사이가 좋아지면 입시를 걱정한다. 입시 이후는 생각할 이유도 여력도 없고, 영어라는 언어가 한국에서 갖는 특성 같은 건 더더욱 생각할 여유가 없다. 평범한 학부모가 주변에서 전달하는 편견과 학원의 공격적 마케팅을 벗어나 현실적이면서도 거시적 관점에서도 합당한 ‘괜찮은 길’을 찾아 스스로 로드맵을 그려나간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교육문제라는 사회구조에 주목하자면 제도를 바꾸어 위로부터의 변화를 유도해야 크게 효과를 볼 것이다. 학부모 입장에서의 접근이 교육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도 없고, 사교육비 지출에 유의미한 감소를 가져오지도 않을 것이며, 여러 가지 지표를 개선하는 일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개별적인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거시적인 정책보다 나와 내 자녀의 삶에서 내릴 선택에 더 무겁게 여겨지고, 이를 돕는 손이 가장 반갑기 마련이다. 실천적 접근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에서 자녀와 만족할 수 있는 공부 방법을 모색하게 해줄 수 있어야 당장의 삶이 이곳 저곳에서 하나씩 개선될 수 있다. 학부모들의 오판을 비난하는 쉬운 길 대신, 그들의 불안을 가라앉혀 더 나은 판단을 하도록 돕는 길이 더 많이 닦이기를 바란다.

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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