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교육칼럼은 마음에 드는 걸 참 찾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문제의 청자는 그 자신부터 모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입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방법을 갈구하고, 한편에서는 비인간적인 입시로부터 해방된 인간적인 교육 현장을 바란다. 정책도 칼럼도, 전자에 집중하면 후자에게 욕먹고, 후자에 집중하면 전자에게 욕먹는다. 두 욕망이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고 피상적으로 접근하다보면, 전자의 욕망을 가지고 후자를 이야기하는 경우마저 생긴다.

어제자(4일) 경향에 실린 다음 칼럼(링크)이 바로 그런 풍경을 보여준다.
"선행학습금지법은 이름과 실질이 다른 법이다. 법 이름만 보면 선행학습 자체가 금지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교육에서 하는 선행교육과 선행시험이 금지되는 것뿐이다. 사교육의 선행학습은 모두 허용된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법이 시행되면 일부 학교에선 교육당국의 단속망을 피해 음성적인 선행교육을 하려 하겠지만 일단 학생들에게 “선행학습 하고 싶으면 학원으로 가라”고 해야 한다. 현재 방과후수업을 통해 학교에서 흡수하고 있는 선행학습 수요도 사교육 시장에 내줘야 한다. 학교의 경쟁력은 더 떨어지고 학원의 흡수력은 더 강력해진다. 법의 이름을 공교육무력화법 또는 학원밀어주기법으로 해야 맞지 않을까."
▲ 4일자 경향신문 30면에 실린 칼럼
일단 전제조건을 하나 깔자면, 공교육 이외의 영역에선 선행학습 자체가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 과목이나 분야에 재미나 재능을 보인 학생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준 이상을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싶을 때 독학 이상의 학습 수단이 금지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지금 선행학습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발적인 진도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도를 미리 빼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조건’을 찾아 없애는 것이다. 즉 타의에 의한 선행학습 압력 요인을 줄이는 것이 선행학습 금지법이 지향해야 할 내용이다.
진도를 미리 빼지 않으면 불이익이 온다는 불안감을 보편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가장 많이 주는 것이 뭘까. 당연히 모든 학생과 학부모들이 공식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곳인 학교이다. 학교에서 교과과정보다 수업을 당겨 실시하고 시험에도 진도를 당겨 내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면, 사교육이 무어라 공포 마케팅을 하든 의연할 수 있는 사람들도 거기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 그런다는데 무슨 배짱으로 손놓고 있겠는가. 이렇게 되면 해당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은 사교육을 받고 싶지 않아도 미리 진도를 빼기 위해 사교육에 손을 내밀게 된다. 진도를 먼저 빼는 학교는 학생이 단순히 특정 과목의 단원을 먼저 배운다는 사실만으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는 학교보다 우수하다는 착각도 일으킨다. 다른 학교에까지 선행 압력을 준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학교현장에서 먼저 선행학습이 공식적으로 금지되고 교육과정에 맞게 진도를 나가야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개별적인 압력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공식적 압력은 개별적 압력을 증폭하고 주도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행교육 금지법은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를 단속해 진도 먼저 빼는 일이 발각되면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칼럼에서는 이번 정책으로 인해 학교가 하던 선행교육을 사교육에 빼앗긴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선행교육의 욕망은 학생을 우수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소수의 선발 인원에 넣어 학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겠다는 욕망이다. 이 욕망에 의해 서로 서로 과도하게 미리 진도를 빼는 '치킨레이스'를 하고 있었으니 그 욕망을 학교 현장에서부터 중단하자는 것을 두고, 위 칼럼은 이 '치킨레이스'에 참가하지 못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의 경쟁력은 입시선발욕망의 관점에서 보자면 ‘학원보다 잘 가르쳐 입시에 잘 붙게 하는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학교를 다니면서 사교육을 같이 하는 것이 더 입시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학생/학부모들이 흔하니 그것으로 사교육을 줄일 수는 없다. 학교가 학원의 목적에 동조해 경쟁하면 학원이 더 활성화 될 뿐이다. 바로 그런 걸 경쟁력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명문대 갈 소수의 학생들 위주로 학교가 파행운영되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공부 잘하는 애들만 정독실 넣고 아닌 애들은 집에 가든 말든 방치하는 학교가 생기고, 성적 순으로 급식 먹으라는 학교가 생기며, 애들 명문대 보낸 순으로 고3 담임에게 인센티브를 주어 담임이 애들을 닦달하고, 미리 가르쳐 놓으려고 진도를 먼저 빼는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 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공교육이라고 말하기는 많이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학교가 학원 수요를 가져오거나 대신하려고 경쟁하는 것은 공교육을 망치는 대표적인 착각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학교로서는 대부분 지향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공교육의 목표는 학교제도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을 포용하고, 그들이 학교와 사회에 적당한 소속감을 가진 채 중등교육을 적정 수준 이상 흡수하도록 한 뒤 사회에 배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위권이 없을수록 좋고, 성적 높은 아이들과 비교당해 상대적 낙오자, 실패자, 문제아라는 낙인을 받지 않을수록 좋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비인간적인 스케줄을 따르지 않아도 성취할 수 있는 양을 제시하고, 못 따라가면 보완해주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주고, 사회가 평균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성인으로 만들어 사회에 배출시키는 것이 ‘학생 전체’를 위한 학교로서 가장 좋다.
반면 ‘1.5등급까지의 우등생’을 명문대생으로 만들기 위해 나머지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잘 가르치고 입시에 집중하는 학교가 가장 좋고, 그러려면 학교에서도 선행교육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고, 학원 수요를 뺏어 올 의지로 입시에 몰입하는 학교면 더 좋고, 모든 학교가 그럴 수는 없으니 학생도 학부모도 그런 선행하는 학교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사교육 엄청 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학교가 하위권이나 중위권을 챙기면 챙길수록 학교의 입시경쟁력에서 멀어지고, 하위/중위권 아이들은 조금 더 살만해지며, 상위권 아이들마저도 살만해진다. 조금만 해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단 초 상위권의 부모들은 모든 아이들이 사교육에 돈을 퍼부어 경쟁하는 상황이 가장 유리하다. 그래야 돈 적은 집의 애들과의 격차를 벌려 못 따라 오게 만들기 좋으니까.) 학교더러 학원과 선행학습의 수요 경쟁을 하라는 건 중하위권을 챙기지 말고 상위권 입시에만 집중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 그게 모든 사태의 원인이다.
당장 입시경쟁에 대한 욕망을 한방에 없앨 정책은 당연히 나올 수 없다. 과도기나 단계별 변화 없이 만병통치약으로 작용하는 정책은 없으니까.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는 ‘학교가 선행교육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번 법안으로 학원도 선행교육을 광고하는 것이 금지된다. 학원이 선행교육을 할 수는 있지만, 선행교육이 필요하다는 식의 광고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도 아주 좋은 조치이다. 선행교육은 욕심내어 할 사람들이 하는 거지, 학교에서부터 당연히 이루어지는, 학원이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그런 대세가 아니라는 인식부터 형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은 개개인의 학업성취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초중고 12년 동안 학생들이 배워야 할 공부의 양은 줄거나 그대로이고, 매스컴이나 학원에선 절대로 말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중3쯤 느즈막이 공부 시작한 후발주자들도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일찍부터 어려운 걸 시키면 ‘난 못 하겠다, 너무 어렵다’ 말하는 포기자들이 더 빨리 나온다. 정해진 커리큘럼의 순서대로만이라도 지키면, 학생들은 뇌의 처리력이 그만큼 발달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 공부를 접할 수 있고, 어릴 때 미리 공부하면 어려웠던 것도 자기 단계에서 거기 맞는 내용을 보면 덜 어렵다. 포기자를 덜 만든다는 얘기다.
이제 슬슬 눈치빠른 학부모들은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지나친 조기교육을 하면 오히려 성적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있다. 부유한 부모들 중 일부는 자녀에게 다양한 체험활동과 프로그램에 참가시키고 여행을 데리고 다니고 책도 읽히는 게 낫다는 것도 안다. 선행교육이 학업성취에 실제로는 유리하지 않다는 건 교육자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리하지도 않은 것을 두고 불안을 부채질해가며 치킨레이스를 하던 상황에서, 치킨레이스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앞에서 돌진해오는 기차를 먼저 피하는 것이 비겁한 게 아니라, 밀리지 않으려고 기차 앞에서 아슬할 때까지 버티려는 쪽이 더 바보인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가 비록 입시제도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선행학습을 주도하는 공기관이라는 멍청한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다.

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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